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페블 Mar 08. 2021

1인분의 삶


‘언니, 안녕하세요? 고용센터에서 같은 조였던 A예요. 오랜만에 연락드리려니 어색하네요. 잘 지내시죠?' 핸드폰 화면에 미리 보기로 뜬 메시지 하나. 고용센터, A… 누구지? 한참 동안 핸드폰 화면을 바라봤다. 아, 생각났다!     


6년 전 가을, 나는 이곳에 직장 하나 구하고서 이사 왔다. 친인척이 살지도 않는 곳을 타지에서 살고 싶다는 욕망 하나로 온 것이다. 친구들은 무모하다고 했고, 부모님 역시 탐탁지 않게 생각하셨다. 그 시절 나는 지나친 과부하 상태였고 변화가 절실했다. 그렇게 무모하게 입사한 회사는 1년이 채 안 되어 작별하게 되었다. 다행히도 실업급여 신청이 가능하여 고용센터에서 실업교육을 받고 구직 활동을 하며 지냈었다. 그때 알게 된 친구였다.      


메시지를 확인하니 그녀는 1년 전 독립을 했고, 혼자 살면서 이런저런 일들을 겪어보니 오래전 내게서 들었던 이야기들이 생각났다는 것이었다. 그땐 독립이 그저 무섭기만 했던 때라 크게 와 닿지 않았는데 혼자 살면서 배운 것이 더 많다며 언니의 따뜻했던 말에 감사함을 전하고 싶다는 말로 마무리되었다. 벌써 4년 전, 이젠 얼굴도 가물가물한 그녀의 연락에 반갑고도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곧 답장을 보냈다. 이렇게 연락해 줘서 고맙다고. 시간이 한참 지나서 어떤 이야기가 오갔는지 기억이 정확히 나진 않지만 내 이야기가 도움이 되었다는 그 말이 더 고맙다는 답장을 보냈다.     


그때 그녀는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다면서 나중엔 독립하고 싶단 이야기를 내게 꺼냈다. 독립 2년 차였던 나는 독립생활 장점에 대해서 두서없이 늘어놓았다. 가족과 함께 살다가 엄마와 단둘이 지냈던 시절, 그 후 친구와 살았던 시기에서 혼자가 된 현재까지. 그녀가 궁금하지도 않을 이야기를 덧붙여가며 높아진 목소리와 한껏 커진 몸동작을 더 하며 이야기했을 것이다. 진심이기 때문이었다. 고작 독립 2년 차였지만, 30대 중반이 되어서야 하게 된 독립은 의미가 더욱 각별했다.     


고등학교가 실업계여서 재학 당시에도 타지로 취업을 하는 친구들이 있었다. 그런 친구들을 선망의 눈빛으로 보긴 했지만, 나에게는 멀게 느껴졌다. 대학을 입학하면서 독립을 시작한 친구들도 꽤 있었지만 나는 집안 사정을 고려하여 집 근처 야간 대학을 다녔다. 20살부터 직장 생활을 시작했다. 처음엔 공공근로 알바라든가, 계약직으로 대학 생활과 병행 가능한 일을 했다. 대학 졸업 후에 타지의 삶도 꿈꿨지만 굳어진 생활을 벗어나긴 힘들었다. 결국, 내가 사는 도시에 머물렀다.     


30살이 넘어 우연히 친구와 살면서 고향을 벗어났다. 1년이 지나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 엄마와 함께 살면서 통근을 했는데 난생처음 그런 생각을 했다. 혼자서 살아보자, 집을 구할 돈이 없으면 고시원도 괜찮으니 일단 시작해보자, 그런 생각. 당연하게 살아온 도시, 부모님과 함께 살다가 결혼하는 것. 사실 결혼은 나에겐 아득한 이야기였다. 이러한 것들을 벗어나 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나의 무모한 독립생활이 시작되었다.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쉽지 않았다. 소리에 예민하다 보니 고시원 생활은 소음 지옥이었다. 원룸 생활도 만만치 않았다. 집안일과 요리에 익숙지 않아서 허둥대기 일쑤였다. 그래도 괜찮았다. 타지라 외롭기도 했지만 그런 외로움도 좋았다. 매일 같이 다투기만 했던 엄마와도 사이가 좋아졌다. 멀어지니 보이게 되는 것들이 많았다.     


어느덧 독립 6년 차. 소란스러웠던 일상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와 스탠드 불빛을 켜면 시작되는 진짜 나의 하루. 포근한 이불 안에서 좋아하는 책을 펼치고 맥주 한 캔을 벗 삼아 마무리하는 시간. 난 내 삶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었다. 1인분의 소박하지만 단단한 나의 삶을 가장 사랑한다.

작가의 이전글 글이 뭐길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