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창호 Nov 30. 2021

내가 기억하는 찐 메이플 시럽

꿀 찍은 가래떡 구이를 먹으며 불멍 하는 것 같은 느낌


종일 비가 내리더니 본격 겨울이 시작되는 듯하다. 겨울의 추위가 시작되면 가끔은 캐나다 밴쿠버가 생각난다. 캐나다가 동계올림픽이 자주 열리는 나라여서이기도 하겠지만, 오래 전의 첫 방문 때 충분한 대비를 하지 못해 개인적으로 ‘추운 곳’하면 생각나는 장소가 되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보다도 위도 10도 정도 북쪽에 위치한 캐나다의 날씨는 2~3월이 되어도 제법 쌀쌀했었다. 추운 날씨를 견디자면 물론 따끈한 핫 초코 같은 게 여행지 불문의 긴급처방으로 유효했지만, 밴쿠버에서는 메이플·카더몬(생강 맛과 비슷) 라테 같은 현지 처방도 꽤 효험이 있었다. 그 맛이 마치 꿀차 같기도 하고 조금은 다르기도 했지만, 암튼 꿀 찍은 가래떡 구이를 먹으며 불멍 하는 것 같은 기분을 만들어줬었다. 

대전 성심당의 빅매치 꾸덕한 크림치즈와 달달한 메이플 시럽이 격돌하는 강대강의 빅매치이나 그 맛은 혜자롭다. 메이플 시럽이 만드는 매직이다.

귀국 길에 작은 크기의 메이플 시럽을 한병 챙겨 오기는 했었는데, 한국에서 그때의 맛들을 다시 느껴볼 기회를 갖지는 못했었다. 그 뒤로 캐나다로 출장을 다녀오는 이전 직장동료나 선후배들이 가볍게 건네는 귀국선물도 대부분 메이플 시럽이었음에도 겨울 밴쿠버의 현지 처방 효험 같은 느낌을 가져보지는 못했던 듯하다. 쩝.


메이플 시럽은 단풍나무의 수액으로 만들어진다고 한다. 주 생산지는 역시 국기에 단풍나무가 새겨진 캐나다인데, 그중 70%가 동쪽 끝의 퀘벡주에서 생산된다고 한다. 퀘벡주는 뉴욕보다 위도가 5도 정도 높은 북위 46도에 위치해 있고 북쪽의 땅끝은 북극해와 맞닿아 있다.


안 그래도 전 세계적인 생산 양 자체가 그렇게 많지 않아 귀하신 몸인데, 기후변화로 얼마 전부터 수액을 채취할 단풍나무의 재배와 생산에 점점 애를 먹고 있다고 한다. 이미 전 세계적으로 메이플 시럽의 공급 부족이 발생해 퀘벡주가 비축분을 풀어 부족분을 메꾸고 있다고도 한다. 퀘벡의 북쪽은 북극해인지라 기후위기를 경고하는 전문가들의 우려처럼 만일 기온이 실제로 1.5도 높아지게 되면 어느 날 갑자기 진짜 메이플 시럽을 맛볼 수 없을 수도 있겠다.

       

물론, 이미 팬케이크 같은 것에는 용설란이나 당밀, 고과당 옥수수 시럽 같은 대체물로 만든 fake 메이플 시럽이 서비스된 지가 오래라고는 한다. 글쎄, 그런 맛들은 잠시 동안의 달달한 기분을 만들어 줄 수 있을 진 모르지만, 꿀 찍은 가래떡 구이를 먹으며 불멍 하는 것 같은 느낌을 줄 수 있을 것 같진 않다. 진짜를 영영 맛볼 수 없다는 것은 분명 다른 얘기다. 쩝.


언젠가 퀘벡에 한 번쯤 가봐야 할 이유가 하나 더 생겼다. 가볼 곳은 너무 많아졌는데 안전하게 여행할 수 있는 날은 어쩌면 더 기다려야 할지 모르겠다. 또, 여권만 만지작 거리게 된다.

작가의 이전글 다시 첫눈을 기다려 본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