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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te Fall Jan 23. 2022

제 2권. 아가멤논의 꿈 & 함선목록

- 호메로스(Homeros)의 『일리아스(ILIAS)』 -

  신 중의 신 제우스는 잠을 설친다. 아킬레우스의 어머니 테티스로부터 부탁을 받은 탓이다. 어떻게 하면 아카이오이족이 위험에 처해지고 아킬레우스의 명예를 회복해줄 수 있을까. 기본적으로 제우스는 트로이아 전쟁에서 중립을 지켜야 하는 입장이다. 그도 그럴 것이 제우스는 다른 신들을 다 합한 것보다도 더 막강한 힘을 소유하고 있기 때문에, 그가 한 쪽 편을 들기 시작하면 전쟁의 결과는 뻔하니 말이다. 그럼에도 심정적으로는 트로이아 편을 드는 모습을 자주 보인다. 약자에게 마음이 기우는 인간의 심성처럼.     


  제우스는 아가멤논에게 거짓꿈을 보내기로 결정한다. 꿈은 아가멤논이 가장 존중하는 네스토르의 모습으로 분장한다.     


“자, 어서 내 말을 들으시오! 나는 멀리 떨어져 계시면서도
그대를 크게 염려하고 동정하시는 제우스의 사자요. 그분께서
장발의 아카이오이족을 지체 없이 무장하라는 분부를 내리셨소.
이제야말로 그대가 트로이아인들의 길 넓은 도시를 빼앗을 때가
되었음이오. 그 까닭은 올륌포스의 궁전에 사는 여러 불사신들이
헤라의 간청에 모두 마음을 바꾸어 마침내 의견 일치를 보았고
그래서 트로이아인들의 머리 위에 제우스의 뜻에 따라 재앙이
걸려 있기 때문이오. 그러니 그대는 이를 꼭 명심해두었다가
꿀처럼 달콤한 잠에서 깨어난 뒤에도 잊지 않도록 하시오.“     
[그림출처: YES24]

  아가멤논은 가슴이 두근거렸다. 이제 드디어 트로이아를 정복할 수 있는 건가. 그는 원로회의를 소집한다. 그리고 자기가 꾼 꿈에 대해 말한다. 재미있는 것은 꿈을 꿀 때와 꿈을 전할 때의 내용이 너무나 흡사하다는 점이다. 마치 복붙(복사해서 붙이기)을 한 것 같다. 패러프레이징(paraphrasing; 바꾸어 쓰기) 조차도 귀찮았던 걸까. 똑같은 내용이 다시 반복되니 독자로서 기억하기에는 좋다.     


  꿈을 전쟁의 승리로 해석하고 아카이오이족을 무장하도록 결정했으면서도, 아가멤논은 군사들을 소집하고선 꿈과 정반대되는 연설을 한다. 전사들을 시험하고 마음을 떠보기 위해서였다. 연기력 하나 끝내준다.     


“친애하는 다나오스 백성들이여. 아레스의 시종들이여!
크로노스의 아드님 제우스께서 나를 큰 미망에 빠뜨리셨소이다.
무정하시도다! 그분께서는 전에 튼튼한 성벽의 일리오스를 함락하고 나서
귀향하게 해주시겠다고 나에게 약속하고 머리까지 끄덕여
다짐하시더니 이제 와서 사악한 속임수를 생각해내시어 나더러
수많은 백성들을 잃은 채 아무런 명예도 없이 아르고스로 돌아가라고
명령하십니다. (중략)
어느 덧 위대한 제우스의 아홉 해가 흘러
선재는 썩고 밧줄은 풀어지고 말았소이다.
아내들과 어린 자식들은 집 안에 앉아 우리를
학수고대하고 있으련만, 우리는 아직도
원정의 목적을 전혀 달성하지 못했소이다.
그러니 자, 모두들 내가 말하는 대로 합시다!
자, 우리 배를 타고 사랑하는 고향 땅으로 달아납시다!
길이 넓은 트로이아를 우리는 결코 함락하지 못할 것이오.”     


  아가멤논의 연설은 9년여 동안 집에 가지 못한 군사들의 마음을 뒤흔들었다. 회의장을 빠져나간 그들은 부리나케 함선들로 달려갔다. 그들은 배를 바다로 끌어내리려 했고 신나고 들뜬 마음으로 귀향을 서두르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고 보면 전쟁이라는 것은 얼마나 어리석은 명분으로 시작하는가. 여인 한 명을 되찾고자 발발한 전쟁이라면 그것은 그저 지배자들의 그릇된 판단이나 탐욕에서 기인한 것 밖에 안 된다. 메넬라오스 외에는, 기껏 양보한들 누가 헬레네의 남편이 되든 나머지 구혼자들 모두가 남편으로서의 권리를 지켜주자는 ‘구혼자들의 맹세’와 관계있는 사람들 외에는, 대다수 백성들에게는 아무 상관이 없는 여자인 것이다. 그러하니 사랑하는 가족들이 기다리는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것은 당연하다.     


  아가멤논은 군사들의 (또는 백성들의) 속마음을 알았다. 그리고 이제는 그들의 마음을 돌이킬 수 있도록 설득해야 한다고 생각으리라. 그가 직접 나설 필요는 없다. 그가 나서면 모양새가 많이 빠진다. 귀향을 독려한 것은 사실 백성들의 마음을 읽어내기 위한 뻥이었다, 라고 밝힐 수는 없지 아니한가. 대타가 필요하다. 대국민 설득 담당자는 아테네 여신의 기와 힘을 받은 지략가 오뒷세우스였다. 그는 아가멤논의 제갈 량으로서의 역할을 다한다. 그는 각 지역에서 온 왕이나 뛰어난 전사들에게 다가가 설득하기 시작했다. 당근보다는 주로 채찍이었다.     


“돌았소? 겁쟁이처럼 겁을 먹는다는 것은 그대에게 어울리지 않소.
그러니 그대 자신도 앉아 있고, 다른 백성들도 앉히도록 하시오
그대는 아직 아트레우스의 아들의 의도를 잘 모르고 있소.
그는 지금 아카이오이족의 아들들을 시험하고 있을 뿐, 곧 그들을
응징할 것이오. 우리 모두 그가 원로회의에서 한 말을 듣지 않았소?
그가 성이 나서 아카이오이족의 아들들을 괴롭히지 않도록 조심하시오.
제우스께서 양육하신 왕들의 마음은 거만한 법이오. 그들의 명예는
제우스께서 주신 것이며 조언자 제우스께서 그들을 사랑하시기 때문이오.”     


  서슬 퍼런 오뒷세우스의 위협은 성공적이었다. 군중들은 귀향을 포기하고 함선으로부터 물러나 회의장으로 되돌아가 자리를 지켰다. 모두가 그랬던 건 아니다. 어디나 소수의견 한 두명 쯤 있는 법이다. 이 때 수다쟁이 테르시테스가 등장한다. 그는 신분이 낮은 평민 병사로서 지독한 독설가였다. 그의 등장이 신선한 것은 대개 영웅들로 가득 찬 『일리아스』에서 낮은 계급의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지배이데올로기에 강하게 도전하는 그의 태도 때문이다. 비영웅적이고 존재감이 없는 평민 중에서 이정도로 임팩트가 강한 사람은 테르시테스가 유일했다. 그가 어떻게 생겼는지 살펴보자.     


그는 일리오스에서 온 사람들 중 가장 못생긴 자로
안짱다리에 한 쪽 발을 절었고, 두 어깨는 굽어 가슴 쪽으로
오그라져 있었다. 그리고 어깨 위에는 원뿔모양의 머리가
얹혀있었고, 거기에 가는 머리털이 드문드문 나 있었다.     


  늘 이런 식이다. 영웅들은 가문이 훌륭하며 잘 생겼고 지혜롭고 부유하고 전투능력도 우수하고 수사법을 아는데 반해, 테르시테스 같은 평민들은 조상의 이름도 언급되지 않는 가문에 별로 훌륭해 보이지 않고 못 생겼고 싸움에도 능하지 않으며 그저 수다스럽기만 하고 귀족들을 비난하기만 한다. 사실 불공평하다. 어떤 부모로부터 태어났느냐의 문제는 이후의 삶의 많은 부분을 결정하는데 신분 사회에서는 거의 100%가 아니었을까. 부모를 선택하지 못하기에 고귀한 가문에서 태어나는 것은 로또보다 더 한 운명의 추첨이다. 그러다보니 로또에 당첨되지 못한 자들 대부분은 생김새부터 평가절하 되어 아무리 건설적인 발언을 하더라도 무시되기 일쑤다. 큰 소리로 아가멤논을 비난하는 그의 말을 들어보자.     


“아트레우스의 아들이여! 무엇이 모자라서 불만이시오?
그대의 막사들은 청동으로 가득 차 있고, 그대의 막사들에는
우리 아카이오이족이 도시를 함락할 적마다 고르고 골라
맨 먼저 그대에게 바친 여인들이 많지 않소!
그대는 혹시 말을 길들이는 트로이아인들 중에 누군가
나나 다른 아카이오이족이 사로잡아 온 아들의 몸값으로
일리오스에서 황금을 가져오기를 바라는 것이오?
아니면 그대 혼자서 붙들어놓고 사랑을 즐길 젊은 여인을 원하는
것이오? 하나 아카이오이족의 아들들을 불행으로 인도하는 것은
그들의 지휘자 된 자에겐 어울리지 않는 일이오. 이 겁쟁이들이여,
못나고 수치스런 자들이여! 그대들은 아카이오이족 계집들이지
이미 아카이오이족 사나이들이 아니오. 자, 우리도 그에게 도움이 되는지
안 되는지 알도록, 저 양반은 이곳 트로이아 땅에서 명예의 선물들이나
실컷 탐식하도록 내버려두고, 우리는 함선들을 타고 고향으로 떠납시다!
그는 방금 자기보다 훨씬 나은 전사인 아킬레우스를 모욕하여
그의 명예의 선물을 몸소 빼앗아 가졌소. 그러나 아킬레우스는
마음속으로 노여워하기는커녕 태연했소. 그렇지 않았던들
아트레우스의 아들이여! 그대의 횡보도 이번이 마지막이 되었을 것이오.”     


  어떤가. 속이 시원하지 않은가. 테르시테스는 아무도 쉬이 하지 못하는 말을 용기 있게 했다. 이것을 그저 의미 없는 독설이라고 치부할 수 있겠는가. 그는 아가멤논이 지휘자로서 부적격임을 주장했고 분배의 부당함을 비판했으며 불평등에도 참고 감내하는 동료병사들의 허약함을 나무랐고 아킬레우스를 모욕한 사실도 언급했다. 영웅들의 언어와 행적으로만 넘쳐나는 서사시에서 그에 대한 언급은 실로 인상적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에게 돌아오는 건 오뒷세우스의 꾸짖음과 매질이었다. 오뒷세우스 입장에서 보면 선동자는 빨리 제압하고 볼 일이었다. 아파서 눈물을 흘리는 그를 보면서 동료들은 마음이 괴로우면서도 유쾌하게 웃었다. 생김새로 인해 우는 모습이 우스웠을지 모른다. 그러면서도 동료들은 불편함을 느꼈다. 옳은 말처럼 들리기에 그가 당하는 매질은 부당했으며 함께 나서지 못해 미안했는지도.     


  주변은 정리되었다. 이제 모두 한 마음으로 조금만 더 고생하고 전쟁을 마무리하자는 쪽으로 심지를 모았다. 오뒷세우스의 열변과 칼카스의 예언, 네스토르의 조언, 아가멤논의 사기 진작이 동원되었고 끝으로 제우스에게 제사를 지내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제사를 지내는 모습을 살펴보자. 꽤 흥미롭다. 그 옛날부터 꼬치는 이렇게 만들어졌던가.     


그들은 기도를 올리고 보리를 뿌리고 나서 먼저
제물의 머리를 뒤로 젖히고는 제물을 잡아 껍질을 벗기고
넓적다리들에서 살코기를 발라낸 다음 넓적다리뼈들을
두 겹의 기름 조각으로 싸고 그 위에 다시 날고기를 얹었다.
이것들을 그들은 잎 없는 장작들 위에 올려 태워드렸고,
내장은 꼬챙이에 꿰어 헤파이스토스의 불 위에 얹었다.
이윽고 넓적다리뼈들이 다 타자 내장을 맛보고 나서
나머지는 잘게 썰어 꼬챙이에 꿰어서는
정성 들여 구운 뒤 모두 불에서 내렸다.
마침내 일이 끝나자 그들은 음식을 차려 먹었는데,
공평한 식사로 마음에 부족한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2권 후반부는 군사전력에 대한 세세한 소개로 이루어져 있다. 익숙하지 않은 지명과 인물들이 등장해 가독성이 많이 떨어지지만 한번쯤은 읽어볼 필요가 있다. 그리스 진영에서는 누가 어떤 종족을 이끌고 어디서 왔고 함선은 몇 척이었는지를 상세하게 다루고 있다. 그리스 진영의 함선을 다 합쳐보면 1,186척이다. 주석에 따르면, 한 척에 평균 85명 탔다고 가정하고, 약 10만명의 병사들이 원정에 나섰다고 볼 수 있다고 한다. 여기서 모든 장수들과 종족과 지역을 언급할 필요는 없겠다. 주요인물은 다음과 같다. 아킬레우스, 아가멤논, 메넬라오스, 큰 아이아스, 작은 아이아스, 디오메데스, 오뒷세우스, 네스토르, 이도메네우스, 파트로클로스, 안틸로코스, 테우크로스 등이다.     


  이에 비해 트로이아 진영에 대한 소개는 지면할당량이 적은 것에서 볼 수 있듯이 아무래도 덜 자세하다. 누가 어떤 종족을 이끌고 어디서 왔는지는 언급되어 있지만 구체적인 병력은 나와 있지 않다. 주요한 트로이안들은 헥토르, 아이네이아스, 판다로스, 사르페돈, 글라우코스 등이다, 아무래도 그리스에 비해 무게감이 많이 떨어진다. 여기서 이미 전쟁의 향방이 예상되는 것이다. 축구를 예로 든다면 레바뮌(프리메라리그의 레알 마드리드, 바르셀로나 그리고 분데스리가의 바이에른 뮌헨) 중 어느 한 팀 VS 한 두 명의 월드클래스 선수가 있는 팀과의 일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랬다. 거칠게 말해 트로이아는 헥토르 원맨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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