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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롯희 Oct 20. 2023

오늘을 기억할게

좋아하는 거 하면서 살 수 있을까

2016.03.06 통영


다음날은 사장님이 강력 추천하신 '거제 한 바퀴' 투어에 참여했다. 통영과 거제는 다리로 이어져 있지만 버스 배차 간격이 매우 길고 여러 번 갈아타야 해서 차가 없으면 이동이 어렵다. 그런데 편하게 거제 여행까지 같이 할 수 있다니, 이건 안 할 이유가 없잖아?


투어를 진행하는 대장은 우연히 통영에 내려왔다가 거제를 보고 한눈에 반해서 여행 프로그램을 시작하게 되었다고 한다. 망할 완벽주의 때문에 항상 시작하기를 주저하는 나는 행동으로 이어진 그의 용기가 부러웠다.


오늘의 멤버는 대장을 제외하고 우리까지 총 9명. 다들 처음 보는 사이였지만 여행지라 그런지, 친구들과 함께여서 마음이 편했는지, 평소 낯을 가리는 가리는 나도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누었다.


처음 도착한 곳은 '학동 몽돌 해수욕장*'. 모래가 아닌 몽돌이 깔려있어서 파도 소리가 자글자글- 하며 들리는 게 신기하. 이곳에서 팀을 나눠 돌탑 쌓기 게임을 했는데 납작한 돌을 고르기 위해 허리를 숙이고 열심히 줍는 모습이 꼭 '이삭 줍는 사람들' 같았다. (게임은 우리 팀이 져서 다음 코스에서 핫도그를 쏘기로 했다.) 다음으로 간 곳은 '바람의 언덕'이다. 이름만큼 바람이 정말 장난 아니었다. 눈썹 위까지 꾹 눌러쓴 K의 모자가 바람에 날아갈 뻔 하기도.


마지막으로 간 곳은 '명사 해변**'. 다리 중간 중간 유리로 된 바닥 아래로 푸른 거제 바다를 볼 수 있다는데, 뿌연 황사 안개 때문이 그 어떤 것도 보이지 않았다. 도대체가 어디가 바다라는 거지? 보이는 것은 갈매기들 뿐. 뭐, 아무렴 어때! 그저 셋이서 지금 이 순간을 함께 한다는 게 즐거운 걸.


투어를 마치고 목구멍까지 시원해지는 맥주를 벌컥이며 우리는 일상의 소중함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뭔가 열심히 한 것 같은데 막상 그때 내가 뭘 했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을 때가 있다. ‘나 일 년 전에 뭐 했지?’ 한 건 별로 없는데 시간만 누가 몰래 빨리 감기를 눌러 놓은 듯한 기분이다. (심지어 일주일 전에 한 일도 기억이 날듯 말듯 할 때도 있다.) 살면서 하루도 아무것도 아닌 순간은 없는데.


지금의 나를, 우리가 함께 한 이 순간을 잊지 않도록 오늘은 꼭 남겨야지. 언젠가 지금을 다시 꺼내보며 한 발짝 나아갈 힘을 얻는 순간이 올 테니까.


*실제로 파도소리가 아름답다 하여 우리나라 자연의 소리 100선에 선정되었다고 한다.

**바닷물이 맑아 ‘명사’라는 이름이 붙었다는데 당시엔 다리 아래로 바다가 전혀 보이지 않아 그 말을 믿을 수 없었다. 그 후 다시 '거제 한 바퀴' 투어를 하고 나서야 진실임을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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