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일 고양이의 일> 단단
마티랑랑 이벤트로 라우터커피에서 수령한 봉투를 열고 보니 전혀 생각하지 못한 책이 들어있었다. <사람의 일 고양이의 일> 고양이 3대 일가, 849일간의 기록. 일단 펼쳤고 목차에서 흥미가 일었고 ‘들어가며’를 읽으며 굉장한 기대감이 생겨버렸다. 요즘 관심사인 ‘약자’에 관한 이야기로 보여 이 책에서 배울 게 많을 것 같았다. 기록에 집착하는 나는 내 일이니까 일기 따위를 잘 쓸 수 있는 게 당연하지만 자신의 일이 아닌 것도 자신의 일로 만들어 계속 쓰는 누군가의 태도에 대해서도. 쓸 뿐 아니라 나서고 방해받고 다시 하고 후회하고 잃고 그럼에도 계속하는 태도에 대해서도.
책은 아주 단순하게 말하면 길고양이들의 관찰일기 같아서 덕분에 고양이의 삶에 대해 많은 걸 알게 됐다. 그 '고양이의 삶'이란 인간이 만든 도시에서 '인간 아닌 존재'가 받아들여야 하는 운명의 고단함을 가리키는 말이기도 하다. 내게 인상적인 부분도 자연히, 인간중심적 사고였음을 깨치거나 그를 반성하는 내용이었다. 책 마지막 부분에서야 스치듯 한 생각인데 곱씹어보면 매우 의미가 있었다. 지구 망해라 시선으로 내가 어디까지 보고 있었는지, 보지 않고 있었는지 안 것. 거기까지 생각한 적은 없다고 구구절절 변명거리를 생각해 봤지만 결국은 나 무책임하다는 것. 작가님이 여러 가지로 솔직하게 쓰신 걸 보고 나도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이나마 써본다. 최근에 이런 의미로 다가오는 책들을 연달아 읽음으로써 내가 과연 어디까지 바뀔지 좀 궁금하다.
고양이를 존중한다는 건 생명을 존중한다는 뜻이다. 쥐를 잡아준다는 정도의 '이로움'이 있어야 우리 동네에 '살기를 용인'하는 인간의 주제넘음이 계속 머리를 복잡하게 한다. "세상 어느 곳도 사람만 살도록 허용되지 않았다(109쪽)"는 걸 잊지 않았으면. 반면에 '함께 살아가기 위해 뭐라도 해보겠다'는 사람이 여기 있다. 이 책에서 배운 마음을 내가 오래 가져갔으면 하고 바란다. 어떤 종류의 다정함은 한 번 생겨버리면 이전의 무심한 마음으로 돌아갈 수 없게 한다는 걸 나야말로 잊지 않았으면.
우연과 호기심과 의구심과 미안함이 섞여 들면서 다른 존재가 보이기 시작했고, 함께 살아가기 위해 뭐라도 해보겠다며 두 팔을 걷어붙였다. 그렇게 움직이기 시작하자 ‘인간'이라는 말의 의미가 좁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에 사람만 살고 있는 것이 아닌데, 사람의 일, 사람의 관계, 사람(人)의 사이(間)만을 뜻하다니 이상하지 않은가. 사람 옆에 고양이만 있어도 해야 하는 일이 제법 달라지는데 말이다. ‘살다'라는 동사에서 출발했다는 ‘사람'이란 단어는 또 어떤가. 살아있는 존재가 사람만이 아닌데, 세상 모든 생명체는 다 살아있는데 어쩌다 ‘사람'만을 가리키는 단어가 되었을까. 나는 이 단어를 확장해보고 싶었다. 사람은 살아있는 것들 ‘사이’에 존재라고. 인간과 비인간 동물 사이를 가르는 구획선이 아니라 그 사이에서 함께 살아가는 일을 궁리하는 존재라고 말이다. (9쪽)
인간과 비인간 동물을 엄격하게 구분하는 세계에 머물던 내가 고양이들의 행동 양식을 지나치게 의인화하고 있는 건 아닐까 의심됐다. 동물 행동 연구자들이 가장 경계하는 태도도 의인화였다. 그런데 의인화를 피하는 것이 가능한 일일까? 인간인 나는 어쩔 수 없이 내가 쌓아온 경험과 지식에 기반해서 비인간 동물을 읽어낼 수밖에 없었다. 오히려 나도 동물이라는 사실을 다시금 깊이 인정하는 데서 시작하기로 했다. 지구에서 살아가는 동물로서 다른 동물과의 공통성을 찾아 그 이야기를 전하고 싶었다. 우리는 이렇게나 비슷해서 놀랍다고. 다르다고 열등하게 취급하거나 배척하는 대신 달라서 알지 못하는 점에 대해 상상하면서 이해의 폭을 넓혀나가자고 말하고 싶었다. (10쪽)
이 모든 일이 고양이 때문에 벌어진 싸움 같지만 문제는 고양이가 아니다. 고양이보다 사람이 먼저라는 입장과 고양이의 삶도 존중해야 한다는 입장 차이에서 비롯된 싸움이었다. 나는 고양이를 위해서, 고양이를 대신해서 싸우는 것이 아니라, 고양이 덕분에 알게 된 문제들을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사람 사이의 문제로 끌고 오는 우회 전략을 취했다. 그리고 조금 더 나아가 인간 중심적인 태도를 내려놓고, 인간을 정의하는 말들을 의심하며, 고양이 곁에서, 비인간 동물 곁에서 그들을 살리는 일을 고민하고 다른 세상을 상상해보고 싶었다. 고양이에게 밥을 주는 일은 사람으로서 어떻게 살 것인가, 어떤 세상에서 살 것인가에 대한 문제였다. (80쪽)
고양이를 정말로 위한다면, 인간 중심적인 생각에 치우치지 않도록 조심하고, 고양이의 일에 지나치게 개입하지 않도록 자제해야 했다. 오히려 사람 사이의 일에 개입하고 고양이를 혐오하는 행동을 바로잡는 일에 힘을 쏟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양이 보호 활동을 하시는 분들이 지역 주민과 충돌하지 않고 그들의 의견을 귀담아들으려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고양이를 싫어하는 사람의 마음까지 품어야 고양이의 삶이 더 안전해지는 것이다. 나도 ‘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 그런 사람들의 마음까지 미끄러지듯 죽죽 받아주고 싶었지만 당연히 쉽지 않았다. (13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