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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화수 Nov 01. 2018

척 테일러여 영원하라

여전히 놀고 싶은 불혹커_1

엄마와 운동화를 사러 갔다.   

아마 그전까지는 엄마가 시장 어느 귀퉁이에 있는 어느 신발가게에서 그저 편하고 튼튼하고 깨끗해 보이는 것으로 사다준 운동화를 별생각 없이 신었던 것 같다.


이제 엄마가 사다 주는 신발은
안 신을 거야!


나에게는 나름 저항이자 자유를 향한 선포와 같은 거였다.

그런 내 모습이 우스꽝스러웠는지 엄마는 혼을 내기보다는 한번 해 볼 테면 해 보라는 식으로 나를 따라나섰다.

어디에서 어떤 신발을 사야 하는지도 몰랐지만 어쨌든 나는 엄마를 이끌고 신발가게를 갔다.



여기저기를 한참 헤매었던 것 같다.

그러다가 눈에 확 들어오는 운동화가 있었으니...

바로 이 녀석... 컨버스 척 테일러 올스타...

다른 운동화에 비해 뭔가 빠져 있는 것처럼 허전하고, 끈도 길고 많아서 신고 벗을 때마다 묶고 풀어줘야 하고, 때도 잘 탈 것 같고, 별 모양은 왜 바깥쪽이 아니라 안쪽에 붙어 있는지 모르겠고, 착용감도 그다지 좋은 편도 아니고, 하여튼 뭔가 다른 운동화들하고는 달랐지만, 왠지 모르게 이 녀석이 마음에 들었다.


어쩌면 다른 운동화들과 '다르다'는 그 자체가
가장 끌렸던 점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이 녀석은 내가 처음 고른 운동화가 되었다.


 

이후로도 내 운동화는 항상 척 테일러였다. 위에 있는 저 녀석들이다.  

이 녀석을 신고 친구들과 몰려다녔고, 교복도 입었고, 첫 데이트도 했다.  

발가락 접히는 부분이 벌어지고, 뒷굽이 달아서 없어져도 그것 자체로 편하고 멋스러웠다.

더 이상 신기 어려워서 이번엔 다른 신발을 신어볼까라고 생각하고 여기저기 둘러봐도 결국 내 손엔 이 녀석이 들려있었다.  


그리고 바로 이 사람,

그룹 '너바나'의 '커트코베인'


 





기타 좀 튕겨보고 노래도 좀 했던 사람 중에 그를 좋아하지 않았던 사람은 없었겠지만 여하튼 내가 가장 좋아한 록밴드 너바나의 리드보컬이자 기타리스트 커트코베인이 늘 신었던 신발이 컨버스 척 테일러였다.   

전 세계를 열광시킨 이 멋진 로커가 척 테일러를 신고 기타를 연주하며 'smells like teen spirit'을 부를 때,


나는 척 테일러로부터 벗어날 수 없음을
직감했다.

 





애정 했던 이 신발이 실로 어마어마한 녀석이었다는 것을 안 건 이 신발을 신고도 한참 지난 후였다.


한 세기에 가까운 시간 동안 생산되면서 전 세계에서 6억 켤레가 팔렸으며, 음악, 스포츠, 문화에서 세계의 대표 아이콘들이 3세대에 걸쳐 신어온 브랜드라는 사실.


특히 기성세대의 질서를 거부하고, 주류에 편승하지 않으며, 스스로의 세계를 구축하여 그 속에서 열정적으로 빛났던 전 세계의 아이콘들의 상징이었다는 것. 하얀 티셔츠와 청바지와 가죽재킷,  


그리고 척 테일러는 젊음의 상징이 아닌
젊음 그 자체였다.





그 때로부터 어느덧 20여 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그 시간만큼 세상도 변했고 나도 늙었다.

이제 더 이상 엄마를 조르는 어린이도, 반항기 어린 청소년도, 혈기왕성한 청년도 아닌 말 그대로 기성세대가 되었다.


누군가는 여전히 척 테일러를 고집하는 내가 나이 값을 못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나이가 들어도 무게가 없다고, 철 좀 들라고 지적할지도 모르겠다.  그럴 때가 아니라고 어른답게 행동하라고 충고를 하고 싶을 수도 있겠다. 혹은 한 살이라도 젊어 보이려고 참 애쓴다고, 짠하다고 핀잔을 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난 여전히 척 테일러를 신는다. 척 테일러가 좋다. 척 테일러가 인생 신발이다. 그냥 그렇다.

어쩌면 나이 40이나 됐으면 나이 값 좀 하라고, 철 좀 들라고, 어른스러워지라고 말하는 그 시선과 지적과 충고와 핀잔 때문에 더 좋아지는지 모르겠다.


난 여전히 놀고싶은 '불혹'ker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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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말에 나이 40이면 '불혹(不惑)'이라고 했다고 합니다. '세상일에 정신을 빼앗겨 갈팡질팡하거나 판단을 흐리는 일이 없게 되었음을 뜻한다'라고 합니다.  막상 40이 되어보니, 이 말의 뜻을 다시 해석하게 되었습니다. 오히려 정신을 빼앗길 세상일 투성이고, 판단을 흐리게 할 일은 켜켜이 쌓여만 갑니다. 그래서 공자 선생께서 40을 불혹이라고 지칭했나 봅니다. "40이 되면 미혹이 많을 테니 정신을 바짝 차리게..." 그런 뜻으로...

브런치 매거진 '여전히 놀고 싶은 불혹커'는 불혹의 나이에 접어든 저의 단상입니다. 미혹되지 않는 나이 40이 아닌 여전히 놀고 싶은 나이 40의 일상을 기록하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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