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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은비 Aug 24. 2021

반복되는 오늘에 대한 갖가지의 태도

[리뷰] 영화 <팜 스프링스> (Palm Springs, 2020)

* 아트나인 네이버 카페의 '상영작 리뷰' 게시판에 실은 글입니다.




반복되는 오늘에 대한 갖가지의 태도

- 영화 <팜 스프링스>


네이버 영화

<팜 스프링스>는 영화를 보는 중에도 영화가 끝나서도 내내 관객을 알쏭하게 만든다. 겉과 속이 다른 영화, 이 영화를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그렇다. 시선을 확 끌어잡는, 현란하고 발랄한 포장지 안에 잡힐 듯 말 듯 심오하지만 익숙한 연기 같은 것이 있다. 


표면적으로는 로맨틱 코미디를 표방한다. 전체적으로 인물들의 익살스런 기행들이 이어지며 주인공 두 배우의 유쾌하고 감동적인 로맨스가 진하게 묻어난다. 그러나 영화가 취한 다양하고 유쾌한 설정들은 꽤 심오한 사고로 귀결된다. 타임 루프라는 개념을 통해 반복되는 일상으로 구성되는 삶, 벗어나지 못하는 운명 따위를 다룬다. 인물들의 대사와 태도에서는 인생에 대한 철학적 주제가 발견된다.



화창한 팜 스프링스에서 한눈에 보기에도 완벽하고 사랑스러운 한 커플의 결혼식이 열린다. 한편 신부의 언니인 사라(크리스틴 밀리오티)는 시종일관 즐겁지 않은 것은 물론 불안정해 보인다. 그녀는 갑작스레 축사를 해줄 것을 요청 받고 당황하는데, 이때 나일스(앤디 샘버그)가 나타난다. 신부 친구의 남자친구인 나일스는 사라 대신에 축사를 하고 이를 계기로 둘의 관계가 진전된다. 둘은 함께 밤을 보내는데 갑자기 등장한 로이(J.K 시몬스)의 방해로 그 밤은 엉망이 된다. 로이는 나일스를 끈질기게 괴롭히고 나일스는 그런 로이에게서 도망치려 내달린다. 사라는 도통 무슨 영문인지 모르고 당황한 채 나일스 뒤를 조심히 쫓아간다. 나일스는 붉은 조명이 가득한 동굴 안으로 들어서고 사라 또한 그를 따라 들어간다. 이후 둘은 타임 루프에 빠져 지겹도록 반복되는 결혼식 하루를 경험한다. 


삶, 상반되는 것들의 공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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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팜 스프링스>의 독특한 매력은 프레임 속 상반되는 것들의 공존에서 기인한다. 영화에는 전반적으로 표면적인 유쾌함과 내면적인 시니컬함이 공존한다. 나일스와 사라, 두 주인공을 연기한 배우들의 코믹 연기가 인상적이다. 특유의 개구진 코믹 연기로 유명한 배우 앤디 샘버그는 진지한 모습 와중에 능숙하게 익살스러운 연기를 보여준다. 그보다 훨씬 활력과 광기 넘치는 모습으로 등장하는 배우 크리스틴 밀리오티 또한 강렬한 코믹 연기를 선보인다. 짧지만 희한하며 강렬한 댄스 장면, 세상 엉뚱한 이벤트, 능글맞은 얼굴로 소화하는 웃긴 대사 등 시시때때로 유쾌한 에너지가 발산된다.


한편 두 인물은 모두 시니컬한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나일스는 반복되는 하루에 권태를 느끼며 무기력한 모습이고 사라는 자신과 현재를 비관한다. 이들뿐만 아니라 영화에서 몇 번이고 반복되는 ‘그날’ 속 대부분의 인물들은 실수나 일탈행위 등을 저지르는데. 이에 관객은 웃음이 터지지만, 곧 그런 그들의 모습이 삶을 살아가는 엉망인 태도라는 것을 알아차리게 된다. 코미디와 로맨스라는 장르성을 통한 밝은 에너지와, 삶에 충실하지 못한 인간 군상의 모습을 형상화하는 냉소적인 영화의 태도가 한데 섞인다.


긍정성과 부정성 또한 공존한다. 영화의 초반부에서는 나일스와 사라 모두 각자가 권태롭고 어두운 얼굴로 ‘혼자’의 삶을 견디어 가는 모습이다. 이후 둘은 반복되는 하루 안에서 함께 시간을 보내며 어느덧 사랑하는 사이가 되는데. 그렇게 지겨워 하던 현재를 긍정하는 둘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아침에 침대에서 눈을 뜨며 저절로 짓는 이들의 표정에서 삶에 대한 감정이 드러난다. 


이들은 여느 연인처럼 마냥 활기차고 좋다가도 갈등을 빚으며 옥신각신한다. 이러한 둘의 모습은 하나의 긴밀하고 깊은 관계가 갖는 긍·부정성을 보여준다. 영화가 내내 주목하는 사랑으로 맺어진 관계의 기복이 형상화된다. 또한 영화 속에서 삶의 태도와 관련한 철학적 주제들은 인물들이 부단히 경험하고 고민하는 과정 안에서 긍정되다가 부정되기를 반복한다. 우리의 삶에 긍정성과 부정성이 공존하는 것처럼 영화 또한 그렇다.


타임 루프라는 소재를 철학적 주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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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 루프라는 설정은 <팜 스프링스>에서 장르적 재미를 넘어서는 기능을 한다. 이 설정 안에서 영화는 인간과 인생에 대한 예리한 통찰력을 펼쳐 보이며 철학적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영화에서 작용하는 타임 루프의 특성에 세밀히 주목해 보면 가변성과 불가변성을 따질 수 있다. 반복되는 ‘오늘’(이하 오늘)이 시작되는 시공간은 변하지 않는다. 인물들은 각자 특정한 장소에서 같은 시간에 눈을 뜨며 오늘을 시작한다. 잠에 들거나 죽을 경우에 다시 시작 지점으로 돌아가는 원리 또한 불변한다. 흥미로운 점은 가변성에 있다. 눈을 뜨고 일어나 잠에 들기 전까지 인물들은 오늘 안에서 그 어떤 일이든 새롭게 할 수 있다. 이에 따라 상황들 또한 얼마든지 새롭게 바뀐다. 어떤 일이든 새롭게,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지만 시작과 끝 그리고 통제 불가능한 큼직한 사건들은 결코 바꿀 수 없다. 따라서 영화에서 오늘은 마치 운명에 둘러싸인 삶을 상징한다. 


타임 루프에 대한 각 인물들의 서로 다른 반응은 이들 각자의 삶에 대한 태도를 나타낸다. 나일스는 현재의 부정적인 점들을 외면한 채 무기력하게 현재를 보내는 인물이다. 그의 그런 회피성은 과거의 일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그는 과거와 미래 둘 다에 관심을 두지 않고 오직 현재의 편함과 즐거움을 추구한다. 초반부에서 나일스가 첫 등장하는 장면을 살펴보면,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고 그 어떤 의지도 없는 그의 모습이 마치 우울증을 앓고 있는 사람처럼 보인다. 그는 현재의 삶에 순응하지만 삶의 의미와 의지를 잃은 인물이다. 그에게선 허무주의적 태도가 보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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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는 그런 나일스와는 완전히 다른 움직임을 갖는 인물이다. 오늘을 벗어나려 끊임없이 과격한 행동을 취한다. 사라의 행동 양상은 대부분 두 가지로 정리된다. 오늘을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치거나 현실 도피식으로 일탈 행동을 한다. 그녀는 현재의 삶을 부정하며 끊임없이 도피하려 드는 인물이다. 로이는 타임 루프에 빠지기 전에 나일스와 처음 만나는 장면에서부터 자신의 삶에 대해 권태를 느끼는 모습을 보인다. 타임 루프에 빠진 이후 그는 자신을 타임 루프에 빠지게 만든 나일스에게 갖가지의 잔인한 방법으로 복수하는 데 몰입한다. 매번 먼 거리에서 눈을 뜨면서도 기어코 나일스를 계속해서 찾아온다. 그는 자신의 현재를 내팽개친 채 어떤 소득도 없는 일에 매달린다. 그 역시 현재의 삶을 부정하고 현실 도피 행위를 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자신의 현재를 더 나은 것으로 바꾸려는 목적을 갖고 움직이는 사라와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타임 루프 안에서 세 사람은 끊임없는 상호작용을 통해 서로 강력한 영향을 주고받으며 변화한다. 나일스는 감각하게 되고 자신에게 중요한 의미들을 가지게 된다. 현재를 용기 있게 마주하는 사라에게서는 실존주의적 모습이 보이기도 한다. 한편 로이는 현재의 아름다움을 되새기며 현재를 긍정하게 된다. 그러나 이들이 최종적으로 선택한 태도의 결과를 정확히 밝히지 않고 영화가 마무리되며 어떤 태도가 옳고 그른 것인지 영화는 판단하지 않는다.



타임 루프와 다중 우주 등 현실에서 와닿기 힘든 소재들이 결국 현실에 대한 충실한 관점으로 귀결되는 것이 신비롭고 매력적인 영화이다. 반복되는 하루라는 틀 안에서도 뜬금없는 인물들의 행동과 에너지, 끊임없는 사소한 변주, 과거·현재·미래가 겹치는 화면 등은 내내 영화에 대한 호기심을 불러 일으킨다. 


결말 또한 여러 궁금증을 남긴 채 마무리된다. 관객은 영화를 보면서 작중 인물들의 다양한 삶의 태도들 중 하나(혹은 그 이상)에 대해 유독 공감하고 동의하게 되는데. 결국 관객 각자가 선택하는 결말이 각자의 삶의 태도와 연결될 것이다. 태도는 개개인의 선택의 영역이고, 영화는 애초부터 끝까지 많은 확언들을 남발함으로써 정답을 내리지 않는다. 






<팜 스프링스>

(Palm Springs, 2020)

판타지| 90분| 15세이상관람가

감독 맥스 바바코우 출연 앤디 샘버그, 크리스틴 밀리오티, J.K.시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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