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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페블 Jun 21. 2021

기대로부터 자유로워지기


‘2018년 5월 5일 오후 2시, 학교 정문.’

중학생 때 친구들과 교환일기를 쓰며 20년 후 만남을 약속했다.    


 

그날 집으로 돌아와 저녁을 먹으며 가족들에게 친구들과의 약속을 말하는 내게 부모님은 묘한 표정을 지으며 “음, 20년 후라, 가능하려나…”라는 답변을 했고, 나는 “꼭! 만날 수 있어요!!”라며 무단히 화를 낸 기억이 난다.     



글을 쓰는 지금은 2021년 6월. 3년 전 5월 5일엔 약속 장소가 아닌 다른 지역으로 여행을 갔다. 변명을 하자면 함께 일기장을 썼던 친구 중 오래도록 연락을 이어가는 이가 없었고, 20년 후의 약속은 지키고 싶을 만큼 각별하지 않았다. 그날 여행을 가면서 20년 전 묘한 표정으로 날 보던 부모님의 얼굴을 떠올렸다.     



14살의 내가 그렸던 20년 후의 미래에는 결혼 후 아이와 함께하는 가정과 내가 원하는 일까지 하고 있는 워킹 맘의 생활을 막연히 꿈꿨다. 내가 꿈꾸던 미래와 현실의 간극은 너무 컸다. 현실의 나는 결혼은커녕 남자 친구도 없는 생활을 하고 있었다.     

미래에 대한 기대치는 내 현실을 비참하게 느껴지게 했다. 당연하게 이 나이가 되면 이루었으리라 생각한 것 중 어떤 것도 이루지 못한 나는 패배자 같았다. 사실 기대만 없었다면 실망하는 일 따윈 없을 텐데, 나는 어째서 기대와 실망을 번갈아 하는 걸까를 생각했다.



어렸을 적부터 내 몸과 마음에 스민 배움이었다. ‘착한 어린이’, ‘부모님과 선생님의 말씀을 잘 듣는 것’, ‘지각과 결석을 하지 않고 학교생활을 하는 일’ 그러한 일들의 끝에는 멋진 미래가 보장되어있을 것 같았다. 그것에 대한 기대를 의심하지 않았고, 행여나 그 배움에 반하는 일을 하게 되면 누가 나를 혼내지 않아도 스스로 나를 벌했다. 그러나 그 끝에는 꿈꾸던 현실이 기다리지 않았다. 그 ‘꿈’은 누가 만들어주었던가. 나는 정말 꿈을 꾸었던 적이 있긴 한 걸까. 20년이 지나서야 그 배움을 의심하게 되었다.      



생각해 보면 기대는 실망과 함께 움직였다. 내가 기대를 하는 순간 실망 역시 자신의 차례를 기다린다. 그걸 알아차린 어느 날부턴 언젠가부터 기대를 최대한 낮추기 시작했다. 어떤 일이든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했다. 기대하려는 마음이 올라오면 지금 내가 하고 있는 것에 마음을 쏟았다. 진심으로. 

눈앞의 일에 열중했고 즐거운 마음으로 임했다. 결과는 내 영역 밖이었다. 내가 원하는 결과가 되면 기쁘겠지만, 되지 않더라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최선을 다하는 동안 느낀 감정 덕분이었다. 이미 마음을 다하였기에 결과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몇 달 동안 일주일에 한 편씩 글을 쓰면서 내가 쓴 글이 타인에게 많이 읽히고 사랑받으며 글 쓰는 삶이 수입으로 연결되는 미래를 바란 적이 있다. 또 가만히 누워 있던 어떤 날은 세상을 향해 고갯짓을 한 이 글로 인해 내 삶이 얼마나 풍요로워졌던가를 생각한 적이 있다. 내 마음에 난잡하게 어질러진 말들을 건져내어 줄지어 놓았던 이 글로 내가 받은 위로의 크기는 얼마였던가. 기대를 낮추고 지금의 순간을 맛보는 일이 이런 것이 아닐까. 그저 내게 주어진 이 삶의 한 줄기 빛을 사랑하는 일 같은 것.     



물론 기대는 여전히 나를 시험에 들게 한다. 새싹이 올라오면 꽃이 피길 기대하고, 꽃이 피면 열매가 맺길 기대하는 일은 당연한 생각의 흐름이라 생각했는데 그 당연함은 사실 당연함이 아니라는 걸. 그저 지금의 새싹을 많이 지켜봐 주고 사랑해 주는 그 일에 집중하는 것이 기대로부터 자유로운 내가 되는 일임을 안다. 나는 또다시 쓰고 읽어가며 지금 내게 주어진 것들을 고요히 받아들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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