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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은비 Nov 01. 2021

이토록 무참하고 환상적이며 기괴한 뮤지컬 영화

[리뷰] 영화 <아네트>

* 아트나인 네이버 카페의 '상영작 리뷰' 게시판에 실은 글입니다.




이토록 무참하고 환상적이며 기괴한 뮤지컬 영화

- 영화 <아네트>


네이버 영화

이토록 무참하고 환상적이며 기괴한 뮤지컬 영화가 있었던가. 내놓는 작품마다 늘 참신하고 과감한 상상력과 연출력으로 관객을 놀라게 하는 레오 카락스 감독의 새로운 도전은 뮤지컬 영화다. 이번 작품 또한 밝고 경쾌한 신들의 비중이 높고 대체로 긍정적 기운이 압도적인 뮤지컬 영화의 관습을 뒤집으며 개성 넘치는 완성도를 이룬다. 풍자와 비참함이 내내 계속되는 가운데 서늘한 서스펜스마저 구축된다. 독특한 정서와 격렬한 에너지가 프레임을 장악한다.


미국 밴드 ‘스파크스(SPARKS)’의 음악, 대사 없이 노래로만 구성되는 성스루 뮤지컬(sung-through musical) 형식과 함께 대부분의 노래들을 배우들이 현장 라이브로 소화하여 뮤지컬적 형식미와 음악적 즐거움을 선사한다. 더불어 신선하고 황홀한 미장센과 이미지들, 감독 특유의 강렬한 디졸브 편집, 명배우들의 경이로운 연기 등을 통해 색다른 영화적 흥미를 창출해낸다.



사랑에 대한 갖은 혼돈

스탠드업 코미디언인 헨리와 소프라노 오페라 가수인 안은 서로 연인 사이로 매스컴의 관심을 뜨겁게 받는다. 이들을 둘러싼 열정과 혼란, 위기 등이 다양한 노래들과 경이로운 미장센을 통해 펼쳐진다. 매스컴에서 이야기하는 내용보다 훨씬 복잡하고 어두운 그들의 실상이 관객에게 드러나기 시작한다. 그 가운데 이들 사이에 딸 아네트가 태어나고 한층 긴장의 기운이 높아진다. 점점 헨리의 내밀한 면모가 모습을 드러내며 그로 인해 안과 아네트는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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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을 파고드는 주제를 비일상적인 연출로 예리하게 구현해내는 레오 카락스의 장점은 <아네트>에서 뮤지컬이라는 장르를 안고 극대화된다. 확신과 의심을 넘나들고 열정과 폭력이 뒤엉키는 사랑의 모양이 시청각적으로 구체화된다. 플롯은 안과 헨리가 함께하며 사랑을 나누는 신들과 각자가 서로 떨어져 홀로 사랑에 대한 고뇌에 빠지는 신들이 번갈아 제시되도록 구성된다. 그로 인해 의심 없이 열렬히 서로 사랑하다가도 혼자가 되어 자신만의 그늘과 상대에 대한 불확신에 사로잡히는 인물들의 모습을 보게 된다. 또한 사랑의 당사자들은 완전히 서로 융합되는 것이 아니라 분리를 반복하며 각자가 독립적인 주체임이 거듭 드러난다. 이들의 단독 신들에서 우리는 이들 각자의 서로 다른 입장을 알 수 있다.


여기서 흥미로운 지점은 헨리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연애의 관계뿐만 아니라 대중과 스타의 관계에서도 비슷한 문제가 발생하는 양상을 집어낸다. 화면 속의 대중은 스타를 사랑한다고 맹렬하게 외치다가도 금세 혐오하고 비난하는 모습을 보인다. 스타인 헨리 또한 그런 대중을 어리석다고 여기고 그들에게 마음을 열지 못 하면서도 한편 대중에 의해 보상 심리를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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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인물들의 복잡한 정서, 흐릿한 내면, 어두운 욕망 따위를 여러 이미지들과 감각으로 섬세하게 형상화한다. 변주하며 반복 등장하는 몇몇 공간들은 인물의 심정 변화와 인물들 간의 관계 변화를 나타낸다. 좋은 시절 싱그러워 보이던 숲과, 안과 헨리의 집 밖 풍경은 점점 생기를 잃어 간다. 가장 비밀스러운 존재로 등장해 영화의 긴장을 끌고 가는 인물인 헨리의 내밀한 심연은 캄캄한 공간으로 돌입하는 그의 모습의 신들에서 섬세하게 표현된다. 그의 열정적이고도 파괴적인 욕망은 물이라는 액체를 통해 표현되고 어두운 그의 공연장의 연출 또한 의미심장하다. 



다채로운 흥미와 전율의 입체성

영화에서는 여러 차원의 경계를 무너뜨리며 풍부한 즐거움을 만들어낸다. 카메라 뒤에 있어야 할 감독은 영화의 시작과 끝에 프레임 안으로 들어와 관객에게 직접적인 메시지를 전한다. 이어 오프닝 넘버에서 주인공들이 함께 등장한다. 한데 뭉쳐 합창하던 주인공들은 바로 다음 장면으로 넘어가면 각자의 캐릭터로 돌아가고 그들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또한 인물들은 때때로 관객을 응시하듯 카메라를 마주보고 방백처럼 관객을 향해 말을 한다. 영화의 시작부터 카메라의 경계가 무너지고 실제 뮤지컬 공연과 같이 이야기의 안팎을 넘나들며 무대의 경계가 깨진다. 스타인 헨리와 안, 그들의 무대 위의 모습과 무대 밖의 생활도 번갈아 제시된다. 그렇게 공간이 달라지지만 그들의 노래는 계속되고 그들의 움직임은 리얼리티와 연극적 표현을 왔다갔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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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화면 안에서는 여러 인물들의 주관적인 시점이 자주 드러난다. 우리는 이중 프레임뿐만 아니라 철저히 각 인물들에 의해 대상화된 풍경을 목격하게 된다. 영화에서는 스타 가족인 헨리와 안, 딸 아네트의 이야기를 다루는 매스컴 뉴스 화면을 거듭 제시한다. 화면 안에서 이들은 러닝타임 내내 매스컴의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 하다. 뉴스에서 다루는 그들의 이야기는 지극히 표면적이며 단순하다. 우리는 그들의 실상을 확인하며 매스컴에서 대상화된 그들의 모습과 그들의 현실의 괴리를 더욱 느끼게 된다. 영화는 스타의 입장에서 매스컴과 대중이 어떻게 보이는지 그 시각 역시 제시한다. 정신이 아찔하도록 터지는 수많은 카메라 플래시들과 큰 소리로 쏟아지는 대중의 발언들. 그런 풍경과 함께 헨리의 노래들을 통해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인물들이 서로의 입장에서 어떻게 대상화되는지도 제시된다. 스타로서 그리고 사랑하는 애인으로서 안을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한 헨리의 마음이 확인된다. 안 또한 단독 신들에서 노래를 통해 헨리에 대한 심정이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그들의 딸인 아네트는 인형의 형상으로 등장하는데 그 자체로 가정 내에서 아네트의 존재감이 어떠한지 느낄 수 있다. 다각도로 바라보며 여러 인물들의 시점을 반영하는 영화는 더욱 입체적으로 느껴지며 다채로운 흥미와 전율을 안긴다.



사랑에 있어서 인간의 마음이 어떻게 생겨나고 죽는지, 욕망들은 어떻게 틈틈이 샘솟으며 주체를 장악하고 대상에게 영향을 가하는지, 즐거움이 고통으로 어떻게 전이되는지. <아네트>는 사랑에 대한 갖은 혼돈을 능히 감각적으로 펼쳐 보인다. 그 변덕과 엉킴 그리고 굴레 따위로 인해 몸부림치는 인물들과 그들의 감정과 욕망이 마구 생동하는 이미지들이 가득하다. 


영화의 이러한 비극적 세계 안에서 미래를 상징할 ‘아네트’는 대상이 되고 주체가 된다. 영화의 제목이 아네트이며 이 영화를 자신의 딸에게 바친다는 감독의 메시지를 화면에서 확인할 수 있는 만큼, 영화가 관객에게 전달하려는 바는 아네트라는 인물에게 집중할 때 선명해진다.






<아네트>

(ANNETTE, 2021)

뮤지컬| 141분| 15세이상관람가

감독 레오스 카락스 출연 아담 드라이버 마리옹 꼬띠아르 사이먼 헬버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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