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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대표는 최대리 Jul 02. 2020

Long live the Newspaper!

신문사를 퇴사하며 바라는 두 가지 제언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2014년부터 지금까지 약 6년, 몸담았던 신문사를 드디어 떠난다. 드디어 나는 무소속이다. 떠남에 있어 후회도 미련도 남지 않지만 '이랬으면 어땠을까'하는 약간의 아쉬운 마음, 그 마음으로 쓰는 글이다. 갈 땐 가더라도, 킹리적 제언 정돈 괜찮잖아?


1. 개별 신문사의 리브랜딩


(신문에 대해) 그들이 가장 먼저 떠올린 이미지는 ‘할아버지’였다. “어렸을 때 할아버지 집 안방 한 켠에 자리 잡고 있던 종이신문들을 아직도 기억한다.” 1/3이 할아버지를 언급했다. 문제는 그 할아버지의 오늘이다. - 한겨레 기사 중
그들이 말하는 '할아버지'가 이런 할아버지여야 하는데..


 브랜드를 소비하는 시대에서 가장 브랜딩에 신경 쓰지 않는 업계, 바로 신문업계가 아닐까. 좋은 의미의 고인물이라기엔 너무도 고여버린, 아직도 옛 것 그대로인 신문사.


 사실 언론사에 있어 브랜딩, 그리고 리브랜딩이라는 문제는 아닌 밤 중에 홍두깨 같은 이야기일 수도 있다. 케이블 방송이나 2011년 신규 출범한 종편 외의 굳이 역할이 명확해져 버린 지상파, 신문사들이 왜 이미지 변화에까지 신경을 써야 하는지 말이다. 마치 오른쪽엔 조선, 중앙, 동아, 왼쪽엔 한겨레, 경향, 경제지는 매경, 한경. 속보는 연합, 보도는 YTN처럼 말이다. 심지어 자사 브랜드 제고에 이렇게 생각하시는 분도 있다.


때 되면 폰트 바꾸고 개발도 했다. 심지어 비싼 돈 들여서 기업 CI도 변경했는데
 이 정도면 노력한 거 아닌가


 언론사, 특히 신문사에서는 자사의 작은 변화를, 마치 엄청난 혁신 인양 보도한다. 우리가 이렇게 변했다고 [알립니다] 등 사고와 기사로 내보낸다. 하지만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는다. 아무런 영향도, 아무런 관심도 받지 못한다. 왜? 그 정도의 노력과 그 정도의 자금 투입으로는 리브랜딩에 아무런 효과를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세상 모든 비즈니스 기업들은 언론사가 기울이는 노력의 수십, 수백 배의 노력과 자금을 투입해 생존 경쟁을 하고 있다. 하지만 신문사의 생존 방식은 기생(寄生)이다. 산업부 기자 출신의 삥뜯기 광고와 후원 등 비정상적인 B2B 비즈니스, 공기업과 사기업에 수십만 부수를 후원 명목으로 떠넘기는 사례만 보더라도 이미 신문사는 정상적인 비즈니스로 돌아가는 구조가 아니다. 하지만 언제까지 '신문'이라는 상품으로만, 이렇게 비정상적인 거래를 지속할 수는 없다. 신문 그 이외의 어떠한 새로운 상품으로 다시 고객들의 신뢰와 사랑을 받기 위해서, 기업으로써 다시 정상적인 B2C 모델로 돌아가려면 기업 이미지는 반드시 변화시켜야 한다. 그래야 새로운 잠재 고객을 확보할 가능성이 생긴다. 신문사에 있어 리브랜딩이 더 급박한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밀레니얼(Millennial)과 젠지(Gen Z)의 이미지 속에 '시위하는 할아버지'로 계속해서 남는다면 앞으로의 신문사 생존은 불투명하다.

우리는 향후 잠재고객에게 어떤 이미지로 다가갈 것인가. 소위 말하는 '틀딱'으로 남을 것인가, '간지할배'로 남을 것인지 선택해야 한다.
변하지 않으면 잘 가라고 할 수 밖에 없는 현실, 곧 다가온다.


 신문사를 사람에 비유해보자. 사실상 대다수의 신문사는 노년이다. 노년에는 아무리 좋은 차를 하나 바꿨다고, 좋은 옷을 하나 샀다고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는다. 기존에 만났던 사람들이야 "이번에 차 바꾸셨네요. 축하드립니다" 할 뿐 기존의 사람들의 인식이나 다른 세대가 바라보는 내 이미지에 변화를 줄 수 없다. 그렇다면 이 노인은 어디로 가야 할까. 지금까지 살아왔던 방식과는 완전히 다른 인생, 제2의 인생을 시작하기 위해서는 우선 내모든 것을 변화시켜야 한다. 기존에 다녔던 공간, 기존에 만났던 사람들, 기존에 입었던 옷들을 과감히 던져야 한다. 그간 해왔던 업무 프로세스, 그간 만났던 카운터 파트너, 취재원까지 모조리 바뀌어야 한다. 동시다발적으로 변화시켜야 한다. CMS 하나 바꾼다고 되는 일이 아니다. 그리고 쌓여진 토대 위에 하나씩 다시 새로이 쌓아가야 한다. 미쳤다는 소리를 듣는 한이 있더라도 1년, 2년 쌓아 가다 보면, 어느 순간 사람들의 인식은 조금씩 달라져있을 것이다.


 한번 제대로 변화시키면 그 이후는 수월하다. 정말 감각 있는 스타일리스트가 조금씩 손만 대주면 된다. 마치 평소 스타일링에 신경을 많이 썼던 사람이라면, 기존에 갖춰진 이미지에 액세서리나, 헤어 스타일링 변화만 줘도 괜찮은 것처럼 말이다. 각 기업에서 브랜드 전략실이 있는 이유가 그런 게 아니겠는가.


 주 역할은 보도인데 왜 자사의 브랜딩에 굳이 신경 쓸 필요 없다고 생각한다면 적어도 대한민국 대표 브랜드 대상, 국가브랜드 대상, 국가대표 브랜드 대상 등 남의 회사 브랜드 대상 평가는 이제 멈추는 것이 나을 것 같다. 국가브랜드를 발굴하고 발전시켜 글로벌 시장에서 브랜드 경쟁을 강화하겠다는 취지라지만, 실상 광고(AD)국과 대행사에서 대부분 담당하는, 신문사의 신뢰도로 장사하는 수익 사업. 지자체, 공공기관, 민간 기업, 정·재계 인사는 울며겨자먹기로 구매하기도 하며, 일부 사짜 기업들은 필요에 따라 이를 구매해 신뢰도로 광고를 돌리는(특히 주식판), 신뢰도를 사서 신뢰도를 파는 장사. 리브랜딩에 앞서 이런 부끄러운 장사부터 멈추는 것이 리브랜딩의 시작이지 않을까.




2. 경영 전략의 절실함


 아직도 느끼고 있다. 신문사 조직에는 너무도 똑똑한 선후배들이 많다. 제4의 권력인 언론, 그중 펜의 자부심을 가진 신문사에는 극소수의 고학력 정예 인력만이 입사한다. 그래서일까, 사회를 꿰뚫어보는 오피니언 리더로서 대단한 분들이 너무 많고 배울 점 역시 많다. 하지만 그것은 '저널리즘'에 제한된다.


그 친구는 입사 전에 공부도 잘하고 똑똑했겠지. 하지만 '똑똑한 것'과 '똘똘한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야. 혼자 공부 잘해서, 좋은 대학 가서 똑똑한 게 조직에서 무조건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


 한 동기가 어떤 후배를 이야기하며 이런 비유를 했다. 대부분의 언론사 조직은 '똑똑한 사람'이 많다. 위로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대한민국의 주요 언론사에 재직하시는 선생님들께서는 너무도 똑똑하시다. 똑똑하면 모든 것을 다 잘 할 것이라는 착각. 그런 사람들이 모여 너도 나도 이 항공모함의 키를 이리저리 만져보고 엣헴엣헴하며 수염을 만지작댄다. 모두가 전문가이다. 모두가 잘났기에, 특히 내가 더 잘났기에 누군가의 방향성에 쉽게 태클을 걸고 무시해버린다. 人多就亂 (인다취란),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올라간다는 말이 딱 그 모양새다.


기자는 제너럴리스트이다. 스페셜리스트가 절대 아니다.
 하지만 경영 전략에는 스페셜리스트가 분명히 필요하다.


 30년 전과 동일한 비즈니스 구조에서 언론사의 경영적 혁신은 일어나기 힘들다. 아무리 이름을 '미래전략', '전략기획', '경영기획', '마케팅 전략' 등 '전략' 혹은 '기획'을 넣는다 한들, 해당 분야의 전문성과 센스 있는 인력 없이는 제대로 된 비즈니스를 만들어낼 수 없다. 하지만 이러한 주요 요직에는 결국 '기자'가 자리 잡는다. 기자가 만들어내는 기사의 총합이 그 신문사의 색깔을 만들어가지만, 비즈니스 분야에서 기사 제작 스킬이 얼마나 언론사 혁신에 도움이 될까. 수많은 비즈니스의 시도와 실패를 단 한 두 줄로 평가하시는 기자분들께서 신문사의 제대로 된 비즈니스를 만들어낸 것이 있는가.


 신문사가 황금기를 누렸던 시절, 취재 기자들의 사회에 경종을 울리는 기사를, 편집기자들이 잘 재단해 신문에 얹히기만 하면 광고가 완판 되고 판매 부수가 늘어나던 시대가 지난 지 20여 년이다. 신문사는 가지지 않아야 할 너무 강한 힘과 돈을 가졌었다. 그 안일함이 비즈니스 전략에 대한 평가절하로 이어졌고 그에 따른 다양한 인재 이탈 등이 이러한 신문사의 위기를 낳지 않았나.


신문사는 소수 정예여서 그런지 의외로 비즈니스 실패에는 관대하다. 다른 업계였으면 목이 달아났을 것이다.


저널리즘과 비즈니스를 함께 만들어가려는 시도가 신문사 경영 혁신을 방해한다. 저널리즘의 가치는 저널리즘에서 찾고, 비즈니스의 가치는 비즈니스에서 찾을 수 있는 철저한 분리 전략이 필요하다.
저널리즘과 비즈니스는 철저히 분리되어야 한다. 떨어진 신뢰도와 브랜드 가치를 회복하기 위해서라도.


 어떤 조직이나 여건에 맞춰 일을 할 수밖에 없다. 개인과 조직의 상황에 늘 맞춰 사는 게 우리 인생 인생이 아닌가. 하지만 '저널리즘 퍼스트'를 외치는 신문사의 지나친 경영적 측면의 무사안일주의(無事安逸主義)는 저연차 기자, 경영직의 위기의식과 니힐리즘을 야기시켰다. 성장은커녕, '비정상의 정상화'만 돼도 감지덕지인 현실. 그것이 신문사의 현재가 아닐까.


 신문을 보지 않는다고, 기사 콘텐츠의 소비는 줄지 않는다. 이 와중에도 새로운 언론사와 대안언론은 생겨난다. 쉬운 일은 아니다. 레거시의 신뢰도를 유지하면서, 환골탈태(換骨奪胎)하는 일은. 하지만 언제까지 '그래도 여건에 맞춰서 일을 해야지'라는 말을 하기에는 이제는 절박함을 느껴야 할 때. 그 마지막 배수의 진이 임진왜란 신립 장군의 '탄금대 전투'의 새드 앤딩이 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덧) 6년을 가족같이 다닌 회사를 훌훌 털어버리고 나왔다. 너무 좋은 사람들과 함께한 6년이었다. '조선'이라는 이름의 양날의 검은 회사 안팎으로 앞으로도 많은 평가의 대상이 되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감사하고 또 감사한다. 그 누구를 만나더라도 나는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조선'은 좋은 회사였다고. 그리고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 '밀라논나' 선생님의 말을 빌린다.


몫을 나누지 않을 사람들의 말은 신경 쓰지 마세요.
 책임져 주지 않을 사람들이 하는 말에 대해서는 귀 막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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