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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곰돌이빵 May 10. 2023

종이달의 매력

리카가 얻고 싶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가쿠다 미쓰요 작가님의 종이달을 처음 읽은 게 몇 년도였던가. 아마 7년 이상 된 것 같다. 1억 엔을 횡령한 일본의 평범한 주부의 일탈이라니 얼마나 자극적이고 재미있는 소재거리인지. 하지만 마냥 자극적인 소재를 다룬 책이라고 평가되기는 아쉬운 책이다.


이 종이달은 일본에서 영화로도 드라마로도 나왔었다. 종이달을 3번 이상 완독한 나는 일드와 일본영화도 모조리 보았다. 그런데 최근에 종이달이 넷플릭스에 뜬 것을 발견하고 많이 놀랐다. 게다가 한국판이었으니 말이다. 내가 읽었던 종이달은 일본의 국민성이나 사회에 많이 맞추어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되었고, 스마트폰도 존재하지 않는 과거를 현대의 한국 사회에 맞추어 녹여내는 과정이 궁금했으니까.


언젠가부터 나는 소설책을 볼 때에는 이 작품에 스마트폰이 나오는지, 핸드폰이 나오는지, 나오지 않는지로 시대상을 가르게 되었다. 드라마나 영화는 색깔이나 외부의 풍경, 자동차의 차종 등으로 시대를 쉽게 추론할 수 있지만 텍스트로 이루어져 있는 소설은 조금 다르니까 말이다.


일본 드라마나 영화를 봐서 그런지 종이달의 여주에 대한 고정된 이미지가 있었는데 한국 드라마의 주인공으로 김서형 배우를 선택한 것은 아주 절묘하며 그 목소리나 표정, 연기 스타일도 완벽한 캐스팅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무래도 한국화 하는 과정에서 많은 부분이 각색되었고, 여주인공의 남편의 행실에 대해서는 다소 당황스러운 부분도 많이 등장한다.


이 책이 왜 이렇게 매력적이냐고 묻는다면 처음에는 궁금해서였다. 도대체 1억 원이나 횡령해서 무엇에 썼을까? 결국 어떻게 된 걸까? 의 이유였고, 두 번째 읽었을 때는 리카 (여주인공)의 마음을 들여다보면서 공감했기 때문이다. 내 인생이 껍데기만 있다고, 밖에서는 가면을 쓰고 살고 내가 원하는 공부나 직업을 가지기보다는 남에게, 부모님에게 보여주기 위한 일을 해왔다는 생각, 정말 내가 원하는 것을 찾지 못했다는 생각 때문이었던 것 같다.


누구나 가면을 쓰고 가짜의 삶을 살아간다. 직장에서는 회사원의 얼굴, 당근 할 때 이웃 주민의 얼굴, 몇 년마다 모이는 동창회에서의 얼굴. 하지만 그 얼굴들은 언제든 원상 복귀할 수 있고, 돌아올 구석이 있지만 리카가 만들어낸 새로운 가면은 도저히 원래의 일상으로는 돌아올 수 없는 것이었다.


리카를 잘 모르는 과거 연인이나 동창들 중 일부는 그저 그녀가 남자에 미쳐 횡령하고 사치한 것으로 얘기하는 부분이 나온다. 그러나 종이달을 계속 읽다 보면 나도 모르게 리카의 부적절한 행동을 응원하며 그들에게 뭐라고 하고 싶어지는 이 마음은 뭘까? 종이달에 제대로 매료된 독자의 마음은 그저 그녀를 숨죽인 채 지켜보는 것뿐. 


하지만 우리 모두는 알고 있다. 그녀에게 다가올 결말은 결국 밝은 미래는 아니라는 것. 하지만 이 책은 그것을 알면서도 계속 페이지를 넘기게 한다. 처참한 미래일지라도 그저 계속 다음 페이지를 넘기고 싶어 하는 책.


소설이나 드라마의 매력은 모든 등장인물의 마음속을 알아버릴 수 있다는데서 나온다. 특히 드라마는 과한 표정이나 제스처, 심지어 독백까지 해가며 시청자에게 많은 정보를 준다. 혹시 알아채지 못할 까봐 걱정된다는 듯이.


종이달 드라마에 혹시 아쉬운 점이 있다면 꼭 소설책을 읽어보길 권한다. 드라마의 주인공의 표정이나 대사로 표현할 수 없는 애매한 부분을 상세히 묘사하고 있어서 왜 이 부분에서는 이랬는지 더 공감하게 된다.


리카가 가면을 쓰고, 새로운 거짓 인생을 펼쳐나가는 것을 제삼자의 입장에서 무대 밖에서 낱낱이 훔쳐보는 재미는 손에 땀을 쥐게 하기도 하고 내 삶을 돌아볼 수도 있게 했다. 나는 몇 개의 가면을 갖고 있을까?


- <종이달>, 가쿠다 미쓰요 -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을 거란 확신을 갖고 사방으로 튀는 빛과 소음 속을 걷다 보면, 리카는 비명을 지르고 싶을 만큼 흥분을 느꼈다. 나는 뭐든 할 수 있다. 어디로든 갈 수 있다. 갖고 싶은 것은 모두 손에 넣을 수 있다. 아니, 그렇지 않아, 원하는 것은 모두 이미 이 손에 있어.


  리카는 얼마 전에 이 비슷한 기분을 느꼈던 기억이 떠올랐다. 정말로 그렇게 생각했다. 무서운 것도 두려운 것도 무엇 하나 없었다. 하지만 지금의 기분은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컸다. 리카는 신기했다. 나는 무언가를 얻어서 이런 기분이 된 걸까. 아니면 무언가를 잃어서 이런 기분이 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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