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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서정 시인 May 15. 2024

[리뷰] 13. 이보다 더 감동적일 수는 없다.

이호준 시인께서 읽어주셨습니다.

조서정 산문집 『엄마를 팝니다』

내 이럴 줄 았았다니까. 호랭이보다 마마보다 마약보다 더 무서운 책을 만나고 말았다. 정선 골짜기를 오르내리며 취재하랴, 틈틈이 원고 쓰랴, 이사 준비하랴. 관훈저널 편집하랴.(돈 버는 거 빼고는 다 잘하는구나) 책을 읽는 게 아니라 숨 쉬는 것도 아까운 판에 내 몇 시간을 몽땅 훔쳐가다니. 미루고 미루다, 낯선 땅 모텔 방에 누워서 단숨에 읽고 말았다. 그리고 잠시 쉬는 틈에 후다닥 쓴다. 조서정 시인의 산문집 『엄마를 팝니다』(달아실)에 대해.


소개는 하지만, 아울러 경고도 한다. 엄마를 판다는 발칙(?)한 제목의, 그러면서도 뒤춤에 우물 같은 사랑을 감추고 있는 게 분명한 이 책에 한 번 빠지면 헤어나지 못할 수도 있으니 부디 조심하시라. 중간에 덮고 싶어도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서 덮을 수 없다. (꼭 읽어보라는 이야기를 어렵게 한다)


솔직하다. 드라마틱하다. 실감난다. 아기 낳는 장면에서는 당신도 덩달아 힘을 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아픔 속에서도 환장하게 재미있다. ‘첫날밤‘의 한 대목을 옮겨 내 말을 증명한다.


‘스물두 살 총각의 정열은 당장 호랑이에게 물려갈 것 같은 공포마저 다 집어삼킬 만큼 강했던 것일까? 결국 엄마는 혼인 사흘 앞두고 깜깜한 산길에서 약혼자가 깔아준 와이셔츠를 원앙금침 삼아 불한당 같은 약혼자에게 여자를 도둑맞았다고 한다. 그래서 엄마의 첫날밤은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눈 깜짝할 사이에 여자를 도둑맞은 날로 평생 기억되었다.’


슬픔을 깔고 앉아 웃음을 깨물게 하는 이런 문장은 또 얼마나 재미진지.


‘7년여의 세월 동안 오로지 애를 낳기 위해 긴긴밤을 하얗게 불태웠을 두 분의 노력 때문에 드디어 엄마가 태몽을 꾸었다고 한다.’


책을 읽다 보면 내 할머니, 내 어머니에게 들은 신산한 삶이 고스란히 복사돼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당시 시골 사람들의 삶이 크게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만 조서정 시인의 맛깔나는 글솜씨와 진솔한 기술(記述)이 에피소드를 문학판으로 끌어올렸다. 이 책이 재미로 끝나지는 않는다는 것은 당신도 짐작했을 것이다. ‘아버지의 여자가 아닌 4남매의 엄마로만 살아온’ 한 여인의 삶 앞에서 먹먹해지지 않을 독자는 없다. 그런 인생 앞에 ‘간난신고’, ‘파란만장’ 같은 단어쯤은 부끄러워 도망칠 수밖에 없다.


“산을 헤매고 다닐 때는 약초 하나라도 더 캘 욕심으로 아무도 생각도 안 났는데 다 캐고 집으로 돌아올 때쯤 되면 환청처럼 들려오는 애 우는 소리에 고막이 찢어질 것 같더라. 그래서 구럭을 멘 채로 산에서 데굴데굴 굴러가면서 집으로 정신없이 뛰어왔어. 그렇게 정신없이 뛰다 보면 칭칭 동여맨 기저귀 속에서 퉁퉁 불은 젖이 줄줄 흘러내려서 집에 도착했을 즈음에는 윗옷이 다 젖어 있더라.”


“야! 나는 아홉 살 때부터 절구에 방아를 찧어 밥 해먹었어. 그리고 아버지가 소 먹일 풀을 베어 오라고 해서 엄니랑 둘이 열심히 풀도 베고 그랬지. 지금 생각하면 우리 아버지는 학교도 안 보내주고 왜 그렇게 일만 시켰나 모르것다.”


한 어머니가 살아온 ‘과거’만 등장하는 건 아니다. 원주민이 열 가구 남짓한 시골 동네에서 혼자 사는 노인의 소소하고 특별한 일상이 수묵화처럼 그려져 있다. 마을회관에서 고스톱 치는 이야기도, 노인이 젊은 층과 어울리기 위해 애쓰는 이야기도 있다. 엄마와 자식들의 유머 넘치는 대화는, 어쩌자고 슬픔과 행복을 동시에 안겨 준다. 그러면서 문득, 나는 지금 제대로 살고 있는지, 돌아보게 한다. 어버이날 전후로 100만 부쯤 팔렸어야 할 책이다.


내가 끝으로 남기고 싶은 말은 딱 한 가지다. 삭막한 세상에 단비 같은 이 이야기를 시트콤적 TV드라마로 만들면 안 될까? 정 어려우면 인간극장이라도…. 바쁜 중에도 적극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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