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지금껏 지켜본 장례식도 대부분 이런 단어들로 점철된 것이었다. 장례식을 찾은 사람들은 눈물을 흘렸고 떠난 이에게 더 잘해주지 못했던 과거를 후회했다. 생전에 만났던 장례식 당사자도 자신의 마지막을 담담히 기다리기보다 죽음을 두려워한 경우가 많았다. 흔히 영화에서 본 것과는 달리 죽음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말과 행동에서는 삶의 미련이 묻어 나왔다. 자연스레 내 죽음에 대해서도 생각했다. 두려웠다. 죽음의 순간이 다가오면 나는 미련 없이 이 세상을 떠날 수 있을까? 내 장례식은 어떤 모습일까?
그런데 여기 장례식을 '응원'하는 청춘들이 있다. 그들을 지켜본 이승문 PD는 장례식을 '축제'에 비유하기도 한다. KBS <다큐 인사이트> '너의 장례식을 응원해' (2부작)의 이야기다.
'너의 장례식을 응원해'의 주인공은 을지대학교 장례지도학과 학생들이다. 그들은 치어리딩 동아리 '치엘로'의 단원들이기도 하다. 학생들은 낮에는 장례식장에서 시신 처리와 장례 절차를 공부하고 수업이 끝난 뒤에는 주차장에서 치어리딩을 연습한다. 화려한 치어리더와 엄숙한 장의사는 어딘지 모르게 이질적인 조합이지만 어쩐지 그 모습이 삶과 죽음은 맞닿아 있다는 느낌을 준다.
그들이 장례지도학과에 들어오게 된 이유는 각양각색이다. 성적에 맞춰서, 친구의 죽음을 경험하고서, 아버지의 부재로 인해서. 하지만 장례를 대하는 마음은 비슷하다. 죽음을 끝이 아닌 삶의 한 부분으로 보고 삶을 응원하듯이 죽음을 응원하는 것. 장례식이 조금이라도 축제에 가까워질 수 있도록 누군가의 마지막을 보살피는 것. 누군가의 마지막 순간에 동반자가 되기로 그들은 결심한다.
다양한 삶만큼 많은 죽음을 가까이 곁에 두고 있기에 그들이 '죽음'을 대하는 태도는 사뭇 다르다. 그들에게 '죽음'은 언급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 아니다. 단순히 두렵고 슬픈 것만도 아니다. 죽음을 삶의 부분으로 받아들이는 그들이기에 치어리딩 중간에 관을 박차고 나오는 퍼포먼스를 생각하기도 하고 고된 치어리딩 연습에 뻗어버린 친구에게 염습하는 동작을 하며 장난치기도 한다.
그들은 자신의 장례식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할까?마지막 순간이 삶의 어느 순간보다 중요하다는 사실을 그들은 알고 있다. 대부분의 장례식은 당사자가 세상을 떠나고 나서 장례업체에 맡겨져 비슷한 형태로 진행된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의 장례식은 조금 달랐으면 한다.
"제 장례식 때는 축제 분위기로... BGM 신나는 걸로 깔고"
"죽기 일주일 전쯤에 내가 장례식 열려고"
"축하합니다. 당신은 A의 장례식에 초대되었습니다. 자리를 빛내주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장례식을 그저 슬프게, 엄숙하게만 받아들여야 할까? 죽음 자체를 미화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누구나 필연적으로 맞이하게 될 죽음을 부정적인 것으로만 생각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슬픈 일이다. 죽음은 비극일 수도 있지만 삶에 활기를 주는 동력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죽음을 직시해야만 얻을 수 있는 풍요로움이 우리 삶에는 존재한다. 우리가 다른 슬픔과 상실에 대해 이야기하고 나누면서 얻게 되는 것이 있듯이 '죽음'에도 그러한 요소가 존재하는 것이다.
마이클 헵(Michael Hebb)도 그의 저서 <사랑하는 사람과 저녁 식탁에서 죽음을 이야기합시다>에서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억압하면 억제된 대화는 비밀이 되어 마음속 공간을 차지한 채 사라지지 않는다고, 그리고 그것은 우울하고 지독하게 외로운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죽음과 관련한 대화의 물꼬를 트는 질문들을 제시하는데 그중 하나가 "자신의 장례식을 준비한다면 어떻게 기획하고 싶은가요?"이다.
죽음은 극복의 대상이 아니다. 그저 동전의 양면처럼 우리의 삶과 함께 존재하다.
비슷한 생각을 하고 이를 실천했던 사람이 한국 사회에도 있었다. 2018년 고(故) 김병국 씨는 '생전 장례식'을 치렀다. 당시 그는 85세의 나이로 전립선암 말기 판정을 받은 상태였다. 김병국 씨는 죽고 나서 장례를 지내는 게 자신에게 무슨 소용이냐며 살아있을 때 작별인사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주변의 도움을 받아 자신이 살아 있을 때 장례식을 열기로 결심한다. 장례식의 제목도 정했다. '나의 판타스틱한 장례식'. 김병국 씨는 환자복을 벗고 말끔한 차림으로 직접 손님을 맞았고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고 노래를 부르며 인사를 나누었다. 그의 장례식에는 울음뿐만 아니라 웃음과 농담이 공존했다.
죽음과 장례식을 통념과는 다르게 받아들이는 이들을 보면 한 가지를 후회하게 된다. 왜 나는 내 가까운 사람들을 떠나보낼 때 그들의 마지막을 제대로 함께하지 못했을까. 왜 마치 그런 순간은 오지 않을 것처럼 연기에 가까운 행동과 말을 했을까. 그 속에서 사람들은 깊은 외로움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나는 그들의 삶을 응원했는가, 그들의 장례식을 응원했는가.
내 장례식이 어떤 모습일지는 아직 모르겠다. 하지만 내 장례식에는 적어도 내가 좋아하는 음악이 흘러나오고 많은 사람들이 울기보다 웃으며 슬픔이 아닌 충만함을 느끼고 돌아가면 좋겠다. 그런 마지막이 될 수 있도록, 그런 삶이 될 수 있도록 누군가가 응원해준다면 마지막도 그리 쓸쓸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고 누군가의 장례식을 응원하는 용기를 내가 낼 수 있기를... 당신의 삶을 내가 응원하기에.
참고) 마이클 헵이 제시한 죽음을 이야기하는 22가지 질문들
1. 살날이 한 달밖에 남지 않았다면 남은 시간을 어떻게 보내고 싶은가요? 마지막 날, 그리고 마지막 순간에 무엇을 하고 싶은가요?
2. 사랑하는 고인이 해 준 요리 중 기억나는 음식은 무엇인가요?
3. 자신의 장례식이나 죽음을 기리는 기념물을 직접 준비한다면 어떻게 기획하고 싶은가요?
4. 죽음에 이르는 과정에 의료 개입이 과도하다고 생각하나요?
5. 유언장, 사전 연명 의료 의향서, 위임장을 준비했나요? 아니라면 그 이유는 뭔가요?
6. 당신이 지켜본 가장 소중한 임종의 순간은 언제인가요?
7. 우리는 왜 죽음에 관해 이야기하지 않을까요?
8. 아이들에게 죽음에 관한 이야기를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요?
9. 사후 세계를 믿으세요?
10. 의사 조력 자살, 즉 존엄사를 고려해 본 적이 있나요?
11. 당신의 장례식에서 어떤 노래를 누가 불러 주길 바라나요?
12. 장기를 기증하실 생각인가요?
13. 좋은 죽음은 어떤 모습일까요?
14. 당신의 시신을 어떻게 처리하고 싶은가요?
15. 절대 언급하지 말아야 할 죽음이 있나요?
16. 당신의 수명을 늘릴 수 있다면 얼마나 늘리고 싶은가요? 20년? 50년? 100년? 영원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