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시절 영어 소설책을 함께 읽는 윤독 동아리 활동을 했었다. 짬짬이 시간을 내서 책을 함께 읽었던 터라 얇고 쉬운 문고 판형 책을 주로 골랐었는데, 그런 책들 중 하나가 오헨리의 단편 ‘크리스마스 선물’이었다.
소설의 플롯은 간결하다. 가난하지만 서로 찐 사랑을 하는 한 부부의 크리스마스 선물에 관한 이야기다. 남편을 위한 아내의 선물은 시계줄, 아내를 위한 남편의 선물은 머리빗이었다. 그게 참..지금 다시 생각해도 맘이 짠해진다.
지금의 MZ세대들은 이해하기 어려울 너무 진부하고 뻔한(?) 플롯의 소설일지 모르지만 당시의 우리들은 윤독에 다들 진심이었다. 모르는 단어가 나오면 벽돌크기 종이사전을 넘겨가며 열심히 찾아봤었고, 소설 속의 선물의 의미를 두고서도 까까머리 고딩들끼리 꽤 진지한 갑론을박을 했었던 듯하다. 그때만큼 '크리스마스 선물'에 진지해본 적이 또 있을까 싶다.
직장생활을 할 때, 한동안 휴가를 여름이 아닌 12월 겨울에 갔었다. 물론, 코로나19 발생하기 이전의 이야기다. 워낙 추위를 못 견뎌하는 터라 우리나라가 겨울일 때, 반대로 여름인 뉴질랜드에 避寒 휴가를 갔던 것이다. 오래전에 뉴질랜드로 이주한 친지가 있어서 가능했던 일이다.
뉴질랜드에 갈 때면 조카들의 선물로 한국에서 만든 크리스마스 빵을 사 갔는데, 조카들은 삼촌과 빵의 방문을 함께 반겼다. 슈톨렌이었다. 그다음 해 조카들은 아예 삼촌의 방문보다 크리스마스 빵의 한국 직송을 더 기다리는 눈치였다. 빵이든 삼촌이든 기다려주고 반갑게 환대해주니 암튼 고마웠다. ㅋ.
깨톡, 깨톡.. 12월이 되니, 연말 인사겸 오랜만에 소식을 전해오는 지인들의 카톡이 많아진다. 12월 초에 한 지인이 보낸 카톡에는 슈톨렌 사진이 보인다. 사진 속 빵은 대전에 사는 본인의 다른 지인이 보낸 것이지만, 연말이면 슈톨렌을 주변 사무실에 자주 챙겨 보내던 내 생각이 났다는 메시지였다. 그래 카드보다는 빵이 오래 남는구나. ㅋ.
최근에 새로 시작한 일로 느슨한 인연을 맺게 된 창원과 광주의 지인 분들께 카드 대신에 크리스마스 빵을 보내드렸다. “소소합니다만, 크리스마스 기다리시면서 가족분들과 사랑으로 함께 나눠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크리스마스 카드 대신입니다.” 뉴질랜드 사는 조카들의 반응과는 조금은 달랐지만, 창원과 광주의 지인분들께서도 비슷한 강도의 하트♡♥ 환호가 담긴 피드백을 보내주셨다. 하트♡♥를 보니 마음 한구석이 뜨거워진다.
이렇게, 12월엔 한 해를 함께 한 감사한 분들께 마음을 한번 표현해보는 것도 좋을 듯싶다. 카톡 메시지든 빵이든 마음을 담아 무언가를 보내면, 대게는 ♡♥환호로 되돌아오는 경우가 더 많기 때문이다.
오랜만에 12월 '크리스마스 선물'에 대한 추억을 다시 꺼내보니, 마음이 흡족해진다. 문고 판형 책을 손에 쥔 듯한 느낌도 든다. 그 시절의 까까머리 고딩들은 다들 잊고 살겠지만, 잠시 나는 그렇다. ㅋ
"다들 Merry Christmas~~, 빵은 못보내지만 어이 얘들아 내맘 알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