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글쓰기 수업으로 알게 된 지인이 있다. 글쓰기 수업 당시, 그녀의 솔직한 글이 마음에 들어 먼저 말을 건넸고 우리는 친구가 되었다. 일주일에 한 번씩 진행된 3개월간 수업을 꾸준히 참석하며 서로의 글에 공감하는 사이가 되어갔다. 코로나로 자주 만날 수는 없었지만, 서로를 생각하는 마음이 우리를 다시 이어 주곤 했다.
그녀는 나와는 열 살 넘게 나이 차이가 난다. 얼마 전 그녀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글을 통해 만난 사이라 대화의 결이 일상에서 만난 사람과는 좀 다르다. 우리의 아픔, 결핍, 욕망을 글로 엿보았기에 슬그머니 흐르는 이야기의 줄기를 곧잘 눈치챈다.
그녀는 20대의 어두운 터널을 지나고 있었다. 그녀와 헤어지고 집으로 돌아오며 그런 생각을 했다. 20대는 육체 내부에서 끓어오르는 열기와 차가운 현실의 간극에서 괴로워하는 나이가 아닐까 하고. 나 역시 20대를 지내고, 30대의 끝자락에 서니 20대와 30대가 달랐음을 깨닫는다.
내 20대는 롤러코스터였다. 좋고 싫고를 반반으로 나누며 세상을 이분법으로 바라봤고, 현실과 이상의 열탕, 냉탕을 수없이 오갔으며, 내 감정을 제어하지 못해 필요 이상으로 엎치락뒤치락하던 때였다. 돈을 벌어야 해서 꿈 없이 들어간 회사는 즐겁지 않았고, 졸업장이 필요해 입학한 야간대학은 시험과 과제의 지옥에서 괴로워했다. 그 당시 나의 즐거움은 오직 친구였다. 매일 회사와 학교를 같이 다니던 단짝 친구부터 주 5일은 만나던 친구들까지. 나는 내 삶의 즐거움을 오직 친구에게 의존하고 있었다. 그때의 불안한 마음을 어떻게 해소할지 몰라서 타인에게 의존했던 것이다.
그 시절 나는 가족들이 어떤 마음으로 지냈는지 궁금하지 않았고, 집안에 떠도는 무거운 공기를 남의 것인 양 생각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진로 문제로 걱정하는 남동생, 엄마의 우울함, 아빠의 외로움에 손 한 번 내밀지 못한 것이 못내 마음에 걸린다. 내 힘듦만 생각하느라 다른 가족들의 힘듦에 눈 감았다. 시간이 지나면 다 괜찮아지리라 생각했다.
시간이 흘러 30대 후반이 되자 내가 지나온 길이 보였다. '아, 나는 저곳에서 방황했구나.', '타인의 손길에 무관심했구나.', '내 마음을 돌보지 못했구나.', '가족에게 다정한 적 없었구나.' 부족하고 아쉬운 시간이었음을 느꼈다. 누군가가 나에게 20대로 다시 돌아가고 싶은가라는 물음에 한참 망설이다가 “지금이 더 좋아.”라고 대답했다. 그때로 돌아간다면 바꾸고 싶은 것이 왜 없겠는가. 하지만 그 시절 나의 부족함과 실수들이 지금의 나를 이루었음을 알고 있다. 20대를 불안한 마음으로 보낸 내가 안타까울 뿐이다.
내게 자신의 소용돌이치던 마음을 내보이던 그녀에게 나 역시도 그 시절을 잘 보내지 못했기에 제대로 된 말을 해줄 리 없었다. 집으로 와서 조용히 내 생각을 정리하고 나니 그녀에게 “충분히 잘하고 있어요.”라는 말을 전하고 싶어 졌다. 20대의 고민, 눈물, 웃음, 설렘, 원망, 불안, 두려움. 그 모든 감정이 결국 내 삶을 이루는 자양분이 되더라. 언제든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바라보고 허용해주기를. 그녀와 여전히 미성숙한 나에게 건네고 싶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