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7년 차, 결혼 생활 중 잘한 것이 하나 있다면 '대충 싸우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 덕에 같은 일로 싸우는 일은 드문 편이다.
결혼 생활에서 부부싸움이 빠질 수 없다면, 나는 '열심히' 싸우기를 적극 권한다. 여기서 '열심히'라는 것은 나와 상대방의 말과 행동, 그에 따른 반응을 하나씩 찬찬히 뜯어보고, 열어보고, 거슬러 올라가 보고, 이리저리 비추어 보는 것을 말한다. 아, 굉장히 피곤한 일이다. 감정의 소용돌이가 몰아치는 상황에서 이러한 '작업'을 하는 것에는 상당한 정성과 의지가 필요하다.
직업병일지도 모른다. '좋은 게 좋지', '그냥 덮고 살아'가 나에게는 어렵다. 잘잘못을 따지라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지금 무엇으로 인해 힘든 것인지, 면밀히 들여다보고 실마리를 하나씩 풀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작업을 마치고 나면, 산 하나를 넘은 기분이 든다. 땀 뻘뻘 흘리며 정상에 올랐을 때 비로소 눈에 들어오는 그림, 그리고 하산할 때의 홀가분한 마음. 누군가에겐 분명 피곤한 일일지도 모른다. (혹시 우리 남편?)
하지만, 불편한 감정을 덮어두고, 묻어두고, 지나가는 것이 만사 OK가 아니다. 부정적인 감정과 생각을 그대로 내버려 두면 절대 저절로 괜찮아지지 않는다. 정성 없이 저절로 아름다워지지 않는다. 눈덩이처럼 불어나 어느 순간 불청객처럼 나타날 가능성이 훨씬 높다.
신혼 시절, 남편과 반복적으로 경험하는 갈등이 있었다. 내가 남편에게 "왜 *** 했어?"라는 질문을 하면 남편은 괴로워했다. 진심으로 이유가 궁금해서 물어본 나로서는 남편의 반응이 당황스러웠다. 이런 일이 몇 번 반복되고 발견한 것은, "왜"로 시작하는 나의 질문이 남편의 귀에는 "왜 그랬어, 그러지 말았어야지."로 들렸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왜 여기에 주차했어?'라고 묻는 말이 '여기에 주차하지 말았어야지.'라는 말로 들린 것이다.
남편과 나는 서로의 마음을 요리조리 열심히 뜯어보았다.
- 우리 사이에 왜 비슷한 갈등이 반복되는지
- 나는 왜 그 말만 들으면 불쾌한지
- 어떤 마음이 드는지(분노, 억울, 서운, 자책, 불안, 무력, 절망 등)
- 그 마음을 느꼈던 비슷한 경험이 있는지
- 그와 관련해 부모님과의 경험은 어땠는지
- 등등.
남편이 하산하며 말했다. "탓하는 말을 많이 들어서 그런가 봐."
이 깨달음을 얻은 뒤로 '왜'로 시작하는 말은 신중하게 하는 편이다.
이렇게 남편에 대해 어느 정도 안다고 생각했는데, 오늘 같은 날은 또 새롭다. 마치 '이 사람'이라는 바다의 수심이 50m 정도라고 알고 안주하고 있었는데, 그 밑에 20m가 더 있었던 것 같은 느낌. 나는 그 바닷속 지형을 어느 정도 익혔다고 생각했는데, 새로운 암초를 만나는 당황스러움.
그 일인 즉슨, 남편과 기분 좋게 나들이를 나섰다. 운전 중인 남편을 위해 내비게이션 목적지는 내가 설정했다. 목적지가 아닌 엉뚱한 곳으로.
"목적지에 도착"이라는 내비게이션의 음성에 따라 남편은 자동적으로 핸들을 목적지로 돌렸고, 나는 동시에 "여기 아니야."라고 말했다. 그 순간 남편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알고 보니, '여기 아니야."라는 말이 "여기 아닌데 왜 여기로 가."라는 탓하는 말로 들렸다는 것이다. 억울했다. 내가 뱉은 말이 공기 중에 180도 회전한 다음 남편의 귀에 꽂힌 것 같았다. 왜곡.
오늘 일은 다행히 가벼운 에피소드로 마무리되었다. 지금까지 열심히 싸워본 경력 덕분에 오늘은 비교적 낮은 산을 오른 느낌이다. 그래도 불쾌해하는 남편을 보며 당황스러웠던 기억은 아직 생생하다.(내비게이션 목적지 설정은 정확히 하자.)
한 번에 모든 것이 괜찮아질 수는 없겠지만, 그리고 새로운 암초는 예고 없이 나타나겠지만, 함께 하는 세월 속에 거칠고 모났던 산이 오름직한 동산으로 다듬어지고 있는 것 아닐까.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