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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슨한 빌리지 Jul 31. 2019

젊은 독자가 인정하는 '진짜 젊은' 작가

58-2. 박상영 <대도시의 사랑법>을 읽고 난 뒤 나눈 대화

* 한 달에 한 주제를 정해서 책 2권과 영화 2편을 봅니다.

* 이 녹취는 여행 키워드의 두 번째 텍스트인 책 <대도시의 사랑법>에 대해 나눈 이야기를 기록한 글입니다.

* 이번 모임엔 박루저, 다희, 이주, 일벌레가 참여했습니다.


* 본 녹취록은 '사랑하고 살아가고 나아가고’를 읽으면 더 재미있게 즐길 수 있습니다.

https://brunch.co.kr/@neuvilbooks/338




# 책을 고른 배경과, 소설에 대한 각자의 첫인상



이주 : 여행이라는 주제로 소설을 고르는 게 쉽지 않더라구요. 그래서 그냥 읽고 싶었던 책 중에 여행과 연결할만한 책이 있을까 하다가 고르게 되었어요. 다행히 여행 얘기가 있기는 했는데... 실제 리뷰는 여행과 그렇게 연관성 있게 쓰지는 못했던 거 같네요 (웃음). 다들 어떻게 읽었을지 궁금해요.  

    

다희 : 저는 읽기 시작했을 때랑 다 읽고 덮었을 때랑 느낌이 조금 달랐어요. 첫 챕터 <재희> 읽을 때는 지나치게 가볍다는 느낌도 조금 들었어요. 너무 개인적이고 즉각적인 감정들이 과잉된 느낌이랄까요. 그런데 뒤로 갈수록 가벼웠던 톤들이 무게감 있게 바뀌고, 전체적으로는 연애의 톤들이 다양하게 조화가 되어서 좋았어요. 다양한 ‘관계’를 그려내는 작가의 솜씨에 감탄하면서 읽었어요.


일벌레 : 저는 첫 챕터부터 매우 흥미롭게 읽기 시작했어요. <재희>에서 나오는 방을 합친다는 설정이 지금 서울의 젊은 세대를 잘 나타내는 예리한 설정이라는 생각이 들었구요, 그리고 저도 다희 에디터와 비슷하게 사랑을 그려낸 다양한 서사들이 좋았어요. 다만 책의 마지막 부분은 조금 오글거리긴 했네요 (웃음). 너무 소설 속에 심취해서 쓴 느낌이랄까요. 아직은 항마력이 조금 딸리나봐요 (웃음).     


이주 : 저도 전체적인 감상은 비슷해요. 연애 서사들이 무척 현실적이라 흥미로웠고, 무엇보다 전반적으로 유쾌한 느낌을 잃지 않은 게 좋았어요. 개인적으로는 두 번째 챕터 <우럭 한점 우주의 맛>이 제일 좋았어요. 과거의 사랑이야기-현재의 이야기-그리고 부모님과의 이야기. 이런 서사들이 겹친 형태가 형식적으로는 조금 전형적인데도 불구하고, 감정을 다루는 형태가 무척이나 좋았습니다.    


다희 : 그 작품이 올해(2019년) 젊은 작가상 수상작이지 않았나요?   


이주 : 맞아요, 각자 다르게 살아온 사람이 만나는 게 연애잖아요, 그랬을 때 서로 갖고 있던 가치관이 연애에 끊임없이 개입하는 걸 흥미롭게 잘 표현했더라구요, 그런 현실적이고 일상적인 면면들을 잘 다룬 소설이라고 느꼈어요.  




# ‘젊은 작가’라는 타이틀에 대해서



다희 : <우럭 한점 우주의 맛>보면 이게 젊은 작가의 작품이라는 게 확 느껴져요. 소설 속 주인공이 하는 말들이 우리 세대를 대변해서 하는 말처럼 느껴지더라구요. 보통은 작가가 그렇게 의도하더라도 그게 딱 젊은 세대의 감성을 잘 캐치한 얘기라고 느껴지지 않는 작품들이 대부분이거든요. 그리고 총 4가지의 소설들로 각자 다른 연애 양상을 보여줬는데, 그 연애들이 각자 충돌하지 않고 오히려 지금의 젊은 세대한테 공감을 받을 만한 형태로 묶여있어요. 미친 연애와 편안한 연애를 넘나드는 단짠단짠스러운 연애들이거든요 (웃음).


이주 : 공감해요. 그리고 연애의 시기도 딱 20대 초반부터 30대 초반을 거쳐가면서 느끼는 연애를 다양한 결로 잘 포착했어요. <재희>는 대학생 때의 연애. 그 뒤의 <우럭 한점 우주의 맛>은 조금 더 뒤의 상황이고, 마지막 <늦은 우기의 바캉스>는 조금 성숙한 연애로 넘어가구요. 이렇게 시기별로 나뉘면서 연애의 양상이 바뀌어가는 모습들이 흥미로웠어요. 젊은 작가 수상작들을 봤을 때, 2-3년 전만 해도 그게 동시대적이고 젊다고 느껴지지는 않았거든요. 근데 작년부터는 진짜 ‘젊다’는 느낌이 많이 들어요. 작품 하나하나가 다 그렇게 느껴져요. 실제 수상하는 작가들의 나이가 젊어진 것도 눈에 띄구요. 박상영 작가도 1988년생이니까, 우리가 그간 젊다고 말해왔던 작가들보다도 더 어린 축에 속하잖아요.


다희 : 맞아요. 그간의 젊다고 하는 소설들도 기존의 문법을 따르는 부분들이 많았기 때문에 부각되는 면도 있는 것 같아요. 윤리나 도덕에서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하는 캐릭터라던가, 혹은 작가가 소설을 통해 보여주는 희망이나 정의로움 같은 것들요. 예컨대 ‘젊은 작가’라고 불리는 정세랑 소설들을 떠올려보면 딱 그렇죠. 그런데 박상영 작가의 소설들을 보면 그런게 전혀 없어요. ‘도덕 꺼져’ ‘윤리 몰라’같은 캐릭터가 마구 등장하잖아요 (웃음).


박루저 : 맞아요 저도 공감하는 말이에요. 한국문학에는 젊은 작가가 너무 적어서 그런지, 그 동안은 결코 안 젊은데도 엄청 오랫동안 ‘젊은 작가’라고 부르는 경우가 너무 많았잖아요(웃음). 막상 읽어보면 감성이 이미 저 윗세대의 감성과 비슷한데, 포장은 ‘젊은 작가’라고 되어있는 경우가 많았죠.


이주 : 맞아요. 근데 그게 최근에 와서는 확 달라졌다고 느껴요. 아니면 우리가 20대 초반을 벗어나 20대 후반으로 와서 그런걸까요 (웃음).


박루저 : 그럴수도 있어요 (웃음). 저희 예전에 문학동네 젊은작가 시리즈도 다 같이 읽었잖아요. 그때도 비슷한 얘기 했었어요. ‘젊은 작가’라고 출판사에서 자꾸 우기는 데, 우리한테는 전혀 감각적으로 그 젊다는 게 느껴지지 않는다는 얘기요. 그게 벌써 4년 전의 얘기 같은데, 그 사이에 변화가 분명 있는 거 같긴 해요. 근데 이건 진짜 우리의 나이가 점점 들어서 일 것 같기도 해요(웃음). 20대 초반의 작가가 메이저 출판사에서 지면을 확보 받아서 책을 내기는 어렵잖아요. 그러니까 20대 초중반의 독자가 단행본들을 읽을 때, 진짜 이건 동시대적이고 우리 세대의 얘기다! 라고 하기가 어려운거죠. 근데 이제 우리가 20대 끝자락으로 오니까, 이제 우리 또래의 나이들이 작가로 활동하는 게 현실적으로 가능해 진거죠(웃음). 30대 초반까지는 이런 지면에 꽤나 자주 보이잖아요. 이제 어느정도 내 세대라고 공감이 되는 거죠.


다희 : 맞아요 지금의 10대와 20대 초반 독자가 보면 또 이게 전혀 안젊어보일수도 있어요(웃음). “에이 이런 거 제트세대 감성 아닌데~”하면서요 (웃음).


박루저 : 이제 한 십년 뒤면 우리가 “야 이런게 요즘 젊은 갬성이래~” 하면서 책들 추천받아야 될 수도 있어요 (웃음).


이주 : 그래서 전 심사하는 분들의 의견이나 기준같은 게 궁금하더라구요. 젊은 작가들의 소설을 어떤 기준으로 평가하는 지, 젊은 작가라는 호명도 어떤 각자의 나름대로의 기준이 있을지, 이런 게 궁금해요.




# 소설과 퀴어 정체성은 어떻게 봐야할까


다희 : 이 작품을 퀴어 정체성을 가진 사람이 읽으면 어땠을지도 궁금했어요, 저는 이걸 ‘퀴어’보다는 그냥 큰 ‘연애서사’로도 무척 잘 쓴 소설이라고 생각은 하는데, 퀴어 정체성을 가진 독자라면 다른 느낌이겠다 싶기는 했어요.          


박루저 : 음 저도 요즘 퀴어 서사를 쓰는 작가들을 보면 그런 생각들 자주 하게 되더라구요. 박상영 작가도 그렇고, 김봉곤 작가도 그렇구요. 퀴어 정체성을 가지고 소설을 쓴다고 했을 때, 그 작가들이 스스로 설정한 작가로서의 역할이 좀 비슷하다고 느꼈어요. ‘소설가’보다는 ‘퀴어 정체성으로 쓰는 소설가’라는 조금 구체적인 역할을 스스로 맡았다고 해야 할까요. 절대로 투쟁적이거나 비장하게 쓰는 게 아니라, 유쾌하게 써내는 방식도 조금 비슷한 거 같구요. 그래서 그 작품들이 사람들에게 어떻게 읽히는 방식이 궁금해요. 소설이 퀴어에 방점이 찍혀있기는 한데, 그럼 독자도 그걸 하나의 큰 기준으로 두고 읽어야 할지, 아니면 그냥 이성애를 다룬 흔한 소설들과 같은 방식과 같은 무게로 대하는 게 맞을지. 이런 게 고민되기는 하더라구요. 아마 이런 고민을 촉발시키고 또 얘기 나누는 거 자체로 좋은 소설이긴 하겠지만요.


이주 : 저도 비슷하게 느꼈어요. 퀴어 소설을 쓰는 사람들이 ‘퀴어 소설을 쓰기 위해서’라는 일종의 사명감을 가지고 소설가가 되지 않았나 싶은 생각이 작품에서 느껴지긴 했거든요. 박상영 작가도 이전 작품인 <알려지지 않은 예술가의 눈물과 자이툰 파스타>를 비롯해서 이번 작품까지 전체가 퀴어 소설이었잖아요. 이 이야기가 그대로 이성애 이야기였더라도 똑같이 좋기는 했을텐데, 그 퀴어라는 요소가 특징인 건 또 맞는 것 같거든요.


다희 : 맞아요. 근데 그 방점이 찍힌 퀴어소설의 요소들 중에는 분명 불편한 장면들도 있기는 했거든요. 저 스스로는 불편하지 않더라도, 이게 혹시 잘못된 편견으로 확대될 여지가 있을 것 같은 부분들이요. 예컨대 가볍고 육체적인 만남을 좋아하는 주인공이나 혹은 소설 속 게이들끼리 만나는 방식들이요. 이런 부분은 좀 과잉 재현되었다고 볼 여지도 있을 거 같거든요. 이런 표현들로 퀴어의 이미지가 재현되고 그걸로 많은 사람들이 퀴어 서사를 접한다는 점에서요. 그래서 퀴어 정체성을 가졌는데 작가의 표현과는 다른 삶을 살고 있는 독자가 봤을 때는 불편하지 않을까 싶었어요.

    

이주 : 맞아요. 서로의 육체적인 걸 탐내는 가벼운 만남이나, 이태원, 종로를 중심으로 하는 만남들이나, 소설 속의 이런 요소들은 저희가 흔히 접하는 얘기랑 너무 비슷하잖아요. 저는 그런 게 분명히 어느정도 편견이 섞인 과장된 얘기라고 생각했었는데, 소설에서도 너무 비슷하게 나와서 그게 오히려 퀴어 서사에 어떤 고정된 이미지를 강화하는 것 같기도 했구요.


박루저 : 저는 작가들이 이런 반응들도 이미 다 고민해본 뒤에 아까 말했던 소설가로서의 자기 역할을 정하지 않았을까 해요. 다른 소설가들이 자기 삶에 기반한 자기 얘기를 쓰듯이, 그들도 그냥 자기 얘기를 쓰는 거죠. “나는 나대로 나의 연애를 보여주면, 또 다른 작가는 자기 방식대로 보여주겠지”싶은 마음으로 쓰지 않았을까요. 소수자를 다루는 텍스트에서는 늘 비슷할 거 같아요. “내 얘기가 내가 속한 집단을 대변한다고 생각하면 어쩌지” 싶은 고민을 각자가 나름의 방식으로 넘어섰을 때 쓸 수 있지 않을까요. 그게 소설이든 웹툰이든 유투브든요.


다희 : 박상영 작가 스스로도 그런 얘기를 한 적이 있기는 해요. 자기가 남성 동성애자이기 때문에 가장 먼저 가시화되는 측면이 있을거라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다양한 퀴어 얘기들이 나왔으면 좋겠다고한 인터뷰를 본 기억이 있어요.


일벌레 : 음.. 퀴어라는 요소 자체가 작가한테는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정체성이기 때문에 그렇지 않을까요. 제가 줌파 라히리라는 인도계 이민자 출신의 미국인 작가를 좋아하는데, 이 작가가 쓴 대부분의 작품이 이민자에 대한 얘기거든요. 인터뷰를 보면 “내가 가장 잘 쓸 수 있는 이야기니까 쓴다”라고 작가가 단순하게 답을 했더라구요. 아마 퀴어 서사도 비슷하지 않을까요. 근데 저는 독자로서 박상영 작가가 보여줄 다른 이야기가 궁금하기는 해요.


이주 : 맞아요. 박상영 작가가 보여줄 다른 소설들이 여전히 기대가 되고, 또 더불어서 앞으로는 퀴어나 연애가 아닌 다른 걸 소재로 삼을지 그런 게 기대되기는 해요.


다희 : 분명 앞으로가 무척 궁금한 작가인 것 맞는 거 같네요. 꼭 연애 얘기가 아니더라도 젊은 감성으로 글을 잘 쓰는 작가거든요.


이주 : 결국 이번에도 핵심 주제인 '여행' 얘기는 전혀 안했네요.


다희 : 괜찮아요. 다음 책인 <박막례, 이대로 죽을 순 없다>에서 여행 얘기를 많이 해주길 바랍시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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