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이 피었다. 회사 앞으로 동물원 길까지 벚꽃이 만발이다. 개나리도 피었다. 코로나 때문에 엄마를 따라 예니가 출근했다. 종일 패드로 유튜브만 보던 예니 손을 잡고 산책을 나섰다. 벚꽃을 와장창 느끼고, 개나리를 와장창 느꼈다. 왜 이렇게 꽃은 예쁠까. 뒤숭숭한 시국 중에도 꽃이 펴서 다행이다. 길을 따라 앞동산의 자작자작 마른 나뭇잎을 밟고 도톨 도토리도 몇 개 주웠다. 저쪽 벚꽃 길을 따라 사무실로 되돌아가기로 했다. 가는 길에 목련도 만났다. 목련은 진작 폈다가 일찍 지려나보다. 그래도 꽃다운 기품이 남아있다. 그렇게 벚꽃도, 개나리도, 목련도 와장창 피었다. 예니가 말했다.
“이모, 벚꽃이 이모처럼 예뻐~” 황홀.
“어으~ 예니야~”
가던 길을 멈췄다. 예니가 웅크리고 앉았다.
“여기, 풀도 피었어”
“어?”
처음 들어봤다. 풀이 피었다. 벚꽃, 개나리, 목련 정도는 되어줘야 피는 것 아닌가. 꽃은 피는 거고 풀은 뽑는 거 아닌가. 피는 것에도 자격을 운운하는 나는 지긋한 어른이다. 꽃꽃. 색색으로 향기롭다. 봄 한철 예쁘고 가히 예쁘다. 풀은 그냥. 풀풀. 근데 풀도 피었단다. 사시사철 늘 피어있었다. 어느 시인의 시처럼 자세히 보니 얘도 예쁘다. 초록초록, 여릿여릿한 것이 얘도 귀하다.
“예니야, 이모 풀처럼 예쁘다고 말해줘”
“이모~ 풀처럼 예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