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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페블 Jun 14. 2021

책이라는 세계



퇴근 한 시간 전이면 사무실 밖 골목에선 어린아이의 소리가 들려온다. 아이의 어린이집 하원 시간 후 부모와 아이가 함께 집으로 돌아가고 있다. 아이는 소리가 나는 신발을 신고 그 작은 걸음으로 삐삐삐 소리를 내며 거침없이 뛰다가 곧이어 “아가, 차가 오면 위험하니깐 한 방향으로 걸어야 해.”란 엄마 말에 살금살금 걸음 소리를 바꾼다. 작년엔 엄마 등에 업혀있던 동생도 이제 걷기 시작했는지 아이들의 발소리는 더 요란하고 경쾌해졌다. 곧 아이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안녕!”, “안녕히 가세요.”란 말을 제법 또박또박하며 친구와 친구의 엄마에게 인사를 한다. 몇 달 전부터 이 시간이면 밖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그 이유는 책 <김소영-어린이라는 세계>를 읽고부터였다. 우연한 기회로 읽게 된 이 책은 내가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또한 모르고 있는 이야기였다. 나 역시 어린이라는 시절을 거쳤음에도 낯설고 신비하게 느껴지는 어린이들의 이야기였다. 생각해보면 주변으론 늘 어린이가 있었다. 내가 고학년이 되었을 때도 이웃집엔 어린이가 있었고, 내가 중‧고등학생 때에는 사촌 동생이 어린이였다. 친구들이 결혼 후 아이를 낳고 시간이 흘러서 만나게 되면 그 아이는 어린이가 되어있었다. 아이는 언제나 내 주변에서 함께 하고 있었지만, 나는 크게 관심을 가지지도 눈여겨보지도 않은 채 살았다. 책 한 권을 통해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된 것이다.         


 

어린이는 자라서 어른이 되기 때문에 소수자라기보다는 과도기에 있는 사람들이 아닌가 생각해 보기도 했다. 그런데 나 자신을 노인이 될 과도기에 있는 사람이라고 여기지 않는 것처럼, 어린이도 미래가 아니라 현재를 기준으로 생각하는 것이 맞다. 또 어린이가 청소년이 되고 어른이 되는 사이에 늘 새로운 어린이가 온다. 달리 표현하면 세상에는 늘 어린이가 있다. 어린이 문제는 한때 지나가는 이슈가 아니다. 오히려 누구나 거쳐 가는 시기이기 때문에 모두가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야 하는 일이다.”          



책에는 이런 이야기가 적혀 있었다. ‘과도기에 있는 사람’ 그랬다. 나 역시도 그렇게 생각했다. 어차피 곧 청소년이 되고 어른이 될 텐데 그리고 어른이 되면 제대로 기억도 못 할 그 어린 시절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어린이들의 호기심, 천진함, 순수함. 책은 그런 어린이의 마음을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듯 관찰하며 그에 대한 세계뿐 아니라 독자들에게 자신의 어린 시절을 여행하는 시간을 함께 만들어주었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을 선생님에게 알려주고 싶어서 괜히 그 앞에서 서성거렸던 아이, 집에 돌아오자마자 엄마를 붙자고 그날의 일들을 미주알고주알 말하던 아이. 내게도 존재했던 그 시절. 책을 읽으며 저자가 만난 어린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잊고 지낸 시절에 대한 기억과 함께 현재 내 주변에 있는 아이들 역시 떠올리게 되었다. 오랜만에 만난 나에게 그동안 받은 상장을 꺼내와 내게 보이고, 나와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이따금 쳐다보던 눈길들. 귀찮다고 생각한 것이 미안해지던 순간이었다.          



책을 읽고 나선 길에서 만나게 되는 아이들을 눈여겨보기 시작했다. 저 아이들에겐 어떤 호기심과 어떤 이야깃거리가 있을까. 엄마 손을 잡고 걸어가는 아이를 보았던 적이 몇 번 있었다. 몇 걸음마다 궁금한 것이 생겨서 엄마에게 "저건 뭐야?"라고 쫑알쫑알 물었고, 궁금한 것은 보이면 손으로 만져보기도 했으며 길에서 곧잘 쪼그려 앉아 5분이면 갈 거리를 10분 넘게 들여다보고 궁금해했다.

일상을 바쁘고 무심하게 지나치며 살다 보니 느리고 천천히 흘러가는 아이들의 시간을 몰랐다. 아이들은 시간을 저렇게 다채롭게 보내고 있었구나, 자주 감탄하고 궁금해하며 세상을 살아가는 존재였구나. 저 작고 소중한 아이들이 안전하게 살아갈 세상을 부모뿐만 아니라 모든 어른이 함께 만들어주어야 하는구나. 이런 다채로운 생각들을 우연히 만난 책 한 권으로 쉼 없이 생각의 가지를 만들었다.     



책은 나에게 늘 새로운 세계를 열어줬다. 어린이들의 세계부터 나무의 세계, 동물의 세계, 과거의 어떤 날과 사람들까지도. 내가 마음의 빗장을 열면 그 세계는 기꺼이 책 속의 세계를 펼쳐주곤 했다. 오늘도 책장 앞에서, 도서관에서, 서점에서 여러 책들을 사이에 두고 내 세상과 책의 세상이 만날 그 순간을 기다린다.






/ 사진출처(언스플래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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