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신점 보고 온 이야기
처음으로 신점을 보고 왔다. 서른이 되니 괜시리 맘이 뒤숭숭하고 앞자리 하나 바뀌었을 뿐인데 마치 나의 이십대와 제대로 된 인사도 못한 채 강제 이별한 기분이 든다.
'나 지금 제대로 가고 있는 건가?'
'혹시 잘못된 방향으로 가는 거면 어떡하지?'
매일 밤 도돌이표 같은 고민들이 머릿 속을 둥둥 떠다니니불확실한 미래에 대해 누군가 확실한 답이라도 주면 좀 편하겠다 싶었다.
그러던 중 며칠 전 모 작가님에게 태백산 신령님을 모신다는 분을 소개 받고 주저없이 바로 예약했다. 태어나서 점이라고는 대학생 때 친구들과 재미삼아 사주 카페에 두어번 갔던 것이 전부였기에 처음에는 좀 낯설게 느껴졌다.
TV에서나 보던 곳에 내가 와있다니. 상상했던 이미지를 떠올리며 무섭게만 생각했는데 대화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조금씩 긴장이 풀리기 시작했다. (신당을 모신 곳은 평범한 가정집이었고 상상했던 기 쎈 이미지가 아닌 인자한 인상을 가진 중년의 여자 분이셨다.)
나를 쭉 보시더니 평소 생각이 너무 많다며 속으로 혼자 끙끙 앓지 말고 힘든 건 티를 내도 된다고 하셨다. 그 얘기를 들으니 갑자기 눈물이 찍 삐져나올 것 같아 애써 참았다. 최근 연애 고민까지 딱딱 맞추시는데 완전 소오오름. 여러 말씀을 해주셨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건 건강 관리를 잘하라는 말이다.
"뭐든 시작하면 일단 잘 해내야 한다는 강박이 있어. 원하는 성과를 내지 못하면 속으로 혼자 스트레스 받을 거야. 근데 또 겉으로 내색하지 않아 건강을 해치게 되니 조심해야 해."
서른이 되기 전, 언니들이 앞자리가 '3'이 되면 체력이 달라진다는 말을 할 때마다 그냥 흘려들었다. '나는 그러지 않을 거야' 라는 말이 가장 오만한 말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밖에 한 번 나갔다 오면 반나절의 충전 시간이 꼭 필요하고 소화도 잘 안 되고 전과 똑같이 먹어도 살이 더 붙는 느낌이다.
(만약 이 글을 읽고 나는 안 그럴 거라 생각한다면 곧 느끼게 될 거다. 이십 대가 지나면 삼십 대는 누구에게나 올테니. 그때 가서 후회하지 않으려면 매일 조금씩 스트레칭이라도 해두길 바란다.)
계속 공부를 해야 하는 사주라 직장에 들어가 안정적으로 있었으면 더 성공했을 거라는데 그건 이미 글렀고. 결국 하고 싶은 대로 하며 살겠지만, 지금부터라도 내 건강만은 잘 챙겨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과일과 샐러드 채소, 종합 영양제를 샀다. 운동이라면 숨쉬기와 걷기 뿐이었는데 그 날 이후 플랭크와 스쿼트를 시작했다. 몸을 먼저 챙기기 시작하니 무기력했던 멘탈도 서서히 제자리로 돌아온다. 마음에 여유가 생기자 배우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을 하나씩 실천해 볼 용기가 생긴다.
"네가 이루고 싶은 일이 있거든 체력을 먼저 길러라.
체력이 약하면 빨리 편안함을 찾게 마련이고, 그러다 보면 인내심이 떨어지고 그 피로감을 견디지 못하게 되면 승부 따윈 상관없는 지경에 이르지.
이기고 싶다면 충분한 고민을 버텨 줄 몸을 먼저 만들어. 정신력은 체력이란 외피의 보호 없이는 구호밖에 안 돼."
윤태호 작가의 웹툰 <미생>에 나오는 말이다.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도 "체력이 떨어지기 시작하면 그에 따라 사고 능력도 떨어지고 미묘하게 쇠퇴하기 시작한다"라고 말했다.
이십 대는 취미로 삼십 대부터는 살기 위해 운동을 한다는데 그건 왠지 좀 우울한 얘기인 것 같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서라도 체력을 더 길러야겠다. 몸과 마음은 하나의 끈으로 연결되어 있어 한 쪽이 지치면 다른 쪽도 금방 지치게 된다. 마음이 불안하거나 내가 가는 길이 맞는지 헷갈리는 순간이 온다면 일단 내 건강부터 챙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