탕갈레 숙소인 메나카(Menaka home stay)에 도착해서 짐을 풀자 소박한 해안 도시만의 산뜻한 기분이 들었다. 사원에서 탕갈레 해변으로 오는 길은 제법 관광지 티가 났다. 외국인이 더러 보였고, 아기자기한 카페와 작은 식당이 고개를 빼꼼 내밀고 있었다. 이것 좀 봐, 이게 내 취향이라고, 끌리면 들어와 봐,라고 도도한 듯 친근한 느낌. 유행이 한 철 지난 관광지의 성숙하고 참신한 분위기였다.
메나카는 뚝뚝이 두 대 정도 주차할 수 있는 작은 마당과 테이블을 2~3개 정도 놓을 수 있는 작은 식당, 그리고 대여섯 개의 방을 가진 앙증맞은 숙소였다. 해변까지는 100m 남짓, 인도양의 짠내가 훅 불어오는 듯했다. 젊고 다부지면서 반듯해 보이는 스텝이 반갑게 말을 걸었다.
"오늘 저녁 우리 집에서 먹는 거 어때요? 저는 어부인데요. 직접 잡은 해산물로 맛있는 요리를 만들게요."
"메뉴랑 가격은요?"
깍쟁이 여행자가 되어버린 나는 먼저 다가오는 제안에 늘 한 발 물러서며 대응했다. 혹시 바가지 쓰는 건 아닐까, 못 먹는 향신료나 요리법이면 어떡하지. 그래도 해산물 요리는 구미를 당겼다. 섬나라인 스리랑카에는 분명히 새우나 생선 등 해산물이 많을 텐데, 식당에서 해물 요리를 찾아보긴 힘들었기 때문이다.
"어떤 게 잡히는지에 따라서 다른데요. 보통 랍스터를 비롯해서 새우나 생선이죠. 3명이니까... 8천 루피 어때요?"
"좋아요. 기대할게요! 어부의 밥상."
우리나라 김밥천국 같은 평범한 식당에서도 셋이서 2~3천 루피는 쉬이 썼으므로, 해산물이 가득한 식탁에 대한 모험으로 8천 루피는 부담되지 않았다.
식사 예약을 마치고 탕갈레 산책에 나섰다. 해변가를 따라 걷다가 골목길로 냉큼 들어가 길을 잃어도 좋을 듯 걸었다. 뚝뚝을 타고 오며 봤던 카페와 피자집에서 메뉴를 살폈다. 어찌나 속삭이는 것 같던지, 며칠 머물렀다면 그냥 지나치지 못했을 것 같다. 작은 공장 담벼락에는 자유분방한 그라피티가 그려져 있었다. 큰길에 들어서자 여행자가 제법 많이 보였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탕갈레 해변으로 쓸려갔다.
반갑게도, 탕갈레 해변의 주인공은 여행자가 아니었다. 한 무리의 스리랑카 사람들이 온전히 그들의 시간을 즐기고 있었다. 춤추고 노래했다. 우리, 그리고 외국인 여행자들은 이들을 지켜보며 아마 같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화려한 불꽃이 꺼진 뒤 은은하게 온기를 유지하는 숯처럼 열정과 안락함이 균형을 이룬 탕갈레였다.
조금 더 걸어 탕갈레 해군 기념비(Tangalle Navy Monument)로 갔다. 스리랑카 내전에서 희생된 해군을 기리는 곳이었다. 스리랑카 내전, 내전으로 부르는 게 맞는진 모르겠지만 이때 까지는 두리뭉실하게 알고 있을 뿐이었다. 나중에 자프나, 물라티부 등 북부 지역에서 스리랑카 내전과 반군 세력이었던 LTTE에 대해서 생각할 계기가 있었다. 그때 조금 더 자세하게 이야기하는 게 좋을 것 같다.
탕갈레 해변은 어쩐지 재미있는 놀이터 같아서 뚝뚝을 타고 한가로운 해변이라고 알려 사일런트 해변(Silent Beach)에 다녀왔다. 가는 길부터 이름값을 톡톡히 했다. 입구를 찾기 힘든 작은 골목, 경차 한 대가 간신히 들어갈 만한 좁은 길로 뚝뚝을 몰았다. 중간에 다른 차나 뚝뚝을 마주치기라도 하면 큰일이었다. 작은 도로를 키 큰 나무가 에워싸고 있어 더 어렵게 느껴졌다. 사일런트 해변은 이름대로 음소거한 것처럼 조용하고 한가로웠다. 나무 사이에 숨은 리조트나 호텔에 묵고 있는 여행자가 가끔 모습을 보였다. 누군가는 먼 타지에서 이렇게 은둔을 선택한다. 집에서도 얼마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은 침묵 같은 휴식을 왜 이곳까지 와서 하는 걸까. 낯선 곳에서 그곳에 익숙해지며 평소와 다른 집중력과 오감을 발휘하는 시간, 여행의 또 다른 정의는 이런 게 아닐까. 오직 인간만이 이런 시간을 쫓고, 그 속에서 가치를 발견한다.
숙소에 돌아와 씻고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었다. 저녁 먹을 식당을 찾지 않아도 되는 여유로움이 입맛을 돋우었다. 약속한 시간이 되어 야외 식탁으로 갔다. 불청객 모기를 쫓기 위해 상당히 많은 모기향이 무대 효과처럼 피어올랐다. 곧 음식이 나왔다. 카레와 향신료가 은은하게 배어 있는 밥, 후추와 소금으로 맛을 낸 볶음 새우, 그리고 칠리소스와 고추 피망을 올린 랍스터 요리가 식탁을 채웠다. 허허, 나는 입꼬리가 올라가면서도 어이없이 좋아서 허허, 하고 헛웃음이 나왔다. 아낌없이 차렸다. 귀한 재료로 정성껏 차린 어부의 밥상이었다. 간도 딱 맞았다. 이렇게 맛있고 귀한 식사가 고작 8천 루피라니. 우리 돈으로 한 사람에 1만 원 꼴이었다.
이후로 우리는 남도 한정식 같은 상차림을 '어부의 밥상'이라고 불렀다. 여행 내내 몇 번이나 되새기며 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