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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te Fall Aug 29. 2021

세인트 패트릭 성당으로 가는 걸리버 여행기

in Ireland

  예전에 농구를 좀 본 사람이라면 현대전자라는 팀을 기억할 것이다. 화려했던 이충희 선수가 전성기를 거치고 결국 은퇴하였듯이, 현대전자도 이리저리 사명을 변경하다가 지금은 SK하이닉스가 되었다. 반도체 주식을 좋아하는 사람들도 SK하이닉스의 전신이 현대전자였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드물다. 세상살이가 그렇다. 모든 것들은 결국 희미해지고 불명료해지고 사라지고, 그러다가 잊혀진다. 잊지 말아달라는 것이 죽기 전 인간의 소망일진대 세상은 그 소망을 들은 사람들의 기억도 언젠가는 사라지게 한다. 어쩌면 잊지 말아 달라고 말하며 명멸하는 바로 그 순간이 가장 아름다울지 모른다.     


  또 잊혀졌으리라 생각되는 이름이 있다. 바로 현대전자의 걸리버라는 휴대폰이다. 1997년 우리나라에는 본격적으로 개인휴대통신(PCS) 시대가 개막되었다. 그 전에도 휴대폰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긴 있었다. 깜장색 케이스에 벽돌크기 만한 휴대폰을 허리춤에 차고 다니는 걸로 비싼 휴대폰 비용을 내는 아까움을 상쇄할 수 있는 경제적 부유함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당시 휴대폰은 2파전이었다. 삼성전자의 애니콜과 LG정보통신의 싸이언. 그들에 도전장을 던진 이가 바로 현대전자의 걸리버였다. 캐치프레이즈도 확실했다. 걸면 걸리는 걸리버. 라임도 착착 입에 달라붙고 그들의 설명도 매혹적이었다. 단말기의 크기는 걸리버가 방문한 소인국을 연상시킬 만큼 작으면서도 성능은 거인급이라나.     


  또 재미있는 것은, KT의 옛 이동통신 자회사 KTF가 2006년 SHOW라는 브랜드를 런칭할 때, SHOW와 발음이 유사한 작가 버나드 쇼(Bernard Shaw)를 차용한 것이다. KTF는 광고 첫 화면에 ‘우물쭈물하다가 이렇게 될 줄 알았지’라는 버나드 쇼의 묘비명을 소개했다. 이전 칼럼에도 언급했듯이 이 부분은 명백한 오역이다. 원문은 이렇다. 'I knew if I stayed around long enough, something like this would happen.' 번역해보면 오래 살다보면 이와 같은 일(죽음)이 일어날 줄 나는 알았지, 정도 될 것이다. KTF가 실수했을 수도 있고 일부러 그렇게 했을 수도 있다. 광고의 핵심은 우물쭈물하지 말고 빨리 SHOW를 쓰라는 것이니 오역이 상품 판매에는 더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아무튼 현대전자의 걸리버가 『걸리버 여행기(Gulliver's Travels)』를 지은 조너선 스위프트(Jonathan Swift)를, KTF의 쇼는 버나드 쇼를 소환하였는데, 당시 이동통신 회사들이 아일랜드 더블린 태생 작가들을 기억했다는 점이 흥미롭다.     

[그림출처: YES24]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있어 『걸리버 여행기』는 우리의 흥부전이나 콩쥐팥쥐 이야기만큼이나 대중적인 책이었던 것 같다. 어릴 때 이 책 한 번 안 읽어본 학생들이 몇이나 될까. 아직도 기억난다. 소인국을 방문한 걸리버의 거대한 몸뚱아리가 땅에 뉘여졌을 때 개미만큼 작은 소인들이 개미떼처럼 몰려들어 걸리버의 몸을 밧줄로 꽁꽁 묶어 땅에 고정시킨 장면의 동화책을. 그러나 놀랍게도 『걸리버 여행기』는 단순히 아동용 동화가 아니다. 물론 동화책으로 둔갑할 구미호같은 매력이 이 책 곳곳에 넘쳐나는 게 사실이지만 조너선 스위프트가 의도한 바는 확실히 아니었다. 동화적 세계가 넘쳐나지만 비동화적인 세계가 그려진 책. 『걸리버 여행기』는 붕어빵처럼 붕어가 없는 빵이다. 붕어 같은 동화 속 이야기가 아니라 대신 적나라한 팥이 들어있는 그런 책이다.     


  『걸리버 여행기』의 작가 조너선 스위프트를 만나고 싶으면 아일랜드 더블린에 있는 세인트 패트릭 성당(St. Patrick's Cathedral)에 가보는 게 좋다. 1191년에 설립된 이 성당은 세인트 패트릭이 직접 사용했다고 전해지는 고대 우물터에 지어졌다고 한다. 우물터라니, 그거 참 신기하다. 경주에 가면 나정이라는 우물터 자리가 있는데 그곳은 박혁거세가 태어난 곳이라고 전해지니 우물터가 주는 신성함은 참 남다르다. 세인트 패트릭은 아일랜드에서 매우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 대략 5세기경에 그는 아일랜드에 기독교를 전파한 인물로 그가 영면한 3월 17일은 세인트 패트릭의 날(Saint Patrick's Day)로 지정되어 지금도 아일랜드의 대표 축제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아일랜드의 들판을 닮은 초록빛 의상을 입고 거리를 행진하는 장관을 보고 싶다면 3월 아일랜드 여행도 괜찮을 듯싶다. 초록색이 눈을 편하게 해주듯이 아이리쉬들과 이야기하다보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세인트 패트릭 성당]

  짧으나마 조너선 스위프트의 생애를 살펴보자. 그는 1667년 더블린에서 태어났다. 명문 트리니티 칼리지를 졸업했고 더블린의 혼란을 피해 잉글랜드로 이주해 당시 유명한 정치가 윌리엄 템플 경의 비서로 활동하며 정계로 입문하였다. 그 후 토리당을 대표하는 평론가로 활동하다가 토리당이 정권을 잃자 아일랜드로 되돌아가 세인트 패트릭 성당에서 사제직을 역임했다. 그곳에서 『걸리버 여행기』를 썼고 아일랜드 애국계몽운동에도 앞장섰다. 1745년에 세인트 패트릭 성당에 묻혔다.     

[세인트 패트릭 성당 내부 모습]

  그렇다. 그의 무덤은 세인트 패트릭 성당에 있다. 아무나 성당에 묻힐 수 있는 건 아니다. 그는 오랫동안 그곳에서 참사회장 자리를 맡았던 특별한 사제였던 것이다. 벽에 걸린 역대사제명단 현판을 보면 1713. JONATHAN SWIFT.라고 당당히 새겨져있다. 그 다음이 1745. CABRIEL JAMES MATURIN.인 걸 보면 죽을 때까지 사제직으로 복무했나보다. 그래서 그는 사후에도 특별한 대우를 받는다. 성당 내부를 살펴보면 유독 펜스가 쳐진 부분이 있다. 바닥에 SWIFT라는 이름이 보인다. 그의 무덤이다. 바로 옆에 ESTHER JOHNSON(STELLA)라는 이름도 있다. 그곳에 갔었던 그 때는 잘 몰랐다. 그녀가 얼마나 중요한 존재였는지. 그녀가 왜 스위프트 옆에 나란히 있는지. 걸리버를 만나고 알았다. 스텔라라는 애칭을 가진 그 여자는 스위프트의 평생 친구 혹은 연인으로 알려져 왔다는 것을. 그들이 사랑하는 연인이었는지 소울메이트였는지 다양한 설이 있는데 그게 뭐 중요할까. 분명한 것은 그저 사람과 사람이라는 관점에서만 봐도 그 둘은 너무나 각별했다. 그녀는 1728년 1월 28일, 46세의 나이로 원인모를 질병으로 죽었다. 남은 생애동안 그녀를 그리워하며 아파한 스위프트의 고독이 느껴진다.     

[조너선 스위프트와 스텔라의 무덤]

  성당 벽면에는 스위프트가 직접 쓴 라틴어 비문이 새겨져 있다. 그를 일생동안 괴롭힌 분노는 무엇이었을까. 좌절된 정치가로서? 잉글랜드의 압제를 참을 수밖에 없었던 한 명의 아이뤼시로서?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문학가로서? 그러면서도 그는 자유롭게 살라 했다. 풀이하면 이런 내용이라고 한다.   

  

  “신학박사이자 이 성당의 참사회장인 조너선 스위프트의 시신이 이곳에 묻혀 있다. 이제는 맹렬한 분노가 더 이상 그의 마음을 괴롭힐 수 없으리라. 나그네여, 떠나시오. 그리고 가능하다면, 전력을 다해 지고의 자유를 얻으려 한 이 사람을 본받으시오.”     

[조너선 스위프트의 비문]

  다시 『걸리버 여행기』로 되돌아가보자. 이 책은 말 그대로 걸리버라는 사람의 여행에 대한 기록이다. 책은 총 4부로 나누어져 있다. 1부는 작은 사람들의 나라 릴리퍼트 기행, 2부는 큰 사람들의 나라 브롭딩낵 기행, 3부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 <천공의 성 라퓨타>의 배경이 되기도 한, 하늘을 나는 섬의 나라 라퓨타 등의 나라에 대한 여행, 마지막 4부는 말들의 나라 휴이넘 기행이다. 우리가 어릴 적 읽었던 걸리버 여행기는 대개 1, 2부를 이리저리 잘라내고 각색한 것이었다. 3부의 라퓨타 정도는 편집할 만 했지만 귀차니즘이 도지지 않더라도 3부에 나오는 발니바르비, 럭낵, 글럽덥드립 등의 나라를 동화라는 장르에서 다루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문제는 4부다. 이 부분은 늘 배제되었을 것이다.     


  4부는 휴이넘과 야후, 그리고 인간에 대한 이야기이다. 휴이넘은 말을 가리키며 그것의 어원은 자연의 완전한 창조물이라는 의미를 가진다고 책에 나온다. 그에 비해 야후는 인간의 모습을 닮은 추악한 동물이다. 야후는 교활하고 악독한 성질을 지니고 있고 학습능력이 없어 길들이기도 힘들다. 야후는 저희들끼리 서로를 미워하고 싸우며 반짝반짝 빛이 나는 돌에 대한 탐욕이 크며 역겨운 식욕이 있다. 정신을 취하게 하는 뿌리를 좋아하고 더러움과 탐욕으로 인해 병에 잘 걸리며 불결하고 성적으로도 문란하다. 휴이넘은 걸리버와 같은 인간이 이런 야후를 닮았다고 생각하고 걸리버는 자신은 야후와는 다르다고 말을 하는 것이다. 인간성 회복에의 작은 가능성일까.      


  사실 야후가 하는 짓은 인간을 많이 닮았다. 저자는 야후를 통해 추악한 인간상을 통렬하게 드러내 보이는 것이다. 그러면서 인간이 나아갈 길은 휴이넘의 삶임을 제시한다. 우아한 말의 덕성과 훌륭한 이성, 자녀교육, 우정과 사랑 등등. 그들은 단순히 애마부인이 아니다. 휴이넘은 애마부인을 넘어서 인간이 닮아가야 할 위대한 종족인 것이다. 그러고 보면 1995년 창업된 포털사이트 야후가 원래 이름을 야후가 아니라 휴이넘이라고 했다면 그렇게 허망하게 사라지지 않고 지금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물론 재미로 해 본 소리다.     


  그래서 4부가 출간 당시에 잘려진 것은 자명해 보인다. 인간의 본성을 구제하기 힘든 사악함으로 묘사하고 인간의 본성이 깊이 손상되어 버렸다는 인간혐오가 신랄하게 드러나 있는 부분을 당시 출판업자로서는 책으로 싣기 힘들었을 것이다. 출판업자도 하나의 인간에 불과하며 그 역시도 자신의 종족 사피엔스를 부정해야 하는 자기종족 비판의식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러고 보면 지금 무삭제 완역이라는 이름으로 위대한 4부가 당당히 번역되는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을 생각하면 인간은 타락해져온 본성에 조금씩 비누칠을 하고 있는 것인지 모른다. 스위프트가 인간은 ‘이성적인 동물’이 아니라 ‘이성적일 수 있는 동물’이라고 새로운 정의를 내렸듯이 우리는 이성적일 수 있는 동물이라는 사실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오만한 삶으로부터 조금씩 내려와야 할 것이다.     


  끝으로 내가 생각하는 『걸리버 여행기』의 진짜 위대함은 사실 다른 데 있다는 말을 하고 싶다. 조너선 스위프트가 살았던 시대는 유럽의 대외적 식민지 정책이 한창일 때였다. 영국은 1607년에 미국 동부 버지니아에 제임스타운이라는 최초의 항구적인 식민지를 건설하였고, 1620년에는 Pilgrim Fathers로 상징되는 청교도들이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메사추세츠 플리머스로 이주했다. 이 방식을 따른다면 저자는 걸리버라는 사람을 통해 소인국이나 거인국 혹은 휴이넘의 나라에 식민지를 건설하고 그들의 토지를 압수하고 그들을 몰살하거나 노예로 삼는 스토리로 소설을 구성했어야 할 것이다. 그렇게 했다면 그의 책은 출판에 전혀 제한을 받지 않고 당당한 베스트셀러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이러니의 작가 스위프트는 평범한 소설은 거부했다. 외려 그는 오만한 정복자의 시대에 올바른 인간성을 되찾으려는 노력을 보였다. 그가 아이뤼시여서 그랬을까. 만일 잉글뤼시였다면 그는 달랐을까. 어찌 되었든 이 책이 더 많은 대중에게 읽혀졌으면 좋겠다. 그저 어릴 때 읽었던 걸리버 여행기가 전부라고 생각하며 살아간다한들 크게 달라질 건 없겠지만, 가끔은 작은 찝찝함 때문에 우리는 샤워를 하거나 치과에도 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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