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나 처음은 있다.
올 여름 나의 첫 파스타는 선드라이 토마토 파스타이다.
파스타 안에 들어가는 선드라이 토마토도 직접 만들었다. 요즘 같은 날씨면 햇빛에 말려도 좋지만 미세 먼지가 걱정되어 건조기로 70도에서 10시간 정도 말렸다. 방울토마토를 세로로 반 잘라야 하는데 가로로 자르는 바람에 시간이 좀 더 걸리긴 했지만. 잘 말린 토마토를 소독한 유리병에 담고 마늘, 후추, 로즈마리와 함께 넣은 후 올리브유로 채워주면 완성. 간단하지만 의외로 시간이 오래 걸리는 음식이다. 만들 때는 조금 손이 가지만 직접 만드니 더 뿌듯함이 든다.
이틀 정도 저장했다가 파스타를 만들기 위해 첫 개봉을 했다. 뚜껑을 여니 허브향이 기분 좋게 어우러지며 진한 토마토 향이 올라온다. 어릴 땐 토마토를 싫어했는데 요즘은 일부러 더 찾아 먹는다. 특히 여름엔 토마토가 빠지면 서운하지.
파스타는 만들어 본 적이 거의 없어서 초록창의 도움을 받았다. 면 삶기부터 난관에 부딪혔다. 소면 삶는 것처럼 하면 되는 건가? 물에 소금을 넣고 끓기 시작하면 면을 넣는다. 면을 삶을 동안, 올리브유를 두른 팬에 편으로 썬 마늘을 넣고 볶다가 선드라이 토마토를 넣고 볶아준다.
여기서부터 뭔가 잘못되기 시작했다. 불을 너무 세게 놔서 토마토와 마늘이 탔다. 허겁지겁 면을 넣고 볶아주다가 루꼴라를 넣었다. 하지만 이미 토마토는 반이 까맣게 타버린 후였다. 간단한데 처음 해보는 거라 시간도 오래 걸리고 주변이 지저분해졌다. 먹을 때 보니 면도 덜 익어 뻣뻣했다.
이대로는 뭔가 아쉬워서 저녁에 한 번 더 만들었다. 두 번째라 그런지 좀 더 수월했다. 우선 면을 삶기 전 재료를 미리 손질하고 마늘이 타지 않게 좀 더 두껍게 썰었다. 불을 세지 않게 두고 마늘이 살짝 익을 때쯤 선드라이 토마토와 면을 넣고 볶다가 루꼴라를 넣었다. 100점이라고 하기엔 뭔가 부족하지만 그래도 처음보다는 꽤 그럴듯한 파스타가 완성되었다.
내게는 뭐든 처음부터 잘해야 한다는 강박감이 있다. 세남매 중 맏이로 태어나 어려서부터 주변의 기대감에 부응해야 한다는 부담감을 안고 자랐다. 처음부터 목표를 크게 잡고 기대치만큼의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스스로 스트레스를 주었다. '나는 왜 이것밖에 못하나.' '역시 나는 잘 못 하나 봐.' 더 쉽게 포기하게 되고 시작을 하기 전에 걱정이 먼저 들었다. 사실은 끝까지 가 본 적도 없으면서.
요즘은 글쓰기 수업을 다니고 있는데 매주 각자 한 편씩 글을 써오면 서로 합평하는 시간을 갖는다. 다른 사람의 앞에서 내 글을 소리 내 읽는 건 언제나 부끄러운 일이다. 보이고 싶지 않은 모습을 들킨 기분이랄까. 마지막 시간 가장 끝 순서였던 나는 차례가 다가올수록 심장이 점점 쪼그라들기 시작했다. 읽으면서도 스스로 목소리가 떨리고 있는 게 느껴졌다.
"글에서 설희님이 어떤 분일지가 느껴져서 좋아요."
첫 글쓰기 모임에서는 글에서 내가 드러나지 않는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그 때는 글이 솔직하지 않았다. 쓰고 싶어서 쓴 게 아니라 그냥 제출을 위해 쫓기듯 쓴 글이었다. 어떤 칭찬보다도 기분이 좋았다. 칭찬을 먹으니 글을 더 잘 쓰고 싶은 욕심이 생긴다.
처음부터 잘하지 못하는 게 당연하다. 그걸 인정하는 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잘해야 한다는 부담감을 내려놓자 나는 더 자유로워졌다. 처음보다 마지막 수업의 글이 달라졌듯이. 일단 시작점을 뗀 순간부터 나는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그리고 세 번째 파스타는 분명 더 맛있을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