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엄마곰돌이 Aug 24. 2024

"그럴 수 있지."

힘들어하는 나를 보고 남편이 말한다.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해." 


참 우리 남편다운 말이다. 매사에 '받아들임'이 나보다 빨라 인생을 조금은 수월하게 사는 것 같은 남편. 남편의 삶이 쉬워 보인다는 의미는 아니다. 내가 보기에, 우리 남편은 인생을 살아갈 태도와 실력을 갖춘 사람처럼 보인다는 뜻이다.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원하지 않는 일이 일어나거나,  내 생각처럼 쉽사리 해결되지 않는 일들이 많지 않은가. 어쩌면 해결은커녕, 내 인생의 주도권을 모조리 빼앗긴 것처럼 이도 저도 할 수 없이 그저 버텨야 할 때가 있다. 그마저 끝이 보이지 않아 어디론가 사라져버리고 싶은 날들도 있다. 


요즘 마음이 힘들었던 것은 한동안 주춤했던 첫째 아이의 틱 증상을 최근에 다시 마주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럴 수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기가 참 힘들었다. 우리 남편과 다르게 나는, 대부분의 일에 ‘Why 왜, So What 그래서 뭐’를 묻는 사람이다. 인생 살기 참 힘든 스타일이다. 


이번에도 아이의 틱 증상을 보며 ‘도대체 네가 왜?‘라는 생각에 이어, 나름대로의 최선을 다한 엄마라는 생각에 억울하고 서운했다. 물론 학계에서는 생물학적인 원인이 지배적이라 본다지만, 스트레스도 증상의 악화/완화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이 마음을 불편하게 했다. 아이가 경험하고 있는 우리 가정 환경, 가족 관계, 나와 아이의 관계를 자꾸만 반추했다. 


이 과정에서 엄마로서의 자신감을 잃은 듯했다. 내가 무얼 잘못했을까 싶어 자책했고, 때때로 주눅 들고 위축됐다. 틱 증상은 아이들의 뇌가 성장해감에 따라 저절로 좋아지는 경우가 많다고는 하지만, 나는 여전히 걱정이다. 혹시나 다른 증상을 동반하지는 않을지, 증상이 악화되지는 않을지, 성인이 되어서도 틱을 가지고 살아가진 않을지 불안하다. 지금 잠시 증상이 사라진다 하더라도 잠시 몸을 숨기고 있다가, 언제 또 불청객으로 불쑥 나타나진 않을지 두렵다. 


아이가 자신을 걱정스럽게 바라보는 엄마의 눈길을 알아차리지는 않을지, 어딘가 코가 빠진 엄마의 모습에 아이가 괜한 불안과 혼란을 느끼지는 않을지, 눈치 빠른 아이라 더 걱정이다.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애써 의연해져야 하는 걸까, 무거운 마음을 뒤로하고 쾌활하게 지내야 하는 걸까? 엄마는 아프면 안 된다는 말이, 마음도 아프면 안 된다는 말이었을까. 


당분간 나의 목표는 대단하게 좋은 엄마가 되는 것이 아니다. 그냥 힘을 조금 빼기로 한다. 남편의 말대로, ‘그래, 그럴 수도 있지’라며 인생 앞에 한 발 물러서 보자. 힘들 때면 목표는 최소한으로 잡기로 한다. 아이들에게 너무 좋은 엄마가 되려 애쓰지 말자. 대신, 아이들에게 하지 말아야 할 행동만은 하지 않기로 하자. 최소한의 목표이지만 지금으로선 최선일지도 모른다.


작가의 이전글 아이들에게서 용납을 배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