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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살의 포켓몬 카드, 못하게 할까 같이할까

드. 디. 어. 우려하던 일이 벌어졌다.

학교에서 친구들에게 어몽어스카드, 브롤스타즈 카드를 받아도 무관심하던 아들이 친구에게 포켓몬 카드를 받아왔다. 온갖 캐릭터의 수치를 외우고, 기술을 사용하더니 다음날 몇 장을 더 받아왔다. 좋은 카드가 생겼다며 퇴근한 아빠에게 자랑을 한다. 어떻게 생긴 건지 물어보았더니, 갖고 있던 카드 몇 장과 바꿨다는 이야기를 한다. '좋은 카드를 받기 위해 좋지 않은 카드 여러 장과 거래했다'는 소리에 '경제'와 '거래' 개념을 배울 수 있어 좋은가 살짝 생각들 기도 하여 일단 지켜보기로 했다.


그렇게 카드 몇 장으로 즐겁게 놀던 아들은 어느 날 흥분해서 집으로 오자마자 회사에 있는 내게 전화를 걸어 자랑을 했다.V카드가 생겼다고... (V카드는 특수 스킬과 높은 HP를 가진 상위의 카드이다.) 거래를 통해서 친구가 주었다고 했다. 자식 기분이 좋다는데 마다할 부모가 어딨겠는가. 그날 밤 아들은 V카드를 머리맡에 넣고 잠이 들었다.


그렇게 V카드가 생긴지 얼마 지나지 않은 일과 중, 아내에게 전화가 왔다. 아들이 학원에 올라가지 않고 차에서 울고 있어서 달래는 중이라고 했다. 이유를 들어보니, 방과 후 수업을 하는 친구가 아들의 카드를 보고 마음에 들었는지, ‘지금은 카드가 없지만 다음 수업에 가져올 테니 지금 그 카드를 거래하자’고 했다는 것이다. 만약 자신이 카드를 잃어버리거나 하면 뺨을 때리라고 했다는 말을 덧붙였다고 한다. 아들은 당연히 그 말을 믿고 카드를 주었다. 결국 아들은 카드를 돌려받지도 거래하기로 한 카드도 받지 못했다.


수일에 걸쳐 카드를 모으고 모은 카드에 정성을 쏟았던 아들의 애정은 한순간에 물거품이 됐다. 동시에 같은 수업을 듣는 친구에 대한 무조건적 신뢰도 싸그리 무시 당했다. 가진 것을 권력화 무기화하지 않고 선한 거래 생태계를 만들고자 한 아들의 순수한 마음은 커다란 상처를 입었다


약지 못한 아들의 마음이 어린아이다워 귀엽다가도, 친구들에게  어수룩해 보이는  아닌가 싶어 어떤 위로와 교육해야 할까 퇴근길 내내 고민하다 문득 나의 어릴 때 생각이 났다.



내가 초등학교 때에는 '수리수리 풍선껌'이라는 것이 있었다. 맛은 전혀 생각나지 않지만, 그 껌 이름이 생각나는 이유는 단 하나, 스티커가 들어있었기 때문이다.


.왜색 짙은 일본 캐릭터들  : 일본이 이런걸 참 잘한다.



누가 봐도 일본에서 만든 스티커를 번안한 이 스티커는 일본문화와 일본이 해석한 세계 문화 아이콘들이 다양하게 섞인 스티커였다. 힘이 센 영웅 캐릭터는 '은박/홀로그램 스티커'로 표시되었고, 조력자 캐릭터는 '셀로판지 판박이'로 되어있었다. 선(善) 캐릭터들이 퇴치할 수 있는 악당 캐릭터는 코팅된 일반 스티커였다. 껌을 사면 이 세 개 중 하나가 들어있었고, 당연히 히어로 캐릭터를 모으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 껌을 많이 살 수록 좋은 스티커를 갖게 될 확률이 늘어나는 건 당연했고, 아이들은 우표수집책에 스티커를 모아 컬렉션을 자랑하고는 했다.


누구나 그 스티커를 가질 수 있었지만, 대부분의 스티커를 다 모았거나 레어 스티커를 가진 친구는 권력을 갖게 되었다.

다 모아진 컬렉션북은 절친들에게만 보여주는 유니크한 전리품이었다. 레어 한 스티커가 나오면 우르르 몰려가 한 번이라도 실물을 보고 싶어 했다. 어떤 아이들은 컬렉션북과 좋은 스티커를 만져보는 대가로 돈이나 내가 갖고 있는 얼마 있지도 않은 좋은 카드를 요구하곤 했다. 아이들 세계의 권력은 통제가 없어 절대적이고  틀에 갇히면 옴짝달싹   없게 된다. 고작 스티커가 선사한 권력은 사실 돈의 힘과 차별의 맛이었다.


껌을 사서 열었는데 자신이 갖고 있는 스티커가 나오기 십상인 애들은 그 스티커를 그냥 버리거나 줄 수도 있지만 꼭 갖고 싶은 사람 있는지를 확인한다. 그러고는 갖고 싶으면 자기 부하를 해야 한다고 꼬신다. 아이들은 그 스티커에 목을 매고 있었기 때문에 부하를 하겠다는 애들은 꽤 길게 줄을 섰다.

계급이 만들어진다. 그 계급은 사회보다 더 노골적이고 강압적이다. 나는 자존심이 상해 부하를 하지는 않았지만, 굴욕을 감수하고 싶을 만큼 스티커에 대한 욕망은 컸다. 결국 용돈이 부족한 나는 등하교버스비 70원을 아껴 걸어서 하교하며 돈을 모았다. 모은 돈으로 당연히 수리수리 껌을 샀다. 초레어카드로 한 방에 권력구도를 역전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렇게 산 껌에서 꽝인 스티커가 나올 때는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초레어카드가 나오는 인생 역전의 꿈은 나의 국민학생 때도 일어나지 않았다.


스티커로 할 수 있는 놀이는 노력만 한다면 무한히 만들 수 있었다. 하지만 결국 레어카드 컬렉션이 스티커 놀이의 주류일 수밖에 없었다. 결국 남자아이들은 위계가 중요해쿄다. 힘은 더욱 달콤했다. 내가 흔한 마이너 스티커 갖고 아무리 재밌는 스토리를 만들어도 내 얘기에 관심 갖는 친구는 없었다. 놀이에 돈이 필요하단 사실에 꽤 오랫동안 괴로웠다.  



친구에게 카드거래를 실패한 날, 퇴근한 나는 아들을 꼭 안아주었다.

속상한 아들의 마음을 헤아리다 보니 다시 화가 치밀었지만 거래는 실물을 보고 바로 그 자리에서 해야 한다고 일러줬다.(모바일 커머스 회사 다니는 아빠가 할 말인가 )


레어 한 포켓몬을 뽑기 위해 수 십만 원을 쓰게 될 것 같아 포켓몬 카드는 하지 말자고 얘기하고 싶었지만, 나는 당근마켓을 뒤져 V카드와 VmaX 카드를 구하는 길을 선택했다. 아들이 관심 가진 흥미가 '사행심'으로 번지기보다는 게임을 주도하는 새로운 재미로 치환되길 바랐다.


매일마다 미션을 통해 V와 Vmax를 얻을 수 있는 작은 미션을 주고  다양한 방법으로 아들과 포켓몬 카드놀이 하기 시작했다. 아들은 새로운 아이디어를 쏟아냈다.

새로운 포켓몬 만들기 , 포켓몬 카드 속성 별로 모아 팀전 하기, 포켓몬 카드 세워놓고 구슬 굴리기.

HP와 강한 공격력 레어함을 완벽하게 무시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그것만이 게임의 전부가 아니란 것을 얘기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 다행스럽다.


 

놀이는 놀이다워야 한다. 권력화를 막을 수 없다면 적어도 돈과 권력에 굴종하는 비굴함을 경험하게 하고 싶진 않다.

언제가 경험할 권력의 힘이라면 놀이라는 유희의 영역에서는 최대한 유예시켜야 한다.

오롯한 자존감으로 아들이 스스로 힘의 논리에서 다른 선택하게 될 때까지 합리적 수준의 카드 지원을 하게 될 것만 같다.

그과정도 나와 아들의 즐거운 놀이가 될테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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