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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망고치킨 Jun 17. 2018

한 사람을 이해한다는 것

영화: 러빙빈센트 리뷰

한 사람의 인생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영화에서 관객은 죽은 고흐의 편지를 전하기 위해 그의 발자취를 따라 떠난 아르망의 시선으로 우린 고흐의 삶을 듣게 된다. 전혀 이해할 수 없는 괴기스러운 행동을 하는 한 화가의 인생을 사람들은 무시했고 경멸했으며 이해할 수 없는 사람으로 생각했다. 아르망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의 발자취를 따라 가면서 괴짜였던 그의 행동만큼이나 그의 죽음에는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단 걸 듣게 된다. 살면서 그를 온전히 이해할 수 없었던 아르망은 그가 죽고 난 뒤에야 그의 생각. 그의 행동을 되짚게 된다. 사람들로부터 왕따가 되었고 죽을 때까지 단 한 점의 그림밖에 팔지 못했던 가난한 화가. 동생에게 보조를 받으며 오로지 하루 종일 그림밖에 그릴 줄 모르는 한심한 형. 어쩌면 자살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고흐의 모습은 그가 마지막에 머물렀던 곳에서 들은 이야기와 의심과 맞물려 우리에게 그를 죽인 원인에 대해 고민하게 만든다. 

아르망. 영화 내내 빈센트의 마지막 편지를 전달하기 위해 떠난 아르망의 시선으로 그의 마지막 순간을 쫒는다

처음엔 왜 자살했는지 그 원인을 좇던 아르망은 결국 그 죽음의 원인을 묻고 주변 사람들로부터 자살이 아닐 것이라는 정황을 듣게 된다. 그리고 그가 미치지 않았다고 받아들이는 순간 아르망과 그걸 보고있던 내 마음 속에는 자살이 아닐 수도 있다는 의심이 싹트기 시작했다. 게다가 고흐의 그림체로 이루어진 전체 묘사와 장면을 따라가다 보면 그 아름다움에 매료되어서 그의 죽음이 덩달아 안타깝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그래서인지 아르망은 죽기 직전 고흐의 주변에 있었던 이들을 한 명씩 의심하며 고흐를 온전히 받아들이기 보다는 주변 사람들이 고흐를 어떻게 받아들여 왔는지에 대해 더 집중하게 된다. 


영화의 끝에 가서야 마르그리트의 입을 빌려 영화는 우리에게 묻는다. 

그의 죽음을 궁금해 하면서 그의 삶에 대해선 얼마나 아는지. 우리가 진짜 알고 싶은 고흐는 어떤 모습인지. 단순히 고흐의 죽음에 의문점이 있어서 그 가십이 흥미롭기 때문에 궁금한 건 아닌지 질문은 정확하게 폐부를 찌른다. 고흐는 화가였고 그 길로 들어선 이후 매일 같이 그림을 그렸으며 언젠가 자신의 그림이 사람들에게 인정받을 그 날을 기다렸던 한 사람이었다. 그의 죽음의 이유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거기에 고흐 자신은 어떠한 억울함도 남기지 않았고 오로지 수많은 그림만 남겼다는 것. 그리고 그가 죽은 1년 뒤인 영화 속 세계에도 그 영화를 보고 있는 지금도 그의 그림만 남았다는 것. 어떠한 음모나 의문점을 해소하기 전에 고흐란 사람은 예술가이자 화가였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 사실 그의 죽음보다도 중요한 것은 그의 죽음을 슬퍼한 사람이 존재했고 그의 작품은 세기를 걸쳐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았다는 사실과 이 모든 게 예술로서 사람들을 위로하고 작품을 이해함으로써 자신을 이해하길 원했던 고흐가 바라던 일이었다는 사실이었다.

고흐에 대해 얼마나 아는 지 물었던 마르그리트

아르망의 여정은 그에겐 충분히 자살할 만한 이유가 있었다는 폴 가셰 박사의 설명을 들으며 끝났다. 아무에게도 전해주지 못했던 편지를 그에게 전하면서 마지막 하나의 의심도 그 자리에 남겨둔 채 그는 생전 그리고 사후에도 고흐를 그리워하는 아버지의 곁으로 돌아왔다. 

자신의 귀를 자르고 괴로워하는 고흐의 모습. 결국 그 누구도 타인을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을 것이다

결국 온전히 누군가를 이해한다는 건 불가능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저 고흐가 자살한 이유를 찾고자 한다면 그의 죽음만을 납득하기 위해서라면 아르망의 여정을 따라 들었던 모든 정황을 끼워 맞출 순 있겠지만 결국은 자의적인 해석일 뿐 그 누구도 죽음을 통해 한 화가의 삶을 온전히 받아들일 순 없을 것이다. 다만 그가 그리워 편지를 아들에게 맡겼던 우체부 조셉처럼 매일같이 고흐의 무덤에 꽃을 가져 놓는 마르그리트처럼 그리고 남편을 잃고 그 남편이 사랑했던 형의 편지를 엮어 책으로 펴낸 테오 부인처럼 각자의 방식으로 고흐를 이해하고 그리워할 순 있을 것이다. 

비록 살아생전에 괴짜 소리를 들었고 사람들로부터 멸시도 받았으며 그림 한 점 팔리지 않아 희망 없는 삶을 살았지만 그는 작품으로서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졌고 이렇게 그의 작품을 오마주한 영화가 나올 정도로 그의 삶과 죽음을 추모하고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있다. 결국 인간 고흐의 삶은 온전히 이해할 수 없지만 예술가 고흐의 삶은 현재 진행형인 것이다. 

영화 내내 함께하는 빈센트의 그림 혹은 그의 그림을 오마주한 유화 애니메이션 작품들

죽음으로 그를 이해하고자 했던 아르망의 생각과 그의 시각에서 고흐를 바라봤던 나 또한 그녀의 질문에 다시 돌아 볼 수밖에 없었다. 누군가의 죽음에 관심을 가지기 보다는 그가 무엇을 사랑했고 무엇을 희망했으며 어떤 것들을 바라 봤었는지 관심 가지는 게 타인을 이해할 수 있는 최대치가 아닐까. 영화를 통해 고흐에게 따뜻한 악수를 받으며 비극으로서의 고흐가 아닌 깊고 따뜻한 마음을 가진 화가 고흐를 바라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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