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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이디 Apr 07. 2023

안식년을 방해하는 세가지 걸림돌

나의 야심찬 안식년 계획을 방해하는 세 개의 걸림돌이 있다. 그건 바로 게으름, 낯가림, 가계부이다. 아침에 남편과 아이를 내보내고 대강 집안을 정리한 후 커피를 한 잔 내려 쇼파에 깊숙히 기대앉으면 그렇게 편안할 수가 없다. 거실 창 너머로 들어오는 따스한 햇살에 잔잔한 음악까지 곁들이면 '이런 게 바로 행복이지!' 싶다.


쇼파에 걸쳐진 엉덩이가 자연스레 옆으로 기울어지면서 어느새 머리는 쿠션 위에 닿아 있다. 오늘부터 시작해야지 했던 운동도, 도서관에서 예약도서를 찾는 것도 미루고 게으름을 피우다보면 어영부영 하루가 지나가 버린다. 가끔은 무료하기도 하지만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편안함과 자유로움의 유혹을 쉽게 뿌리칠 수가 없다.



아이들을 키우는 동안 내가 속해 있던 모임들은 대부분 학부모 모임이었다. 낯가림이 유독 심한 나는 해마다 학기초가 되면 새로운 학부모 모임에 참석하는 것이 가장 부담스러웠다. 아이를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참석했고, ㅇㅇ엄마로 내 앞에 붙여지는 아이의 이름 때문에 애써 태연한 척 했지만 늘 피하고 싶은 자리였다. 아이를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그 불편함을 참았지만 굳이 다른 곳에서도 그런 기분을 느끼고 싶지 않았다.


또, 무언가를 해보려고 하면 항상 돈이 문제였다. 특별한 재능이나 취미가 있는 것이 아니니 뭐라도 시작하려면 새로 배워야 하고, 배우려면 돈이 들어야 했다. 아이들 학원비에는 아예 지갑을 열어놓고 살면서도 정작 내 취미를 위해서는 가계부를 펼쳐놓고 계산기를 한참 두드렸다.


올해 막내까지 대학에 들어가고 나면 더이상 학원비를 내지 않아도 되어 여유가 생길 거라 생각했는데 실제로는 별로 달라진 게 없다. 가계부 어느 구석에도 내 학원비를 밀어넣을 틈이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아니 그보다 내게 쓰는 돈은 여전히 아까운 마음이 먼저 든다.



게으르고 낯을 가리고 돈도 아까워하는 내가 인생을 좀 다르게 살아보려니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그래도 이왕 계획한 안식년이니 뭔가 해봐야겠기에 인터넷을 뒤지기 시작했다. 게으름과 낯가림은 내 의지에 달린 것이니 마음을 굳게 먹으면 되고, 돈을 최대한 적게 들이며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기로 했다.

 



           ▲ 서대문 50플러스 센터 


그렇게 여기저기를 헤매다가 찾아낸 곳이 '서울시 50플러스 재단'이다. 아이들 어렸을 때 방과후 활동을 위해 찾아다녔던 동네 도서관이나 주민자치센터 같은 곳에서도 성인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이 있었지만 성인만을 위한, 그것도 내 나이에 딱 맞는 공공교육기관은 처음 찾았다.


그런데 처음에는 '50플러스'라는 명칭이 마음에 안들었다. 나는 여전히 젊은이들의 세상이 궁금하고 그들과 어울리고 싶은데 이제 50으로 가는 그러니까 노년으로 가는 길에 제대로 발을 들여놓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고나 할까.


아무튼 내가 살고 있는 동네와 가장 가까운 센터를 찾아보니 '서대문 50플러스 센터'가 있었다. 그곳에는 무료로 진행되는 하루 온라인 특강부터 자격증을 준비할 수 있는 몇 개월 과정 교육까지 관심분야에 따라 골라서 수강할 수 있는 다양한 강좌들이 개설되어 있었다. 또한 자신만의 특별한 교육 콘텐츠가 있으면 심사를 거쳐 프로그램을 직접 개설할 수 있는 기회도 제공되고 있었다. 무엇보다 수강료가 1만~2만 원(내가 본 강좌 중에 제일 비싼 수강료가 33000원이었다) 정도로 매우 저렴하여 마음에 들었다.          

 

      

내가 과연 잘 할 수 있을지, 배워서 쓸모가 있을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무조건 재미있을 것 같아 보이는 강좌를 찾았다. 그러다가 눈에 들어온 것이 "서대문 FM라디오 함께 만들기'와 '펜 드로잉'이었다. 하지만 내가 관심있는 강좌는 다른 사람들에게도 인기가 있었다. 치열한 신청 경쟁 끝에 FM라디오 만들기는 결원이 생겨 추가로 겨우 신청할 수 있었고, 펜 드로잉은 접수가 시작되는 시각에 알람까지 맞춰놓았지만 10분 늦게 들어가는 바람에 이미 마감되어 아쉽게도 신청에 실패하였다. 나만 빼고 다른 사람들은 모두 부지런히 살고 있는 것 같아 다시 한 번 나의 게으름을 반성하게 되었다.



이렇게 27년 만에 나를 위한 학원(?)에 등록하면서 나의 안식년이 드디어 시작되었다. 수업은 재미있으려나, 어떤 사람들을 만나게 되려나 무척 설레면서 한편으로는 긴장이 되기도 한다. 이제부터 게으름과 낯가림을 떨쳐내고, 나의 새로운 인생을 위한 도전을 시작해 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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