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를 팝니다> 비경쟁독서토론에서
1. 산문집 『엄마를 팝니다』 소개
●제목은 큰 고민없이 두 번째 시집에 들어있는 「엄마를 팝니다」라는 시에서 가져왔습니다. 왜 엄마를 팔겠다는 생각은 아버지 먼저 보내고 시골에서 혼자 살고 계신 엄마에게도 좋은 이성 친구가 생겼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붙인 제목입니다.
엄마의 인생에서 남자는 아버지 단 한 분이었습니다. 요즘 말로 하면 연애 경험이 단 한 번도 없었는데요. 중매로 아버지를 만나 결혼해서 바로 가난한 현실로 직행한 삶이기 때문에 같은 여자로서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이런 생각을 하다가 엄마한테도 좋은 이성 친구가 생기면 지금까지 경험해 보지 못한 연애 감정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하다가 지은 제목입니다.
●전체 구성은 총 4부로 되어 있습니다.
1. 2부에서는 부모님의 중매부터 첫날밤부터 시작해서 어렵사리 아기를 낳게 된 배경 그리고 모진 시집살이에서 피어난 삶의 지혜들로 엮어봤습니다. 힘들고 고된 삶이었지만 그 속에서도 사랑이 꽃피던 시절이 있었다는 건데요. 가난한 현실 속에서 인간에게 주어진 기본 본성마저 억누르고 살 수밖에 없었던 우리 부모님들의 사랑과 아픔을 되짚어 보고 싶었습니다.
3부는 아버지를 먼저 보내고 홀로 남겨진 엄마의 현재의 삶을 담았습니다. 현재 엄마의 건강 상태는 외로움과 우울증을 동반한 인지장애 초기 상태입니다. 한 마디로 노인성 치매로 진행되는 단계라고 할 수 있는데요.
제 부모 세대 여성의 삶은 개인의 욕망보다는 삼종지도를 강조하던 유교 사회에서 여자에게 부여한 욕망과 가족이 엄마에게 부여한 욕망을 자신이 살아가는 이유라고 여기며 살아온 세대입니다. 제 어머니 역시도 꼭 아기를 낳아서 대를 이어야 한다는 시어머니의 욕망을 자신의 욕망이라고 여기며 살아온 분입니다. 그러다 보니 어머니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화두는 자식을 잘 낳아서 잘 키워내야 하는 당신의 유일한 삶의 의미이자 종교였습니다.
●행복의 가치를 어디에 둘 것인가?
제 어머니의 삶의 목적이 처음부터 자식을 쑥쑥 낳아서 잘 키우는 것뿐이었을까요? 저의 어머니도 처음에는 어린 시절에 고생을 많이 했으니 돈 많은 집에 시집가서 남편 사랑 듬뿍 받으면서 한 여자로서의 행복하게 살고 싶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현실이 부유한 집에서 남편 사랑 듬뿍 받으면서 행복하게 살고 싶다는 욕망을 억압한 채, 아이 잘 낳아서 잘 키우는 것으로 변질시킨 것이지요. 즉 내가 원하는 삶의 가치에서 가족이 원하는 삶의 가치로 변환된 것입니다. 그래서 결혼과 동시에 어머니 개인의 욕망은 철저히 배제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아버지의 욕망도 연쇄적으로 짓눌리게 된 것이지요. 그리고 아버지는 항상 자신보다는 남을 위해서 봉사하는 삶을 사셨으니 두 분 다 타자의 욕망을 욕망하느라 자신의 행복을 돌보지 못한 셈입니다.
라캉이라는 정신분석학자는 이러한 삶을 “타자의 욕망을 욕망한다”고 해석했습니다. 즉 내가 원하는 욕망이 아닌 다른 사람들(사회, 도덕, 부모, 가족, 타인, 애인, 친구 등등)이 나에게 부여한 욕망을 내 욕망인 것처럼 착각하면서 살아간다는 뜻입니다.
우물 안의 개구리처럼 착각 속에서 영원히 살아간다면 별문제가 없겠지만, 언제가 자신의 착각에서 깨어나는 순간이 오면 그간의 삶이 너무 허무하고 억울하게 느껴질 것입니다. 결국 타자의 욕망을 욕망하는 삶은 결핍을 낳는 구조가 됩니다.
그래서 저의 어머니도 자식들이 품에서 다 떠나가고 아버지도 돌아가신 뒤에 홀로 시골에 남겨진 이후에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고는 늙어 병들고 힘없는 노인네가 되어보니 내 지난 삶이 너무 억울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모든 답은 현재에 있다.
노인성 치매의 진행 속도를 앞당기는 원인 중 하나가 우울증이라고 합니다. 엄마는 당신이 살아온 젊은 날의 시간을 반추하면서 병들고 늙은 몸만 남은 당신의 생을 억울해하셨습니다. 그래서 지금 현재가 엄마의 생에서 가장 젊고 아름다운 날이다. 그러니 현재를 즐기시라는 뜻에서 니체가 말한 영원회귀와 물리학에서 말하는 에너지보존의 법칙을 알기 쉽게 설명해 드렸습니다.
영원회귀 사상을 쉽게 직역하면, 슬프고 우울하게 살다가 죽으면 죽어서도 슬프고 우울한 상태에서 영원히 벗어날 수 없으니 지금부터 즐겁고 행복하게 살아야 한다. 지금부터라도 즐겁고 행복하게 살면 죽은 이후에도 영원히 즐겁고 행복한 상태에 머무를 수 있다고 설명해 드렸습니다.
그때부터 엄마하고 유머로 대화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랬더니 엄마도 자식들과 대화할 때마다 한 번 더 생각해서 유머로 맞받아치는 겁니다. 유머는 주어진 현실에서 한발 물러서서 바라볼 수 있는 여유를 확보하는 방법입니다. 그 과정에서 당신의 재치에 사람들이 반응하는 것을 보면서 즐거워하기 시작했습니다. 덕분에 두뇌 회전이 빨라져서 치매 증상도 많이 좋아지셨습니다.
●궁극적인 죽음에 대한 의미를 찾아서
4부는 앞에서 말한 죽음에 대한 화두를 담았습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의 존재에 대한 궁금증을 가지고 있습니다. 불확실성의 세계를 살아가고 있는 인간에게 있어 가장 확실한 사실은 한 번 태어나면 한 번은 반드시 죽는다는 것입니다.
물리학적으로는 무질서를 향해서 가는 열역학 제2법칙에 의해 인간은 누구나 죽는다고 합니다. 열역학 제2법칙은 엔트로피가 증가하면서 질서가 무질서 상태로 바뀐다는 것입니다. 즉 우리 몸의 질서를 유지하고 있었던 항상성이 무너지면서 죽음에 이르게 된다는 것입니다.
물리학에서는 모든 존재는 원자에서 왔고 또 결국에 모든 존재는 원자로 돌아간다고 설명합니다. 그렇게 자연으로 우주로 돌아간 원자는 또다시 무엇인가가 되기 위해 재배치 된다는 것인데요. 그럼 이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들은 적어도 원자 측면에서 보면 어느 정도 연관성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인드라망처럼 서로 엮어있다는 뜻이겠지요.
이러한 물리학적인 사유와 철학적인 사유에서 생명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그리고 또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것인가에 대한 나름의 생각을 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제 주변에서 먼저 돌아가신 가족들부터 시골에서 농한기에 함부로 잡아먹은 날짐승에 이르기까지 뭐 하나 소중하지 않은 생명은 없다는 사유를 녹여내고 싶었습니다.
3. 산문집 『엄마를 팝니다』에서 작가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
“죽음이란 원자의 소멸이 아니라 원자의 재배열이다. 내가 죽어도 내 몸을 이루는 원자들은 흩어져 다른 것의 일부가 된다.....”
“우주 공간을 방황하던 산소는 태양이 탄생할 때 주위를 떠돌다 지구라는 행성의 일부가 된다. 산화철에서 불로, 물에서 이산화탄소로 옮겨 다니던 산소는 공룡이라는 생물이 된다. 공륭이 죽자 땅으로 돌아간 산소는 나무가 되고 토끼가 되고 강물이 되었다가 건물이 되기도 하고, 지금의 내가 되기도 한다. 나 역시 죽으면 흙이 되고 나무가 되어 어떤 책의 일부가 될 수도 있다. 죽음 이후에도 우리는 무엇인가가 된다”
-김상욱 교수의 『하늘과 바람과 별과 인간』 중에서
현재까지 밝혀진 과학적 연구에 의하면 이 우주에서 생명이 존재하는 행성은 지구밖에 없다고 합니다. 우리 모두는 이 엄청나게 큰 우주에서 지구라는 별에 사람으로 태어난 것만으로도 엄청난 기적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지구상에서 인간으로 살아가고 있는 우리는 우주 대 기적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엄청난 행운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겠지요. 그렇기 때문에 개개인은 모두가 너무 소중한 존재입니다.
내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가를 알게 되면 삶을 대하는 방식도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주적 차원에서 보면 인간의 한 생애는 찰라도 안 될 만큼 아주 짧은 순간입니다.
우리는 그 짧은 순간이 영원할 것처럼 생각하면서 온갖 욕망에 사로잡혀 우리에게 주어진 이 지구에서의 귀중한 시간을 낭비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니체는 영원회귀 사상을 통해 우리에게 이렇게 질문합니다.
“지금 현재의 삶을 영원히 반복한다고 해도 괜찮겠냐”?
지금 현재의 삶이 우주 공간에서 영원히 반복된다고 생각하면,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답을 스스로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만약 지금 현재 내 삶의 가치가 나를 행복하게 하지 못한다면 나만의 가치를 찾아서 내 삶을 수정할 필요가 있겠지요. 그것은 니체는 ‘힘의 의지’라고 표현했는데요. ‘힘의 의지’는 스스로의 삶을 돌아보고 더 낳은 삶의 가치를 추구하기 위해 노력해야된다는 의미라고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