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내 책상 위 고양이 Jan 13. 2021

인터뷰 어떠세요? (1)

"첫사랑 인터뷰?, 나는 그런 거 안 해요."


휭~. 정확히 14번째다.


2020년 1월, 처음으로 유튜브 영상을 만들었다. 노인에게 첫사랑에 대해 물어보는 콘텐츠였다. 이 콘텐츠가 첫 영상이 된 이유가 있었다. 돈이 적게 들어서였다. 길거리 인터뷰로 내용이 채워지니 장비 대여 비용 이외에는 몸으로 때우면 될 것으로 생각했다.


문제는 그 몸으로 때우는 과정이 녹록지 않았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생각보다도 카메라를 부담스러워했다. 노인들뿐만이 아니었다.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영상을 만들 때도, 아이들을 대상으로 촬영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시간이 늘어지고 거절이 계속되면서 내 마음에도 생채기가 생기려 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문제가 여전히 남아 있었다.

대체 어떻게 하면 사람의 마음을 열 수 있지?


인터뷰 승낙을 얻기 위해 여러 시도를 했다.


① 관상 살펴보기 - 왠지 해줄 것 같은 사람에게 인터뷰를 요청한다. 

② 여유로워 보이는 사람 찾기 - 걸음걸이가 느리고 주위를 구경하면서 걷는 사람에게 인터뷰를 요청한다. 

③ 읍소하기 - 취준생임을 호소하며 최대한 불쌍한 표정을 짓는다.

④ 잘생긴 팀원 시키기 - 우리 중에 잘생긴 사람이 없어 시도하지 못했다.


모두 별 효과는 없었다. 카메라에 자신의 얼굴이 찍히고 기록되는 부담은 내 생각보다도 커다랬다. 인터뷰에 응해준 사람조차 자신이 어떻게 화면에 비칠지에 대한 불안감을 가지고 있었다.

게다가 우리는 어디서 듣도 보도 못한 근본 없는 녀석들 아닌가?

미심쩍은 우리에게 그냥 인터뷰를 해줄 리가 없었다.


결국, 한 가지 방법만이 남았다.


"내 기획의도를 투명하고 진정성 있게 전달하기" 


뻔한 말 같지만 이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자 유일하게 효과가 있는 방식이었다. 흉흉한 세상에서 사람들은 보통 누군가가 말을 걸면 경계를 한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도 내가 영상의 기획의도를 차분하게 설명하면 적어도 잠시나마 진지하게 고민을 해주었다. 선택은 그다음이었다.


놀라운 건 그런 과정을 거쳐 인터뷰에 응해준 사람들의 말이 영상의 핵심 내용으로 쓰였다는 것이다. 영상의 기획의도에 공감한 이후에 인터뷰가 진행되니 사람들이 마음을 열고 적극적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해준 덕분이었다.


결국 기획의도가 중요했다. 이 영상이 어떠한 것을 목적으로 하며 당신의 인터뷰가 그에 기여할 수 있다는 점을 진정성 있게 설득해야 했다. <노인과 첫사랑>의 경우에는 노인이 생각하는 사랑이 무엇인지 들어보고 노인 역시 '사랑'에 심장이 뛰는 존재라는 점을 보여주고 싶었다.


실제로 나는 여러 노인들을 인터뷰하면서 그들을 머리로 아닌 가슴으로 배웠다고 생각한다. 머리로는 노인들 역시 당연히 사랑을 하는 존재라고 생각했지만 막상 이야기를 듣고 그들의 표정을 마주하니 생각지 못한 묘한 감동이 있었다. '첫사랑'에 대해 말하는 그들의 얼굴에서는 깊은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쉽게 헤아리기 어려운 노인들의 삶과 기억이 응축되어 있는 미소였다. 그 미소들을 찍을 수 있어서 행운이었다.


결국 인터뷰는 듣는 과정일 뿐만 아니라 가슴으로 사람과 세상을 배우는 과정이기도 하다. 다양한 사람과 그들의 삶을 인터뷰하고 싶은 이유다. 그러기에 나는 계속해서, 어쩌면 평생 동안 이 말을 하고 싶다. 


"인터뷰 어떠세요?"







*2편에 계속 (수요일 연재)



매거진의 이전글 누군가 내 장례식을 응원한다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