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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 May 04. 2020

4월의 양심

사는 것이 글감을 모으는 일이라 생각하며 살아보기로 했다. 오늘의 이유가 글감을 찾는 거라고 생각하면 오늘을  이유가  하나 있지 않을까 싶어. 오늘은 무엇에 대해 써야 할지 떠오르지 않지만. 그래도 한글 파일을 열고, 내가 좋아하는 글씨체로 바꾸고, 무조건 쓰며 글쓰기를 이어가기로 했다. 비루한 조이의 삶에 글자 하나. 그래도 쓰고 싶어서. 그런데. 글을 매일 쓰기로 결심하고, 쓰는 것을 좋아해도. 무엇에 대해 쓰기로 했을 , 사실 나를 찌르는 양심의 문제가 하나 있다. 양. 심.

나는 오직 나에게만 관심이 있다. 뭔가를 쓰기에 자격 없음을 느낀다. 타인의 슬픔에 동참하지 못한다. 공감하는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고통을 마주하고 부정을 감내할 힘이 없다. 그렇게 나는 안타까움에서 눈을 피하고 비참함으로부터 고개를 돌렸다. 이제, 글감이 없다. 자동적으로 나에게 찾아오는 번뜩이는 글감이 아니라 땅을 파기로 했다. 이번 기회로 태만하고 유기했던 양심의 직무를 만회키로 했다.

4월이다. 주문한 책이 도착했다. 4월은 고난주간과 부활절을 지나는 달이다. 벚꽃이 피는 계절이다. 4.16 세월호 참사가 있었던 달이기도 하다. 나는 나의 여린 세포들이 모두 뜯겨 나가 버릴까 봐 두렵고 무서웠던 2014 4 16 그날부터 마주하기로 했다. 마땅히 생각하고 마땅히 행동해야 했던 일들을 하지 않았다는 죄책감으로. 슬퍼할 만큼 슬퍼하지 못했다는 부채감으로. 6주기부터. 앞으로 남은  생에 돌아올 주기마다 애도할 만큼 애도하기 위해서. 그러할 자격과 양심을 얻기 위해서.

240일간 세월호 유가족의 육성을 기록한 [금요일엔 돌아오렴] 읽기 시작한다. 뒷목에 열이 오르고, 눈물은 차오르고 심장은 두근거린다. 역시나 피부도, 세포도 뜯겨 나가는 기분이지만. 비켜갈수록 비참해지는 스스로를 발견한다. 이러한 실제들을 글을 통해서야 만나지만 실제를 걷고 계신 분들이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기분과 무관하게 나는 아무래도 생각해야 하고, 애도해야 한다. 동참해야 하고 행동해야 한다. 그동안 너무. 너무 미안했다. 양심과  모두에게. 양심을 양심답게 작동시키기로 했다.

다음 주기 4 16일까지. 사는 것이 글감을 모으는 일이라 생각하며 살아보기로 했다. 살아가는 이유가 글감을 찾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살아갈 이유가  하나 있지 않을까 싶어. 이제  삶을 넘어 이웃을 들여다본다면 비루한 조이의 삶에 진정 의미 있는 글자 하나 남길  있지 않을까 싶어. 이번만큼은 고개를 숙이고 조용히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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