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갈림길이 나타났을 때, 나는 우뚝 멈춰 섰다.
2시 방향으로 낮은 전봇대를 하나 끼고 굽이진 길을 올라서면 달동네 같은 빽빽한 주택가가 펼쳐지는. 9시 방향으로 비교적 크게 나 있는 골목은 새로 지은 아파트 숲으로 이어지는 화려한 가로등 빛이 가득한 길.
너의 집 가는 길은 11시 방향으로 난 경사 높은 골목길. 처음 왔을 땐 산으로 가는 줄만 알았잖아. 미끄럼 방지를 위해 오돌토돌 빨래판 같은 오르막이 길게도 펼쳐진 그 길을 앞에 두고 나는 잠시 멈춰 섰다.
우선 뜬금없이 내가 지금 여기 서 있는 이유를 생각해 보느라 멈췄고, 아찔하게 가파른 이 길을 오늘 같이 찐득한 여름밤에 오를 자신이 있는지 생각해 보느라 멈췄고, 더 이상 네가 살고 있지도 않을 저 끝에 동네가 어떤 의미가 있을지 생각해 보느라 멈췄어.
하지만 내가 이 골목에서 마치 벽이라도 마주한 듯 딱 하고 멈춰 선 가장 큰 이유는 다름 아닌 기억 때문이다. 길 앞에 서자 몇 번이고 몇 번이고 함께 오르던 우리 모습이 보였기 때문이다. 3년이 넘는 시간 동안 대체 몇 번을 함께 올랐을까.
“힘들죠? 이제 조금만 더 가면 돼요. 그러니까 밑에서 헤어져도 됐다니까"
처음 너를 데려다주던 날 네가 했던 말.
“매번 이렇게 안 데려다줘도 되는데. 이 길이 좀 힘들어야 말이죠"
너와 사귀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
“거봐. 오빤 체력을 길러야 한다니까. 벌써 지쳐가지고는"
100일쯤 되었을 때 했던 말이었나?
“뭐야, 표정이 왜 그래? 귀찮나 보네”
1년쯤 되었을 때 자주 이랬지
“됐어. 이제 매번 안 데려다줘도 돼"
2년이 지나갈 즈음이었나. 이런저런 핑계로 너를 집에 데려다주는 횟수가 부쩍 줄어들었다. 너를 덜 좋아하게 된 것은 아니었지만, 예전과는 분명 느낌이 달라진 것을 알고 있었다.
3년이 조금 지났을 때, 서로의 마음에서 조금씩 크기를 키워가던 작은 금이 더 이상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큰 균열이 된 것을 눈치챘을 때, 우리는 헤어지기로 했다. 그리고 그날도 우리는 함께 이 길을 올랐지.
그날은 유독 서로 아무런 말이 없었다. 터벅터벅. 묵묵하게 발걸음 소리만이 귓가에 맴돌았다. 우리는 헤어지기 위해 함께 그 길을 올랐던 것이니까.
“잘 가. 건강하고"
……
지금 나는 이 길에 혼자 서있다. 너를 보낸 지 참 오래된 시간이다. 그래도 아직 이 길은 낯설지가 않구나. 막상 와보니 어제 올랐던 것처럼 익숙한 것은 또 뭘까.
결국 나는 그곳을 오르지 않았다. 너와 함께 하던 길을 나 혼자 오르는 것이 마치 기억을 더럽히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어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무슨 대단한 일이라고…
발길을 돌려 되돌아오는 길은 생각보다 후련했다. 그러다 문득 궁금해졌다.
‘나는 그때 울고 있었던가?’
또 궁금해졌다. 그날, 그 마지막 순간에, 네가 작별 인사를 하던 그때 말야.
‘너는 그때 울고 있었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