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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곰돌이빵 Mar 31. 2023

고양이로 살게 되었다

연애하지 않을 자유

'연애하지 않을 자유'에 대해서 이야기하려면, 일단 몇 개의 산을 넘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눈을 홉뜨고 나에게서 어떤 '하자'를 찾아내려고 하기 때문이다. 연애하기에 적절하지 않은 요소가 하나라도 포착되면, 그때부터 내가 하는 모든 말은 '열폭'이나 '정신 승리'로 번역된다. ... 이렇게 상대방의 비연애 상태를 폄하하기는 매우 쉽다. 그것은 개그 프로그램과 같은 각종 미디어, 사람들 사이의 대화에서 일상적으로 벌어진다.

-이진송, 연애하지 않을 자유


문학동네에서 이진송 작가의 '차녀 힙합'을 소개받으면서 다른 책도 둘러보다가 가벼운 마음으로 연 책이었다. 그러나 왜 난 이 책을 결혼한 후에 접한 것인지 아쉬웠다.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의 대부분이 들어있는 이 책을 말이다.


나는 서른여섯 살에 결혼을 했다. 한국 사회에서 말하는 늦은 나이에. 결혼하기 전까지 나는 부모님 포함해서 수많은 따가운 시선을 견뎠. 특히 남초 회사에서 그러한 시선은 두 가지 편이 있다.  


먼저 '못' 했다는 편이다. 눈이 높아서, 주제에 맞지 않는 잘생기거나 멋진 남자를 기다려서. 철벽녀라서. 아직 세상 물정을 몰라서. 러고 다니니까.


두 번째는 '안'한다는 편이다. 고맙다고(?) 생각해야 하는지 모르지만 '능력이 있으니 결혼을 안 하지', '화려한 싱글이 좋지' 등등이다.


외벌이로 아내와 아이들을 부양하는 남직원들 중에는 나를 보고 혼자 벌어서 혼자 다 쓰니 얼마나 좋냐고 무례한 말을 마구 던진다. 그들이 보기에는 내가 능력이 있다고 보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반대로 생각해 보면 내가 입에 풀칠하기도 바쁘거나 벌이가 지금보다 안 좋으면 결혼을 해야 한다는 것인가? 남자가 여자를 돈 주고 사는 것과 뭐가 다른가.


인생을 조금 더 살면서 10대와 20대에 비해 내려놓은 것 중 하나는 바로 남의 시선에 대한 두려움이다. 사람들은 생각보다 남에게 관심이 없다. 내가 더운 날씨에 검은 스타킹을 신든 겨울에 반팔을 입든 한번 쳐다보고 마는 수준이다. 하지만 반대로 사람들은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남의 인생을 쉽게 재단하려 든다.


나의 결혼 유무나 남자친구의 유무에 대해 관심을 갖는 사람들에게, 왜 나보고 연애를 하지 않느냐고 무례하게 물어보거나 속단하는 사람들에게 나는 더 이상 잔소리를 듣지 않아도 된다. 회사 업무 미팅이나 외부 업체를 만나거나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는 그저 왼손에 끼워져 있는 다이아몬드 반지를 살짝 보여주면 그만이다. 나는 드디어 연애하지 않을 자유를 얻었다. (이러려고 한 결혼은 아니긴 하다.)


내가 결혼을 한 이유는 화려하지 않게 살려고도, 주제에 맞지 않는 잘생긴 재벌 실장님이 갑자기 대시를 해서도 아니다. 인생을 같이 보내고 싶은 반려자가 생겼기 때문이다. 그 사람은 나를 고양이라고 부른다. 집사가 된 기분이라고 매일 나를 귀여워해주고 돌봐준다. 물론 나도 고양이로의 역할에 최선을 다 한다. 고양이로 사는 것도 꽤 괜찮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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