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월요일이 사라졌다 리뷰
옥자 이후로 넷플릭스 제작 영화의 가능성을 입증한 작품이 나왔다. 사실 아이러니한 구조이긴 하다. 넷플릭스에서 월 만원이면 이 영화 외에도 수많은 콘텐츠를 즐길 수 있음에도 그에 상응하는 돈을 지불하면서까지 영화관에서 이를 보러 갔다니. 영화관이란 공간에 대한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만들었다.
영화를 보는 내내 들었던 느낌은 이 영화를 마블, 디즈니, 워너 브라더스와 같은 헐리우드 제작사가 만들었으면 어땠을 까였다. 아무래도 TV혹은 모바일 기기 유저를 대상으로 만든 영화다 보니 특수효과가 많이 들어갔음에도 액션의 표현이나 스케일 면에서 좀 부족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영화관이라는 공간에서 봤기에 더 임팩트 있는 움직임을 기대했지만 약간 아쉬웠다.
식량부족, 유전자 변형 식품 그리고 부작용. 인류가 가장 두려워하는 문제를 쌍둥이로 풀어낸 스토리는 기발했고 신선했다. 미래에 대한 미지의 두려움을 자극해 몰입하게 만들고 통제하려는 정부와 자유를 원하는 개인과의 대립을 통해 극의 전체를 이끌었다. 결국은 통제는 인간은 생명의 대상으로 보지 않은 ‘악’이었고 개인의 주체성을 갖고 자유를 갈망했던 ‘선’이 이겼다. 그리고 ‘선’의 혁명에는 나머지 다섯 쌍둥이의 희생이 따랐다. 전형적인 자유를 위한 혁명과 권선징악에 대한 내용이었다. 인간을 통제하려는 정부에 대한 미지의 두려움을 자극하는 영화. 일곱 쌍둥이가 카렌 셋맨으로 생활하며 항상 들킬까 무서워하는 모습은 소설 ‘1987’을 연상시켰다. 설정이 80%를 이끈 영화였고 나머지는 과연 일곱 명 중 몇 명 만 살아남을 것인가가 끝까지 보게 만들었다.
일곱 쌍둥이를 모두 살리고자 희생시켰던 할아버지의 부정과 자신의 아기들을 살리고자 나머지 가족들을 배신했던 먼데이의 모정이 교차편집 되면서 이들을 이토록 잔인하게 만든 케이맨 그리고 정부에 대한 분노를 일으켰다. 결국은 폭로와 혁명을 통해 인간들은 출산의 자유를 갖게 되었고 쌍둥이들 또한 정체성의 자유를 얻었다. 하지만 이 영화가 궁극적으로 전하려는 바는 케이맨의 마지막 대사였다. 경고. 무차별적인 개발과 이기주의, 자원 고갈과 기아 문제를 겪고 있는 현재. 우리에게 이것보다 더 나은 미래가 있는가에 대한 경고였다.
TV 프로그램으로는 수작이었고 영화로서는 액션 스케일이 약간 아쉬운 머지않은 미래에 대한 영화였다. 10년 뒤에 충분히 있을 수 있는 미래에 대한 경고를 우린 무시해도 괜찮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