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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페블 Feb 22. 2021

몸의 이해

달리면서 경험한 것들

출처(https://unsplash.com)


외투를 벗으니 땀자국이 짙다. 고작 20분을 달렸을 뿐인데 호흡이 가쁘고 얼굴에선 열감이 느껴진다. 분명 집 밖을 나설 때만 하더라도 장갑 사이 손가락 마디마디에 한기가 느껴졌는데 이젠 그 한기가 그립기까지 하다. 올겨울, 아침 달리기를 하고 있다. 뛰는 날보단 걷는 날이 더 많았지만, 눈뜨자마자 밖으로 나와 새벽의 공기를 한껏 들이마시며  시작하는 하루가 일상화되었다. 습관이 되기까지 반년이 걸렸지만, 몸에 익고 나니 일상이 부쩍 활기차 졌다.



나와 달리기의 인연은 30대가 훌쩍 되어서다. 운동을 좋아해서도 아니고, 필요에 의해서도 아닌 그저 ‘마라톤’을 한 번쯤 해보고 싶어서였다. 그렇게 이벤트로 여기며 이따금 참가하던 마라톤을 그 뒤로 5년이 지나서야 진지하게 여기기 시작했다. 아는 지인과 함께 운동장을 달리러 갔었다. 그때 나는 두 바퀴도 못 돌고 주저앉았는데 그 친구는 그 후로도 10바퀴를 넘게 돌았다. 그녀는 10km 마라톤을 몇 년째 꾸준히 참가하고 있다고 했다. 나보다 약해 보이던 그녀에게서 빛이 났다. 나도 어쩐지 제대로 달려보고 싶었다. 



곧장 의기투합하여 마라톤 모임을 만들었다. 그해 9월 마라톤을 신청하고서 5월부터 달렸다. 핸드폰 앱에 마라톤 일정을 입력하니 내게 맞는 연습 일정이 나왔다. 일주일에 2~3번. 처음엔 10분부터. 일정표는 조급한 나를 천천히 가게 해줬다. 1km, 2km 천천히 거리를 늘렸고, 달리기 전후엔 걷기를 통해 몸의 근육을 이완시켰다. 한 달이 지나니 운동장 세 바퀴는 가뿐히 달리는 내가 되었다. 너무 신기한 경험이었다. 분명 얼마 전까지는 100m 거리에도 호흡을 거칠게 내뱉던 내가 이렇게 편안하게 달리다니. 문득 내가 멋지게 느껴졌다. “멋지다. 은정!” 4.5km를 달리고 나서 나에게 한 말이다. 정말 진심으로.



생각해보면 그 시절 나는 달리면서 몸과 마음이 성장하고 있었다. 두 다리를 움직이며 달리는 동안의 신체 변화를 느껴보고, 코와 입으로 넘나드는 호흡을 통해 호흡의 리듬을 배웠다. 달리기 전에는 알지 못한 감각들을 온몸으로 깨치게 되었다. 또한 나는 달리기를 통해서 삶을 다른 각도로 살피는 사람이 되었다. 크고 멀게만 보이는 목표도 한 발자국의 시작으로 결국 마지막에 다다를 수 있음을 알았고, 어떤 상황과 사람에게서도 다양한 배움이 있음을 깨달았다. 



“몸으로 이해한다는 것은, 머리로 이해한다는 것과는 전혀 다른 의미다. 몸으로 이해한다는 것은 경험한다는 얘기다. 경험한다는 것은 절대로 잊지 못하게 된다는 뜻이다.”  김연수 <지지 않는다는 말>



나는 책 속의 말처럼 머리로만 이해하던 것을 비로소 몸으로 이해하게 되면서 잊지 못할 경험을 했다. 열심히 달린 그해 오월을 기점으로 나는 여전히 달리는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다. 작년 가을에도 10km를 달렸다. 사실 꽤 달린다는 사람 앞에는 명함도 못 내밀 정도로 페이스가 느리지만 나는 그저 달리는 내가 좋다. 두 발이 땅을 스치며 나아가는 경험을 한 내가 자랑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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