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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페블 Apr 19. 2021

어깨에 힘을 빼고


문화센터를 통해 미술 수업을 들은 지 한 달이 지났다. 색연필로 식물을 그리는 수업인데 아직은 초보라 연필로 스케치만 하고 있다. 손에 힘을 빼고 그려야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데 그것이 가장 힘들었다. 물론 다른 것들도 쉽지 않았다. 수업은 교재에 있는 그림을 모작하는데 어느덧 세 작품을 완성했다. 처음엔 막막하기만 했던 수업이 선생님의 도움으로 하나씩 완성되어가는 그림을 보며 마음이 곧잘 벅차 왔다.      



어린 시절부터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다. 조금씩 비슷한 이유겠지만 크게 잘 될 소지가 없으니 접근조차 하지 못했다. 어린 시절 방바닥에 누워 연습장에 그림 그리며 놀던 여자아이는 그렇게 그림과 멀어져 갔다. 

몇 년 전 온라인 동호회 앱을 통해 아카펠라 모임에 가입했었다. 그저 노래 부르기를 좋아한 것이 가입 이유였다. 1년 가까이 활동하고 관두긴 했지만 특별한 경험이었다. 그저 좋아하고 관심이 있다는 이유로도 할 수 있다는 것. 어른이 되고서 무엇이 되기 위해서가 아닌 그저 일상을 풍요롭게 보내기 위해 도전하는 일은 즐거웠다.     



미술 수업 역시 가벼운 마음으로 접근이 가능했다. 최근 책을 읽거나 글을 쓰는 일상이 잦아지면서 조금은 색다른 활동이 필요했는데 미술 수업은 거기에 맞았다. 문구점에서 스케치북을 사고 연필과 지우개를 샀다. 첫 시간에 그린 그림은 일주일 뒤쯤 완성이 되었고, 이어서 두 번째 그림 역시도 비슷한 속도로 이어졌다. 선생님은 하나의 작품이 끝날 때마다 잘하고 있다는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고, 그 칭찬이 듣기 좋아 평일 퇴근 시간 이후에도 시간을 내어 그림을 그리곤 했다.      



점차 평일 저녁 시간에 할 일들이 늘어갔다. 읽어야 할 책들과 써야 할 글, 얼른 완성하고픈 그림까지. 내가 좋아서 한 일들인데 그것들이 나를 누르고 있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그러던 중 몸살로 휴일을 침대에 꼼짝없이 누워 보내게 되었다. 아프다고 누워있으면서도 해야 할 일이 생각났다. ‘글 써야 하는데, 내일은 시간이 안 되는데. 어제 미술 수업에서 들은 거 까먹지 않으려면 연습해야 하는데.’ 누워서 쉬어야 하는 상황에서도 마음은 그것에 반발하듯 계속해서 할 일들을 생각해내고 있었다. 그러다 나는 왜 누가 시키지도 않은 것들을 벌이고 나 자신과 갈등을 일으키고 있는지 생각하게 되었다.     



결국은 내가 즐겁고 자 한 일들이었다.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무언가를 배우고 또 그것을 꾸준히 이어가는 건. 내 만족을 위한 것이었다. 몸살이 났던 이유는 그것들에 대한 욕심이었다. 이왕 시작했으니 잘하고 싶은 욕심, 남들에게 잘 보이고 싶은 마음이 차곡차곡 쌓여서 나를 눌렀다. 몸살이 났던 그 날은 무거운 생각들을 제쳐두고 쉼에만 집중했다. 그리고 다음 날 반쯤 괜찮아진 몸으로 생각했다. ‘힘을 빼고 즐기자.’      



우리는 종종 첫 마음과는 다르게 흘러가는 사건과 마주할 때가 있다. 그럴 땐 멈추어서 물어야 한다. 지금 이 방향이 괜찮은 건지. 틀리고 맞고의 중요성을 따지지 않고 자신의 마음에 집중해 보는 것. 남들의 시선에 너무 의식해서 다른 길로 접어들진 않았는지, 혹은 빨리 가고픈 마음에 자신을 돌보지 않고 급하게 가고 있진 않은지. 진심으로 물어야 한다.     



'넌 지금 즐거운 거지? 그럼 힘을 빼고 즐겨!'







사진출처(https://unsplash.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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