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여느님 Nov 04. 2022

112에 신고를 해 보았습니다

일반적으로 경찰은 이렇게 대응합니다

아이를 낳고 기르게 되면 안전에 대한 민감도가 올라갑니다. 미혼일 땐 그냥 지나칠 만한 일들도 혹시나 싶어 눈여겨보고 신고를 하게 되더군요. 특히나 세월호 참사와 여러 차례의 대형 사고들을 겪으면서, 미심쩍은 일이 있을 때는 혼자 끙끙대는 대신 112를 눌러봅니다.


그날은 아이가 학원을 마치고 오는 시간인 밤 10시에 맞춰 마중을 나갔습니다. 집 앞 공원에서 중고생으로 보이는 남자아이들 대여섯이 너무 거칠게 놀고 있었습니다. 한 명의 엉덩이를 여러 아이들이 돌아가면서 발로 찼는데, 차는 아이의 동작이나 맞은 아이의 동작이 너무 커서 액션 영화를 보는가 싶었습니다. 장난인가 폭행인가 판단하기가 어려웠는데, 맞은 아이의 비명이 장난 같지 않았습니다. 또 장난이라 하더라도 도가 지나치다면 어른이 개입을 해주는 게 좋겠다 싶더군요. 잠시 망설이다가 112에 신고를 했습니다. 가까운 파출소에서 경찰관들이 곧 출동을 했습니다. 아이를 데리고 집에 도착하니 경찰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생일을 맞은 친구를 축하해 준다며 좀 거칠게 놀고 있었는데, 다친 아이는 없고 집으로 돌려보냈으니 걱정하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112에 신고를 하면 신고자에게 이렇게 사건 처리 결과까지 알려주는구나, 하고 그때 처음 알았습니다.


주민센터가 내려다 보이는 아파트에 살고 있습니다. 어느 날 밤 자정 가까운 시간에 주민센터 지하주차장에서 화재 경보가 울리기 시작했습니다. 연기나 불길은 보이지 않았지만 경보가 계속 울렸습니다. 창문으로 한동안 지켜보았는데 아무도 둘러보는 것 같지가 않았습니다. 119에 신고를 할까 하다가 아무래도 화재경보기 고장 같아 112에 전화를 했습니다. 화재가 아닌데 소방차를 출동시켜 온 동네 사람들을 깨우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곧 경찰차가 한 대 왔습니다. 경찰관들이 주차장과 주민센터를 둘러보았습니다. 잠시 후에는 사이렌을 울리지 않은 채 소방차도 한 대 왔습니다. 한참 만에 드디어 경보가 멈추고, 경찰관과 소방관이 번갈아 전화를 주더군요. 상황이 종료되었으니 걱정할 것 없다고 알려준 것입니다.


이렇게 경찰에 신고를 하고, 안전을 확인받은 두 번의 경험을 통해 우리나라 경찰 시스템에 자부심을 느꼈습니다.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짱가가 아닌 경찰관이 달려와 도와줄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나아가 신고자에게 상황 처리 결과도 알려주다니, 이제 우리는 진정한 민주 경찰을 가진 나라라며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이태원 참사 직전의 112 신고 녹취록이 공개되어 우리를 크게 실망시키고 있습니다. 한 번도 신고를 해본 적 없는 시민들이 이 일로 경찰 전체에 대한 신뢰를 버릴까 우려됩니다. 경험자로서 말씀드리건대, 우리 경찰은  시민들의 신고에 즉각 출동하여 상황을 해결해 줍니다. 그날 그 시각 이태원에는 왜 그러지 못했는지 궁금합니다. 하루빨리 진상이 밝혀져서 365일 24시간 우리 곁을 지켜주는 일선 경찰분들이 오명을 벗기 바랍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내 친구 이재용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