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굉장한 편견 쟁이에, 유명한 작감보다도 배우의 연기가 기대되지 않으면 아예 시작조차 하지 않는 내가 오로지 소재에 이끌려서 보게 되었다. 실제로 과장되고 오버스러운 면이 있지만 각 화에 스타트업의 요소를 잘 풀어내었고, 적절히 드라마적 요소로 활용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뿐. 드라마는 로맨스 위주로 흘러가면서 기획의도에도 반하게 되었고, 인물의 캐릭터가 제대로 된 서사를 부여받지 못하면서 그저 불편한 인물로만 남게 되었다.
특히 개인적으로는 달미 캐릭터에 불만이 많은데, 어째서 사업을 하겠다는 인물이 등장인물의 도움 없이는 하나도 해내지 못하는 캐릭터가 되었는가. 그저 예쁘고 착하기만 하면 주변 사람들이 알아서 좋아해 주고 도와주는 그런 요즘 제일 욕먹는 캐릭터가 주인공이 되었는가이다. 드라마가 지속되는 내내 중심인물인 도산, 지평, 인재 모두 자신의 능력을 증명하고, 성공을 위한 요소를 직간접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달미는 누구의 도움 없이는 그걸 해내지 못하고, 그 도움조차도 사랑이나, 연민, 인맥에서 기인된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에겐 아주 절망적인 형태의 성공만 보여준다. 사실 솔직히 얘기해서 AI스타트업 CEO를 하기 위해 달미가 가진 능력은 무엇일까. 스피치? 설득능력? 아이디어? 그 무엇도 뛰어나지 않은 상태에서 처음엔 도산의 도움으로 CEO가 되더니, 3년 뒤에는 언니의 인맥으로 CEO가 되었다. 무시하고 싶지는 않지만, 솔직히 주변에서 보는 직원들은 얼마나 가족, 연인끼리 다해먹는 아주 가족 같은 회사가 되는 과정을 실시간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수동적인 주인공 캐릭터 때문에 계속 스토리는 발암 상태이고, 이에 더불어 도산이 캐릭터마저 성장하지 못한 어린아이에 머무른 감성을 계속 보여주는 바람에 두 주인공 모두 주변의 도움 없이는 뭘 제대로 해 낼 수 없는 민폐 캐릭터만 되었다.
그리고 지평이 캐릭터는 왜 그렇게 꼼꼼히 서사를 만들어 놨는지. 단순한 삼각관계가 아니라 과거에 얽힌 것들이 현재에 좀 더 감정적으로 촘촘히 엮였으면 좋았을 텐데 그저 두 주인공을 연결해주고 마친 느낌이라, 앞서 본 10회까지의 과정이 무의미해졌다. 이럴 거면 편지에 집착하지 말지, 서사에 비해 그저 두 주인공의 서로에 대한 감정이 얼마나 깊은지 비교하는 척도로만 이용된 것 같아, 소재도 아깝고 앞서 풀어낸 스토리도 아까웠다. 억지 삼각관계에 집착하느라, 한지평이라는 캐릭터와 서사도 모두 소모되어 설정이 아깝게만 느껴졌다.
결국 발단-전개-위기 -절정에서 위기와 절정을 삼산텍의 공중분해와 랜섬웨어 감염으로 애매하게 풀었는데, 이도 저도 아닌 해소로 스타트업이라는 소재 조차 유명무실하게 만들었다. 차라리 삼산텍의 공중분해 위기를 위기답게, 좀 더 잘 풀어냈다면, 그 소재의 신선함이라도 잘 이끌어나갈 수 있었을 텐데, 주인공이 결국 먼치킨이 되어 돌아오면서 모든 문제와 위기가 해결되는 방식은 스토리 전개를 감당하지 못해 결국 그냥 놓아버린 건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여러모로 아쉽다. 배우들의 연기와 연출은 내가 그동안 갖고 있던 두 주연배우들의 편견을 해소할 만큼 괜찮았고, 강한나와 김선호라는 새로운 배우를 발견할 수 있었다, 올해 마지막이자 가장 좋았던 청춘 드라마가 될 수 있었을 텐데... 결국은 어쩔 수 없이 두 회가 남은 시점에서 끝까지 능력을 입증하지 못하는 달미에 안타까워하고, 먼치킨이 되어 온 도산 덕분에 모든 게 그냥 풀려버리는 전개에 실망하게 되는 아쉬운 드라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