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은 원래 티 없는 하늘처럼 순수하고 투명했다. 그런 자연을 인간은 그대로 두지 못하고 설명을 한답시고 거미가 거미줄을 뽑듯 이성의 눈으로 갖가지 규정을 뽑아내어 이리저리 묶어왔다.
자연은 신이든 뭐든 그것을 강제할 귄위를 따로 주지 않으며, 모든 것이 회귀하게 되어 있으니 목표 또한 있을 수 없다. 거기다 자연은 도덕 이전의 것으로서 선과 악, 죄과 따위의 규정을 받지 않는다. 자연은 밝아오는 아침 하늘처럼 순진무구하며 티 없이 깨끗하다.
모든 것은 그 존재를 설명해줄 필연적인 이유를 따로 갖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우연이다. 어떤 목적이나 신적 섭리로도 설명되지 않는 것이 이 세계다. 모든 것은 그것을 의미 있는 것으로 받아들여 설명하려는 인간의 의도와 달리 그렇게 있을 뿐이라는 의미에서 ‘뜻밖’이기도 하다. 니체에게 우연은 우주와 세계 이해의 핵심 개념이다.
이 세계에 대해 우리가 말할 수 있는 것은 그것이 그렇게 존재한다는 사실 하나다. 우리는 그것이 왜 존재하는지를 모른다.
인간적 규정의 바탕에는 세계를 합리적으로 설명하려는 이성적 요구가 있다. 그 요구는 세계를 합리적으로 받아들이려는 의지의 표현이다. 그래서 이성이니 합리성이니 해가며 세계를 이리저리 파헤쳐 보지만, 그런 것들로는 포착되지 않는 것이 이 역동적 세계다. 세계는 합리성이나 인간 이성으로는 닿을 수 없는 깊이를 갖는다.
이제 세상을 줄로 이리저리 묶고 있는 저 무기력한 이성의 거미줄을 자르고 그와 함게 세상을 덮고 있는 음습한 기운과 구름을 모두 날려 보내야 한다. 그리되면 하늘은 파란 종처럼 청명하게 그 모습을 드러내고 만물은 그동안의 강제와 목적에서 풀려나 우연을 발 삼아 춤을 출 것이다. 그와 함게 하늘은 신성한 우연을 위한 무도장이 되며, 신성한 주사위 놀이를 즐기는 자들은 위한 신의 탁자가 될 것이다. 물론 이때의 신은 춤을 출 줄 아는 디오니소스를 가리킨다.
생명에는 의식의 눈길이 닿지 않을 정도의 깊이, 이성의 눈으로 헤아릴 수 없는 깊이가 있다는 이야기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해설서, ‘해돋이에 앞서’ 편중에서
우리가 어디에서 왔는가를 묻는 존재 물음 자체가 이성 즉 인식의 산물이지만 대답을 한다면 우리는 자연에서 온 것이 맞습니다. 본래의 자연은 우리의 인식 이전의 자연이겠지요. 그래서 자연은 어떤 목적이나 합리적인 이유 없이 그냥 존재하는 자연인데, 인식의 창으로 자연을 내다본 인간들이 구름도 만들고 거미줄도 만들어서 자연을 지들 맘대로 재단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인간적 규정의 바탕에는 세계를 합리적으로 설명하려는 이성적 요구가 있다”
하지만 아무리 인간이 “이성이니 합리성이니 해가며 세계를 이리저리 파헤쳐 보지만, 그런 것들로는 포착되지 않는 것이 이 역동적 세계”라는 뜻입니다.
니체, 정말 대단한 사람입니다. 제 방식으로 설명해보면 합리성을 요구하던 아인슈타인으로 대변되는 고전역학의 시대에는 논리적으로 설명 가능한 부분만을 인정했다면, 닐스 보어를 중심으로 형성된 코펜하겐학파의 양자역학 시대에는 세계를 불확정성의 세계로 설명했는데요.
세계는 우리의 인식이 닿지 않는 부분이 더 크게 작용하기 때문에 우리가 알 수 없는 역동성인 세계이면서 불확정성의 세계, 즉 우연으로 밖에 설명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는 것인데요. 바로 니체는 이런 불확정성의 세계에 대한 이해가 정확했다는 사실입니다.
“모든 것은 그것을 의미 있는 것으로 받아들여 설명하려는 인간의 의도와 달리 그렇게 있을 뿐이라는 의미에서 ‘뜻밖’이기도 하다. 니체에게 우연은 우주와 세계 이해의 핵심 개념이다.”
그러니까 이미 19세기에 양자역학을 너무도 정확하게 이해하면서 세계를 이해했다는 것이지요. 니체를 읽다 보면 정신분석학이 어떻게 나왔고 무의식이 어디서 출발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즉 이 우주는 인식 세계인 이성이 지배하는 세계와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는 무의식의 세계가 합쳐진 세계인데요. 이처럼 이 세계도 우리가 인식으로 재단한 이성적 세계와 우리가 전혀 알지 못하는 깊은 심연 속에 가라앉아 있는 무의식의 세계가 존재한다는 뜻이지요.
즉 우리가 알지 못하는 부분이 훨씬 많기 때문에 이 세계는 인과 법칙에서 벗어난 우연의 법칙으로 움직인다는 것이지요. 니체는 이것을 ‘춤’이라는 매우 적절한 비유로서 설명하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