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4월 16일의 단편적인 생각들
*영화 <생일>을 보고 문득 든 생각들을 정리해 나열했다.
혹여나 읽게 된다면 그저 지나가는 생각 정도로 여겨주시길.
영화 <생일>(2018)
1. 2014년 4월 이후, 이야기는 남은 사람들에게 말을 건넸다. 세월호 참사는 어떠한 기표도 없이 ‘회복 불가능성’으로 이야기되기도 했고, 돌아올 수 없는 아이로 은유되기도 했고, 정말 악질스럽게는 스릴러의 소재로서 영화에 도입되기도 했다. 혹자는 국가적 비극인 세월호 참사를 허구의 이야기에서 말하기엔 너무 이르지 않냐고 지적한다. 하지만 알게 모르게 이미 많은 이야기엔 그때의 비극이 녹아들어 있다. 그렇다면 따져야 할 건 전면에서 소재로 다루는가, 다루지 않는가. 다룬다면 '어떻게' 다루고 있는가일 것이다. 또 한편 ‘해양사고’, ‘침몰’ 등은 2014년 이후 한국 사회의 이야기에서 단순한 소재로 기능하지 못한다. “세월호 참사는 상으로 맺혔다 사라지는 게 아니라 콘택트렌즈마냥 그대로 두 눈에 들러붙어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 눈 자체로 변할 것이다”라는 소설가 김애란의 지적처럼(『눈먼 자들의 국가』, 문학동네, 2014), ‘세월’이라는 단어를 쓸 때, 돌아오지 못하는 아이를 작중 인물로 삼을 때, 바다를 배경으로 삼을 때 한국문화의 자장 안에선 2014년 4월의 비극을 떠올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어쩌면 참으로 오래, 단어들은 2014년 이전의 기의를 찾지 못할 것이다.
2. 영화 <생일>은 ‘세월호’라는 기표를 직접적으로 사용한 영화다.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열여덟의 아이. 그를 둘러싼 유가족의 모습이 전면에서 언급되고 이야기된다. 그러면서 <생일>이 풀어내는 건 ‘남은 사람들의 이야기’다. 이 영화는 당연히 허구다. 영화의 크레딧에서 볼 수 있듯, 세월호 참사를 다루고 있지만 “여기 등장하는 인물과 사건은 모두 꾸며낸 이야기”다. 그렇다면 국민적 무의식에 작용하는 비극의 기표를 끌어안고서, 실재하는 고통을 영화의 허구에 어떻게 녹여낼 것인가. 많은 사람들이 영화 <생일>의 제작에 우려를 표한 건 그런 이유에서였다.
3. 결론부터 말하자면 <생일>은 남은 사람들 모두의 영화다. 이때의 ‘남은’은 세월호 유가족뿐만이 아니라 그날 이후를 살아가고 있는 한국 사회 속 모두를 포괄한다. 이 영화가 궁극적으로 말하는 건 ‘기억’이고 ‘애도’다. 2014년 세월호 참사로 아들 수호를 잃은 부부. 영화는 두 사람을 좇으며 수호를,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는 사람들을 보여준다. 영화 속 혹자는 세월호 참사의 유가족들과 자신의 생업을 비근하게 비교하기도 하고, 또 혹자는 ‘돈’을 들먹인다. 이 가운데서 아이의 흔적을 끌어안은 채, 아이의 옷을 하나씩 사모으는 엄마 순남이 살고 있다. 순남은 아들의 방에서 홀로 울며, 다른 사람들과 슬픔을 나누려하지 않는다. 순남의 슬픔은 가족 안에 꽁꽁 묶여 밖으로 나서질 못한다. 반면 아빠인 정일은 아들의 죽음을 외면하고 살아왔다. 아들의 친구도, 발 사이즈도 제대로 모르는 정일은 아들의 죽음, 그리고 가족의 비극을 회피했던 아빠다. 그래서 정일은 비극 밖에서 가족 안으로 들어오는 사람이다.
순남과 정일은 갈등은 그래서 필연적이다. 순남은 아들의 죽음을 다른 사람들과 함께 애도하려 하지 않으며, 아들의 죽음이지만 정일의 위치는 바깥의 사람에 가깝다. 한편 관객은 정일과 가까운 사람들이다. 이 영화의 시작이 비행기 위에서 한국 땅을 내려다보고, 차 안에서 동네 거리를 내다보는 정일의 시점인 건 다수의 관객은 바깥사람에 가깝기 때문이다. 마치 영화 <택시운전사>가 외부인 만섭의 시선으로 관객을 80년 광주에 당도하게 했듯이. 그래서 다수의 관객은 정일과 마찬가지로 알 수 없다. 순남이 왜 남편 정일에게 문을 열어주지 않는지, 왜 아들의 생일을 같이 축하해주려고 하지 않는지. 당사자의 내면이 어떤 복잡함을 띠고 있는지 바깥사람으로선 짐작만 할 뿐. 그의 모든 걸 정확하게 알고 있다고 자신하는 건, 바깥 사람의 환상이요, 복잡한 한 인간에 대한 기만이다.
4. 그랬던 두 사람은 ‘생일’ 잔치에서 공동의 기억을 통해 아들의 파편을 찾아간다. 절친한 친구가, 수호 덕에 살 수 있었던 학교 친구가, 친구의 엄마가, 수호의 후배가 기억하는, 한 사람 수호를 말이다. 그건 순남이 알고 있던, 정일이 알고 있던 아들 수호와는 또 다른 면의 수호다.
이 공동의 기억을 통해 순남의 슬픔은 안에서 밖으로 확장되고, 정일의 슬픔은 밖에서 안으로 진입한다. 늘 수호 생각을 하며 홀로 울던 순남은 수호를 기억하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웃고’ 울 수 있게 되고, 정일은 그제야 목 놓아 ‘울게’ 된다.
세상을 살다간 한 사람을 애도하는 방식은 눈물과 슬픔만이 아니다. 생각하며 웃음 짓고 또 그리워 눈물짓는 게 간 사람을 기억하는 산 사람의 애도일 것이다. 이는 참사의 유가족들에게만 해당되는 얘기가 아니다. 장례식장의 웃음과 눈물, 또 눈물과 웃음처럼, 인간 보편의 애도다. 순남과 정일은 그 ‘애도’를 수호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함께 모인 수호의 생일에서야 비로소 함께 할 수 있게 된다.
5. 그래서 이 영화에서 가장 돋보이는 건 바로 '연대’다. 수호의 생일을 마련해주는 사람들, 그곳에 참석해 수호를 같이 기억해주는 사람들, 순남과 정일과 함께 울고 웃어주는 사람들. '기억의 연대'는 그렇게 다져진다. 영화 속 혹자는 그들의 울음 때문에 ‘재수를 망쳤다’고 말하고, 돈을 운운하며 이제는 그만하라고 말한다. 하지만 순남의 곁엔 아들이 보고 싶어 엉엉 울 때 달려와 안아주는 이웃이 있다. 집을 나왔을 때 남은 아이를 돌보아줄 친척이 있다. 함께 수호의 생일을 축하해주고 수호를 기억해주는 사람들이 있다. 같이 웃어주고 울어주는 사람들이 있다. 그래서 순남과 정일은 서로 다른 방향으로 애도를 진척시키다가 결국 수호의 생일에서 만나, 한 가정에서 다음 날을 살아내게 된다. 남은 사람은 그렇게 살아간다.
6. 영화가 사고 장면을 직접적으로 재현하지 않는 건, 그리고 세월호를 소재로 블록버스터 영화가 제작된다는 속설에 대중이 아연했던 건, 대중은 이미 그 모든 일련의 과정을 두 눈으로 지켜봤기 때문이다. 24시간 내내 뉴스 생중계로 보았는데도 구하지 못했다는 슬픔은 무의식 속에서 강하게 작동한다. '눈 앞에서의 상실'이란 기억은 '눈 앞에서의 상실 재현'에 강한 반동을 불러일으킨다. 나 역시, 아직은 영화적 재현을 보고 싶지 않다. 볼 자신이 없다. 그때 당시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재현하지 않아도, 우린 단어와 상황 몇 개만으로도 충분히 알 수 있다. 떠올릴 수 있다. 그날을 기억하는 사람에겐 어쩔 수 없이 작동되는 상상력이다.
하지만 도리어 이 영화가 재현하고자 하는 건, 한 사람의 이름이다. 누군가에겐 애인 같은 아들이었고, 착한데 눈치는 없던 친구 아들이었고, 태풍이 올 때마다 생각나는 친구였고, ‘야마카시’를 보면 떠오르는 선배였던 한 사람. 그래서 ‘생일’은 그리고 영화 <생일>은 일종의 제의다. 그 사람의 이름을 부르고, 그 사람과 함께 했던 시간들을 추억하며, 그렇게 다 같이 기억하는 제의. 수호는 허구의 인물이지만 그 한 사람의 생애를 바라보는 건, 수호처럼 한 개인이었을 수많은 개인들을 기억하는 것으로 나아간다. 누군가에겐 딸이었고, 아들이었고, 친구였고, 가족이었고, 제자였고, 선배였고, 후배였고, 연인이었고, 부모였고, 선생님이었을. 그 무수한 개인들의 면면을. 이름을.
7. 영화를 보고 난 후에 가장 먹먹했던 건 재현할 수 있었던 게 그의 ‘이름’ 뿐이었다는 것이다. 여러 사람이 가진 기억의 파편으로 우리는 수호를 알게 되고, 기억하고, 함께 울고 웃을 수 있었다. 그러나 정작 수호가 어떤 사람이었는지에 대해서 관객은 완전히 알 수 없다. 누군가의 아들이었고, 오빠였고, 친구였고, 선배였고, 친구 아들이었던 수호를 남은 사람들의 기억에 의존해 더듬을 뿐이다. 허구 속의 수호도, 현실의 어떤 이름도. 나는 그래서 바깥사람이다.
8. 바깥사람인 나는 순남처럼, 정일처럼 수호를 그리워하진 못할 것이다. 그들만큼 자주, 먼저 간 사람을 생각하며 울고 웃지 못할 거다. 하지만 나는, 그리고 나와 같은 수많은 사람들은 그 생일잔치 한 자리에 기꺼이 앉아 있으려 한다. 어쩌면 나였을, 내 가족이었을, 친구였을, 후배였을, 선생님이었을 그 무수한 이름들을 기억하기 위해. 그리고 그들을 기억하는 많은 사람들과 함께 애도하기 위해.
9. 2019년 4월 16일, 참사로부터 5년이 지난 광화문. 여전히 사람들이 줄 서 있었다. 올해는 헌화할 꽃도 없었고, 분향소도 마련되어 있지 않았는데도. 작은 태블릿에 방명록을 남겨 희생자들에게 그리고 유가족들에게 한마디 말을 전하고자 사람들은 긴 줄을 서서 기다렸다. 수호의 생일을 축하해주었던 사람들의 마음처럼, 그들을 기억하고 애도하려는 작은 마음들이 켜켜이 그곳에 쌓여갔다.
내 뒤에 서 있던 한 시민의 말소리가 들렸다. 언젠가 안산에 내려가 유가족들을 만났었는데 그들 중 한 분이 “어떤 사람들은 유가족이 웃어도 욕을 하고 울어도 욕을 한다”고 말했었다고. 귀동냥으로 그 말을 들으며 <생일>이 보여준, 남은 사람들이 애도하는 법, 남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법을 생각해본다. 그 웃음과 울음마저 왜곡해 받아들이는 혹자들 속에서 내가 그리고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무엇일까. 최고의 방법이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함께 웃고 울고 아파하고 기뻐하며 기억해주는 것 아닐까. 그 공동의 기억이 남은 사람들 모두에게 남은 삶을 살아갈 수 있게 하는 힘이 될 거라고 나는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