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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느님 Oct 19. 2022

우리 동네 공유 오피스-집무실 한 달 이용 후기

9월 1일부터 우리 동네 공유 오피스인 집무실에서 낮시간을 보내고 있다. 다른 일이 있거나, 어딘가 훌쩍 떠나고 싶거나, 친구가 찾아오거나, 그도 아니면 그냥 게으름병이 도져서 출근하지 않은 날도 종종 있지만, 그래도 여기가 내 사무실이다 생각될 만큼 꾸준히 출근 도장을 찍어왔다. 유료 회원으로 사용한 지 한 달이 넘었으니 이제는 냉정한 평가를 내려 볼 수 있을 것 같다.


#1. 가성비: 5/5

처음 3일은 무료 체험으로 돈을 내지 않고, 4일째부터 기본 회원으로 전환하여 월 33,000원의 회비를 내고 있다. 기본 회원이 되면 하루 1시간이 무료이며, 추가되는 시간에 대해서는 시간당 3300원을 청구한다. 만약 오늘 3시간을 사용하였다면, 무료 1시간을 제외하고 2시간에 대해서 요금이 부과된다.


출입시마다 QR코드를 찍기 때문에 내가 사용하는 시간을 분 단위로 볼 수 있다. 화장실 갈 때도 QR코드를 찍고 나가기 때문에 퇴실 후 1시간이 지나야 정말 퇴실한 것으로 간주하여 요금을 청구한다. 요금은 시간당으로 계산되고 10분도 1시간, 59분도 1시간 요금을 내기 때문에 가급적이면 2시간 55분, 3시간 55분 이 정도 되었을 때 퇴실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나는 한 번에 3시간 정도를 사용하기 때문에 평균 6,600원이 청구된다. 한 달에 20일을 사용했다면 132,000원이 청구되므로 기본 회비 33,000원을 포함하면 한 달에 총 165,000원 정도다. 집무실에는 커피와 차, 간단한 다과, 와이파이와 프린트가 무료이므로, 이런 비용을 생각하면 상당히 저렴한 편이다. 인근 카페에서 커피 한 잔을 마시며 2~3시간을 앉아 있기는 힘들었다. 1시간쯤 지나면 사장님 눈치가 보여 디저트라도 하나 추가하고, 또 음료도 한잔쯤 더 주문하게 된다. 그러니 비용 면에서는 집무실이 단연 낫다.


기본 회원에게도 무료 초대 쿠폰이  달에 4 발급되는데, 이것 역시 쏠쏠했다. 딸아이가 독서실에 가기 싫어할  집무실로 초대하면 문자 메시지로 QR코드가 전송된다. 기본 회원과 마찬가지로 1시간은 무료이고 추가 시간은 1시간당 3,300원이 청구된다. 일요일에 다문  시간이라도 집무실에 앉아 있다 집에 오면 재수생의 불안한 마음도 다스릴  있고, 저녁 밥상에 한우까진 아니라도 호주산 소고기 정도는 기대해   있다.


나는 이용하지 않지만 매일 오후 3시에 위스키와 달달한 쿠키류를 준다. 일하다 말고 무슨 짓인가 싶지만, 많은 회원들이 줄을 서서 한잔씩 받아간다. 나는 쿠키류만 받아서 먹어본 적 있는데, 대형 할인 매장에서 살 수 있는 그런 단것을 관리자가 예쁘게 플레이팅해서 주기 때문에 상당히 고급스럽게 보인다. 인스타를 하는 사람이라면 찰칵을 부르는 그런 비주얼이다. 솔직히 맛은 그저 그렇다.


만약 한여름에 사용했다면 가정의 냉방비도 절약할 수 있을 것이다. 지난여름 집에 혼자 있으면서 에어컨을 가동하자면 양심에 상당한 가책을 느꼈는데, 집무실에 나오면 온도는 25도와 습도는 50~60% 정도로 조절되고 있어 좋다. 이제 겨울이 오면 집안에 난방을 끄고 나와 집무실에서 일하는 것도 에너지 절약에 좋겠다.


 #2. 업무 효율: 5/5

월 385,000원을 내는 무제한 회원권을 신청했다면 집무실을 얼마나 오래 사용하든 추가 비용이 없다. 그런데 내가 신청한 기본 회원권은 1시간이 지나면 비용이 올라가는 시스템이므로, 아무래도 효율적으로 일을 하려는 동기가 높아진다. 2시간짜리 업무라도 미적거리면서 여유를 부리면 5시간이 걸려도 마무리하지 못할 수 있는 게 사람이다. 그런데 비록 푼돈이지만 추가 비용을 허투루 쓰기 싫은 마음에 집무실 나와 있는 동안에는 바짝 집중을 해서 일을 보게 된다. 여유 있게 할 일은 굳이 집무실 나오지 않고 내 집에 앉아서 처리하면 그만이니까, 집무실에 나올 때는 가서 무슨 일을 처리할지 구체적인 계획을 가지고 오게 되는 장점이 있다.


카페와 비교할  가장  장점은 파티션 공간의 프라이버시이다. 파티션이 머리 위로까지 쳐진 부스는 상당히 사생활이 보장된다. 머리 위쪽이 개방된 파티션만 해도 앉아있는 동안은 프라이버시를 충분히 누릴  있다. 매너 없이 고개를 들이미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프라이빗한 공간이 지루하고 답답하면 개방형 테이블과 의자도 이용해 가며 기분 전환을   있다. 다양한 공간 모듈을 이용해 기분 전환을 하면 업무 효율에도 도움이 된다.


저녁 시간의 집무실. 손바닥만한 내 집을 벗어나 넉넉한 공간을 즐기며 조용하게 일에 집중하기 좋다.

#3. 분위기: 3.5~4/5

9월 첫날 이곳에 왔을 때는 회원들이 무척 프로페셔널해 보였고, 이후로도 매너가 무척 좋다고 느꼈다. 통화를 할 일이 있으면 방음 장치가 된 phone booth를 이용하여 다른 회원들을 존중하는 분위기가 확실했다. 점심식사를 같이 하기 위해 중앙에 모여든 사람들도 조용히 움직였었다.


그런데 10월 어느 날인가는 점심 먹으러 나가는 회원들이 모여 웅성웅성 두런두런 수다도 좀 떨고, 식사를 마치고 와서도 자리에 돌아갈 생각이 없이 모여서 커피를 마시는 것이었다. 그래 봐야 일반적인 카페보다는 훨씬 조용했는데, 나한테는 영 거슬렸다. 인내심을 총동원하여 그날을 넘겼는데, 다음날도 같은 문제가 생겨서 내 안의 꼰대를 달래느라 진땀을 뺐다.


일이 있어 며칠 출근을 안 하다 돌아왔더니 그런 일은 더 이상 없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내 공간 양옆으로 앉은 사람들이 파티션을 방패 삼아 자리에 앉은 채로 통화를 했다. 오른쪽 분은 주위를 의식하여 소곤소곤 통화를 하고 또 짧게 끊었는데, 왼쪽 분은 그렇지 않았다. 조심성 전혀 없이 한참을 이어지는 통화에 신경이 엄청 곤두섰다. 더구나 통화 내용이 선명하게 다 들려서 그 사람의 직업도 유추가 될 지경이었다.


집무실은 독서실과는 달라서 쥐 죽은 듯한 조용함을 기대하지는 않는다. 애초에 어느 정도의 생활 소음을 흡수하기 위해 음악도 흐르고 있다. 하지만, 사람마다 소음의 역치가 달라서 가끔씩 나의 수용 가능한 수준을 뛰어넘는 소음이 발생하기도 한다. 일시적으로 발생하는 소음은 충분히 양해하고 참을 수 있는데, 그렇지 않은 경우는 대책이 없다. 관리자가 한 명 있기는 하지만, 정숙에 대해 명확한 기준이 있는 것이 아니라 돈을 내고 서비스를 이용하는 회원에게 훈계를 하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집무실이 오늘 얼마나 조용할지는 순전히 운에 달렸다.


#4. 시설: 3.5/5

집무실의 인테리어는 9월 첫날 자랑했던 것처럼 상당히 근사하다. 개방감이 넘치는 흰색 인테리어에, 생화는 아니지만 야자수, 신선초, 선인장을 활용한 플랜테리어가 세련되다. 질항아리, 조약돌, 나뭇가지 등 오브제가 곳곳에 놓여있는데 과하지 않아 절제미가 있다.


업무공간은 파티션의 높이와 개방된 정도에 따라 다섯 가지가 모듈별로 배치되어 있다. 휴식공간에는 소파와 커튼이 배치되어 포근한 느낌을 준다. 최대 4명까지 동시에 들어갈 수 있는 회의실, 한 명이 들어가서 통화할 수 있는 phone booth 등은 방음이 되는 공간이라 남들에게 피해 주지 않고 필요한 업무를 볼 수 있다.


보기에는 그럴싸하지만 업무용 가구는 그다지 인체공학적이지 못하다. 어쩌면 내 몸뚱이가 평균적이지 않아서 그럴 수도 있다. 파티션 안쪽에 놓인 의자들은 높이 조절이 되는 업무용이긴 한데, 견고함과 내구성이 좀 부족해 보인다. 내가 그리 무게가 나가는 사람이 아닌데도 어딘가 좀 부실하게 느껴지는 순간이 있다. 그외의 모듈에 놓인 의자들은 테이블과의 높이 차이가 애매하다. 두 시간쯤 앉아 있으면 삭신이 쑤신다. 그리고 창가에 놓인 의자와 스툴에는 쿠션이 없다. 엉덩이에 충분한 쿠션을 자체 장착한 체형이 아니라면 한 시간 이상 앉아 있기 힘들 것이다.


무료로 사용할 수 있는 프린터와 복합기는 잘 작동하고, 얼음과 온수 기능이 있는 정수기도 두 대가 설치되어 있다. 날이 추워지니 코트랙을 비치하여 외투를 걸 수 있게 했다. 비 오는 날은 입구에 우산을 보관할 수 있도록 우산꽂이가 놓여있다. QR코드를 이용해 출입을 관리하는 시스템도 잘 작동한다. 다만 집무실 앱 자체에 오류가 생기는 경우도 한 번씩 발생한다. 그럴 때는 관리자에게 얘기하여 바로 잡거나 기록에 남겨야 한다.


오후 3시와 저녁시간에 다과와 리커를 제공한다. 오후 3시에는 관리자가 직접 서빙까지 해줌. 


#5. 내 집 같은 편안함: 5/5

나처럼 아무 때나 올 수 있는 스케줄을 가진 사람이라면, 사람이 적은 주말이나 저녁 시간에 나와 내 집처럼 편안하게 업무를 볼 수가 있다. 아무래도 평일 아침부터 저녁까지는 어느 정도 긴장감을 유지하게 되지만, 이용자가 적은 시간에는 옷차림이나 헤어 따위에 신경 쓰지 않고 그야말로 편안한 모습으로 올 수 있다. 기숙사에서 시험공부하다 매점에 온 대학생 같은 모습의 회원들도 주말이나 밤 시간에는 적지 않다. 나 역시 마찬가지이다. 전혀 어색할 것이 없다.


결론적으로, 기본 회원으로서 집무실을 이용하는 것은 추천할 만하다. 언제든 내 집처럼 와서 앉아있을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건 무척 마음 푸근한 일이다. 기본 회원은 요금도 저렴하고, 쓰는 만큼 내는 방식이라 얼마든지 가성비가 나온다. 하지만 하루 8시간씩 나와서 앉아 있기는 어려울 것 같다. 가성비 차원에서도 그렇지만 하루종일 앉아있어도 될 만한 의자를 갖추고 있지 않다.


또 한 가지 기억할 것은 집무실이 나의 전용 오피스가 아니라는 점이다. 사람들이 많이 있으면 그 안에는 갈등도 생기기 마련이다. 곳곳에 CCTV가 설치되어 있으므로 도난 염려는 거의 없지만, 자리에 앉아 큰 목소리로 오래 통화를 하는 등의 행동에 대해서는 전혀 대책이 없음을 말해 둔다. 당신이 만약 층간 소음이라든지 동네 아이들의 떠드는 소리, 개 짖는 소리 등에 무던한 편이라면 집무실에서도 아주 잘 지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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