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미쓰홍당무>를 보고
최근 2008년 작 영화 <미쓰 홍당무>를 봤다. 시도 때도 없이 얼굴이 빨개지는 안면홍조증에 걸린 그녀, 양미숙이 주인공이다. 그녀는 현 고등학교 러시아 과목 선생님. 그녀는 자존감이 낮고 툭하면 붉어지는 얼굴과 피해망상적인 성격 탓에 일상생활이 쉽지 않다. 학생들에게 무시당하고, 담당하던 러시아 수업까지 인기가 없어져 원치 않던 중학교 영어 선생님이 된다. 그녀의 고등학교 시절 담임선생님이었던 유부남인 된 그를 짝사랑한다. 같은 학교 선생님으로 배정받아서도 짝사랑은 진행 중이며 그 마음을 다스리지 못해 안면홍조증을 치료하러 간 피부과 의사 선생님에게 의논하기까지 한다. 그렇다. 이 영화는 삽질하는 영화다. 1시간 40분간 그녀가 부지런히 삽질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덩달아 부끄러워져 온몸이 배배 꼬이고, 어이가 없어 실소가 터지고, 결국엔 그녀를 안쓰럽게 보게 되는 영화다.
나도 그녀처럼 ‘홍당무’라 불리던 시절이 있었다. 때는 중학교였고, 사춘기가 시작된 나는 부끄러울 일이 참 많았다. 멀리서 누군가 내 이름을 크게 부르면 주변 사람들이 나를 일제히 쳐다보는 그 시선이 부끄러웠고, 수업에서 내 이름이 호명되어 발표라도 하면 순식간에 쏠리는 시선에 얼굴이 달아올랐다. 친구들은 그런 나를 ‘당근’ 혹은 ‘홍당무’라 불렀다. 평범한 얼굴에 별명조차 없던 내가 유일하게 가진 별명이었다. 그로부터 10년은 더 인간 홍당무로 살았다. 편한 공간, 편한 사람들 사이에 있을 때는 괜찮던 얼굴이 낯선 상황만 되면 붉어졌다. 대학에 가서는 더 심했다. 발표해야 하는 상황에서 얼굴이 너무 빨개져 나를 바라보던 이들이 수군거리는 상황은 수두룩했고, 추후엔 목소리까지 파르르 떨렸다. 눈물이 핑 돌았다. 남들은 시원시원하게 말도 잘하고, 얼굴색도 그대로인데 나만 이런 것 같아서 속상했다.
우연히 큰 도시라도 가게 되면 에스컬레이터를 혼자 타는 상황이 두려웠다. 반대편에서 우르르 올라오는 사람들 때문에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그 마음속에는 ‘나를 보면서 웃는 거 같아.’ 혼자 고개를 숙이고 별의별 생각을 하며 몸을 움츠렸다. 고백하자면 영화 속 그녀만큼 나 역시도 혼자 삽질하는 사람이었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지금, 나는 이제 그런 시절을 돌아보며 글로 쓸 수 있게 되었다. 특별한 사건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저 시간이 흐를수록 그런 내 생각이 얼마나 바보 같았으며 나를 갉아먹는지를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남들은 내가 생각하는 것만큼 나를 신경 쓰지 않음을 알았고, 타인의 시선 때문에 내가 놓치며 살았던 것들이 너무 많다는 것도 알았다. ‘누가 웃으면 어때? 웃어보라지.’ 이런 소리가 내 마음 안에서 들리기 시작했다. 처음엔 속삭이던 소리가 어느 순간 점점 커졌다. 그건 내가 나를 챙기면서부터였다. 나보다 타인이 더 중요할 때는 몰랐던 일, 내 삶의 우선순위가 내가 아니어서 알지 못한 일이었다. 주변 지인들이 건네는 말도 힘이 되었다. "괜찮아. 신경 쓰지 마, 좀 더 자신감을 가져도 괜찮아." 이따금 건네준 그들의 말에 우울했던 몸과 마음이 날마다 조금씩 개어갔다.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정말 괜찮은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정말 괜찮아졌다는 걸 알아차렸다.
영화의 후반부로 가면서 그녀는 짝사랑 선생님의 고등학생 딸과 친해진다. 세상 속 아웃사이더 같던 두 사람은 서로 함께 지내면서 주변을 다정한 시선으로 바라보기 시작한다. 둘이서 함께한 공연 속 대사처럼 “그래도, 고맙습니다.”라고 세상을 향해 말을 건넬 수 있게 된다. 비록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날 좋아하지 않고, 실수투성이인 인생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결국 필요한 건 나를 진심으로 아껴주는 나, 마음을 나눌 수 있는 다정한 친구, 어떤 상황에서도 “그래도, 고맙습니다.”라고 외칠 수 있는 마음. 이 정도면 충분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