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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페블 Feb 15. 2021

나에게만 있는 '지금'


우리 집을 기준으로 동서남북으로 좋아하는 카페가 하나씩 있다.

주말이면 먼저 책장에서 책을 고른다. 책은 그날의 기분을 반영한다. 머릿속이 소란할 때는 가벼운 책을, 독서 욕구가 충만할 때는 두꺼운 책을 챙긴다. 누군가에게 수다가 떨고 싶어 지면 편지지도 곁들인다. 시간이 넉넉한 주말이면 2권의 책을 번갈아 읽기도 한다.     


외출 준비가 끝나면 날씨를 확인한다. 비가 오지 않는다면 걸어서 움직인다. 그날 발걸음이 향하는 곳이 최종 목적지가 된다. 주말 오전의 골목은 한산하다. 아침 운동을 하러 나오신 어르신 몇 분, 대로변을 지나는 한적한 시내버스, 골목 사이를 나른한 표정으로 사뿐사뿐 걸어 다니는 고양이, 그런 고양이를 보고 알은체도 하지 않는 늙은 개 몇 마리. 금요일 저녁의 열기에 찬물을 끼얹은 것 마냥 하룻밤 사이의 온도는 크게 달라져 있다. 

    

주말 오전 카페 역시 한산하기만 하다. 테이블에서 의자를 빼내는 소리마저 소음이 될까 조심조심 의자를 꺼낸다. 카운터로 가서 따뜻한 커피와 간단한 디저트를 주문한다. 주문한 음료가 나오기 전에 가방에 있는 책, 노트, 필통, 편지지, 핸드폰을 테이블 위로 올려둔다. 주문한 커피가 도착하면 향긋한 커피 향을 배경 삼아 책을 읽기 시작한다. 책을 읽는 사이사이 창밖으로 시선을 둔다. 시선은 창밖을 향하고 있지만, 몸 안에서는 책의 활자들이 마음을 누비며 정착할 곳을 찾고 있다.     


어떤 문장은 물 흐르듯 스르륵 읽히고, 어떤 문장은 목구멍에 걸린 것처럼 읽히지 않아 그 문장을 한참 바라보게 한다. 읽히지 않는 문장을 입으로 되뇌다가 손으로 쓱쓱 써보기도 한다. 그러다 보면 처음보단 편하게 문장이 넘어간다. 책 읽기가 지겨워지면 편지를 쓴다. 핸드폰으로도 전송 가능한 말이지만 꾹꾹 눌러쓰는 글자에는 마음이 더해진다. 보고픈 마음, 그리운 마음을 글로 옮겨본다.     


해가 하늘 높이 솟아오르면 집으로 갈 준비를 한다. 그 사이 길거리엔 사람들이 많아졌다. 부모님을 따라 나온 아이들의 재잘거림, 주인과 함께 산책 나온 강아지의 짖는 소리, 자동차 경적, 사람들의 말소리와 웃음소리 가득한 골목길을 누빈다. 조금은 소란해진 낮의 시간에 나 역시 에너지가 차오름을 느낀다.     


월요일 아침,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주말에 뭐 했어?” “음, 그냥 산책하고 책 읽고. 그랬지.” “심심했겠다.” 전화를 끊고 주말 내 기분을 상기한다. 누군가를 만나지 않아서, 누군가와 이야기 나누지 않아서, 주말이 심심했던가? 나에게는 에너지를 채우는 시간이었지만, 이 시간을 엄마에게 설명하긴 힘들다. 엄마는 나와 달리 타인과 함께하며 에너지를 채우는 사람이니까.     


나도 한때는 나라는 사람은 타인을 통해 에너지를 채우는 사람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주말, 평일 상관없이 타인과 만남을 삶의 우선으로 여겼다. 그 시절엔 웃고 떠드는 게 좋았다. 타지로 와서 혼자의 시간이 많아지면서 이 시간의 고요함을 즐기게 되었다. 조용하고 고독한 시기가 있으면 타인과 함께 지내는 왁자지껄한 시기도 있다. 어떤 시기도 잘 지내기 위해서는 ‘지금’을 잘 지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때로는 누군가 그립지만, 혼자여도 충분히 괜찮을 '지금'을 잘 보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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