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한 일상, 심폐소생 해보자
"점심시간에 병원 좀 다녀오겠습니다"
이번 주만 벌써 두 번째다. 도저히 배가 아파 병원을 안 가곤 못 배기겠어 밥을 포기하더라도 회사 앞 한의원에 가야 했다. 1분 1초가 아깝기에 부랴부랴 뛰어 병원에 앉아 의사에게 나의 상태를 조근조근 읊조렸다.
배에 돌덩이가 들어앉았는지 배가 너무 답답하고 아픕니다.
나도 회사병이라 생각하고 주말이면 괜찮겠지 이번 주는 일이 많아서 그래, 다음 주면 괜찮겠지 차일피일 미루다 보니 어느새 이 증상은 더욱 심해졌다. 소화기관 혈점에 침을 맞고 나니 한결 나아졌으나 역시 그때뿐 다시 아프기를 반복했다. 만성 소화불량을 앓고 정말 너무나 쉽게 지치고 피곤했다. 해야 할 일은 많은데 몸이 그만큼 안 따라주니 그것도 정말 스트레스였다.
배가 아프다 → 제대로 못 먹는다 → 체력이 달린다 → 스트레스받는다 → 더 배가 아프다 → 무한 반복 ∞
내 일상이 엉망이 되고 있단 위기감을 느꼈다. 의사쌤은 이런 건 특별한 치료법이 있다기 보단 생활 습관을 개선해야 한다고 권했다. 스트레스를 관리하고 식습관을 바꿔보라고.
그래서 시작된 일상 관리. 일잘러들의 특징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다들 일상의 작은 조각들이 하나 하나 탄탄하게 세워진 느낌이다. 자잘한 일상을 어떻게 짜임새 있게 관리할 수 있을까. 갑자기 급격한 변화를 주기엔 그를 감당할 신체가 비루하기 짝이 없다. 프로 다짐러 답게 매번 대책 없이 포부만 거창한 계획을 앞세웠다 도돌이표 같은 반성을 반복해 온 나다. 그러다 깨달은 나만의 철칙이 있다.
이번에도 이 2가지의 원칙을 가지고 자잘한 일상에 조금만 더 정성을 쏟아보기로 했다.
매일의 난 늦잠으로 아침밥은 빠르게 패스. 허겁지겁 회사에 도착해 과자나 라떼로 대충 허기를 달랬다. 우유가 소화에 방해된다는 의사쌤의 말을 듣고 아침엔 간단하게 과일을 싸서 먹기로 했다. 껍찔까고 자르는 것도 내겐 과분하다.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딸기, 방울토마토, 바나나를 나의 주 메뉴로 삼았다. 게다가 바야흐로 새벽 배송의 시대가 아닌가. 퇴근길에 주문하면 다음 날 아침에 와있기 때문에 비닐팩에 몇 개 욱여넣어 가방에 넣기만 하면 된다. 이런 것들은 소리가 나지 않아 조용한 사무실에서 먹기도 괜찮다.
급격히 떨어진 체력이 요즘의 날 매사에 의욕 없는 애로 만들었다. 그럼에도 일상 야근으로 저녁에 운동하러 갈 기력도 그 힘든 걸 꾸준히 할 지구력도 없었다. 그래서 시작한 계단 오르기. 출/퇴근길에 만나는 모든 엘리베이터나 에스컬레이터를 과감히 생략하고 모든 곳을 계단으로 다니기로 한 것. 그래 봤자 지하철 환승하러 갈 때 만나는 계단들과 7층에 있는 사무실을 계단으로 오르는 것 정도다. 그러나 이게 뭐라고. 이 작은 습관이 아침의 나에게 꽤나 만족스러운 성취감을 느끼게 해 준다. 자잘한 승리들이 모여 점진적 발전을 이룰 것 같은 기대감에 부풀게 해 준다고나 할까. 계단을 오를 때 딱딱하게 힘이 들어가는 허벅지의 근육을 조금 더 의식하면 아! 기분상으로 이미 머슬 퀸이다. 실제로 근육이 얼마나 단련되겠냐마는 정신 건강에 매우 유익한 건 확실하다.
계단을 오르며 붙은 자신감 덕일까. 더도 말고 덜도 말고 1주일에 딱 1시간 필라테스를 해보기로 했다. 하루 한 시간도 아니고, 일주일에 겨우 한 시간이라니. 너무 소박한가 싶지만 운동 그 자체가 도저히 나 같은 자가 감히 손대기 어려운 영역이므로 소소하게 도전할 거리를 찾다 발견했다. 헬스처럼 무거운 기구를 들지 않아도 되고, 강사님을 따라서 동작 하나 하나를 쉼 없이 반복하기 때문에 1시간을 해도 응축된 엑기스만 딱 뽑아먹는 만족감이 있다. 심지어 기분 좋을 정도의 땀도 난다. 안 쓰던 근육 하나 하나를 정성스럽게 가꾸는 오 이 신비한 느낌. 아무리 생각해도 최근 내가 할 일 중 가장 기특한 일이다
너무 바빠 아침에 어지른 방을 퇴근 후에 치울 새 없이 잠들고 다음 날 아침에 그러고 나갈 때면 내가 하고 있는 일에 회의감을 느낀다. 그런 방 꼬락서니를 보고 있노라면 일이 다 무슨 소용인가 싶다. 그래서 매일 저녁 꼭 방바닥을 쓸고 닦는다. 넓지도 않은 방이라 물티슈 한 장을 꺼내 슥슥 떨어진 머리카락을 모아 쓰레기통으로 슉. 떨어진 옷가지는 옷걸이에 걸어 철컥. 안 쓰는 물건은 바로 바로 처분. 공간에 있어서 ‘Essential minimalism’ 꼭 필요한 최소한의 것만을 놓는다는 철학을 추구하고 있다. 채 5분도 안 걸리는 일이지만 이 의식은 정돈된 기분으로 하루를 마무리하는 뿌듯함을 준다. 그래야 다음 날 아침 상쾌한 방에서 새로운 하루를 시작할 수 있다.
영어, 우리들의 영원한 숙제! 좀처럼 일상에서 쓸 일이 그다지 없지만, 여행을 가거나 교회에 외국인 친구들이 올 때면 짧은 영어 실력이 늘 아쉬웠다. 배움을 꾸준히 이어가고 싶은 욕심이 있지만 역시나 비싼 인강도 학원도 매번 완강이 힘들다. 이 역시 '시시하게 꾸준히' 원칙에 따라 매일 아침 버스에 내려 회사로 걸어가는 딱 10분! 저스트 텐미닛! 딱 그동안만 팟캐스트로 영어 2문장을 숙지하고 있다. 내가 꾸준히 듣고 있는 건 타일러&김영철의 진짜 미국식 영어(진미영)이다. 15초 빨리 감기 버튼도 있으니 필요한 부분만 듣기도 좋고, 일상에서 많이 쓰이는 표현이지만 딱히 영어로 어떻게 해야 될지 애매한 부분을 짚어주기 때문에 회화에 확실한 소스가 된다. 하루 10분, 2문장 정도면 공부에 흥미가 없는 이들도 도전할만하다. 아아! 그리고 증발하지 않도록 아이폰 메모장에 써서 잊을만할 때쯤 한 번씩 꺼내본다.
이런 게 꿀팁이 될 수 있을까. 어디에 내놓기엔 너무나 작고 귀여운 수준이다. 겨우 그깟 것이면 어떠하랴. 중요한 건 나에게 맞는 방법을 채택하는 거다. 작게 작게 그러나 매일 하는 것, 그리고 내 스스로가 만족하느냐가 나에겐 중요한 포인트다. 이렇게 만든 일상 근육들이 올해 말에 가면 좀 더 건강한 나를 만들겠지. 대단한 업적을 이룰 맘은 없다. 그저 하루를 좀 더 알차게 보내고 싶을 뿐이다. 잦은 번아웃으로 부터 나를 구원해줄 SOS 루틴으로 일상에 정성 한 줌 넣었을 뿐인데 꽤 관리된 일상을 사는 것 같은 만족감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