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 독서율이 최저치를 기록했다고 하죠. 책을 1년에 한 권도 읽지 않는 사람이 60%가량이라고 하죠. 10명 중 4명만 책을 읽는 셈인데요. 사실 매년 듣는 소식이라 놀랍진 않습니다. 매번 이슈가 되고, 시간이 지나면 조용히 사라질 통계 자료지요. 어디까지 더 떨어질지… 걱정이 되긴 합니다.
지금과 같은 ‘도파민 싸움’ ‘시간 뺏어오기 전쟁’ 이 온갖 콘텐츠, 플랫폼들 사이에서 소재, 방식을 바꿔 펼쳐지고 있는 와중에, OTT, 쇼츠, 스포츠, 게임 등이 지구상에서 당장 사라지지 않는다면 내년엔 독서율이 더 최저치를 기록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죠. 현재를 위기 상황으로 판단하고 국가 차원에서 독서 마일리지(책 다 읽고 인증하면 페이백 해드립니다!!!) 같은 정책을 편다면 달라질지도 모르겠어요.
그런 와중에 한쪽에서는 ‘텍스트 힙’ 이 트렌드가 되면서, Z세대들 사이에 책을 읽는 이들이 많아졌다는 이야기가 들려옵니다. 텍스트로 자신의 이야기를 길게 할 수 있는 블로그의 Z세대 이용률이 높아지고, 틱톡이나 인스타그램에서 책 관련 해시태그로 된 게시글이 많아지고 있다고 하니까요.
성인 10명 중 6명이 1년에 책 한 권도 안 읽는 시대에 한쪽에선 Z세대의 독서 열풍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정부가 발표한 데이터에는 나타나지 않는 긍정적 변화의 조짐이라고 보면 되는지. '역 트렌드' 그러니까 비주류를 추구하는 반짝하고 사라지고 마는 유행으로 끝날지 궁금해지는데요.
오늘 콘텐츠 카트에서는 ‘책’에 대해서 이야기해 봅니다.
책을 읽지 않는 이유
책 읽는 건 쉽지 않은 일입니다. 여러가지 허들이 있죠.
재미의 문제
일단 ‘재미’ 면에서 큰 장벽이 있습니다. 세상에 재밌는 것들은 많으며, 빠른 속도로 도파민을 유발하는 콘텐츠들과의 경쟁에서 책이 이기는 건 당연히 힘들 것입니다.
고도의 집중력도 필요하고, 시간도 많이 써야 합니다. 그러니까, 시성비=시간 가성비로 따지자면 책은 정말 떨어지는 콘텐츠인 건 사실이죠. 그래서 누군가는 책 읽기 대신 유튜브에서 10분짜리 책 요약본을 보는 것을 택하고 “책을 읽었다”라고 얘기합니다. 인플루언서들이 멋지게 해 준 요약본을 보면서 나의 책 읽기를 ‘외주화’ 시키는 경향도 보이죠. 이건 단순 책에만 허용되지 않고, 영화나 드라마, 책 등 긴 호흡을 따라가야 하는 레거시 콘텐츠를 소비하는 것에 모두 해당되는 일입니다. 책을 빨리 감기로 보는 행위인 것이죠.
가격의 문제
책의 가격도 허들입니다. 특히 종이책 한 권이 나오는 데는 점점 더 많은 돈이 들고 있지요. 최근 종이 가격이 증가하면서, 책 한 권을 사려면 거의 2만 원은 줘야 하는데요. ‘월급 빼고 다 오른다’는 인플레이션 시국에서 책을 사는 데 몇 번 주저하게 되긴 하는 것 같습니다.
종이책 1권을 판매하면, 작가에게 돌아가는 건 유명 작가를 제외하고는 10% 내외. 나머지는 인쇄비, 출판사 수수료, 마케팅비 등으로 해서 빠진다고 하니 시장이 쪼그라드는 상황에서 대박 나지 않는 이상 큰 수익을 거두기는 힘든 구조입니다. 작년 출간된 책이 61,181 종이라고 하는데, 이 중에서 손익을 넘긴 책은 몇 개나 될까? 궁금해지네요. 소비자의 '책값 너무 비싸다'와 출판업계에서는 '남는 게 없다'가 팽팽하게 대립하고 있는데, 좁혀질 기미는 없어 보여요.
접근성의 문제
문체부의 국민 독서 실태 조사에서 눈에 띄는 대목은 소득별 차이 부분이었습니다.
'월평균 소득 200만 원 이하의 저소득층의 독서율은 9.8%, 월평균 소득 500만 원 이상의 고소득층의 독서율인 54.7%' 였다는 것이죠. 즉 고소득자일수록 책을 많이 읽는다는 뜻입니다. 이건 환경적으로, 금전적, 시간적 여유의 문제일 가능성이 크지만, 그만큼 지식의 격차가 점차 커진다는 뜻도 되지요. 정보의 크기 자체가 부와 비례하는 것은 아니지만, 많이 알수록 많이 공부하고 배울수록 기회는 늘어난다고 생각하는데요. 정보는 권력의 동의어입니다. 이 격차는 기회의 사다리 박탈, 계층의 고착화 등으로 이어질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정부가 출판 산업을 지원한다거나 도서관 예산을 증대시켜 책에 대한 접근성을 높여야 하지 않을까 싶은데. 올 3월에 난 기사에 따르면, 독서·서점·도서관·출판 관련 정책을 바뀌고 예산이 대폭 삭감되었다고 하네요. 이런 와중에 국민들이 책을 읽지 않는 사실이 큰 이슈가 되는 게 참 아이러니하게 느껴집니다.
과연 책을 읽지 않는 것이 개인의 문제일까요? 정부의 문화계, R&D 등 돈이 되지 않는 분야의 예산 삭감이야 놀랍지도 않은 일이지만. 상업적이지 않은, 돈이 되지 않는 것을 지원하는 것이 공공의 역할 아닐까요.
책 구독 서비스 밀리의 서재의 지난해 매출이 569억, 영업이익 105억이라고 하죠. MAU도 1년 새 30% 이상 증가했다고 하고요. KT에 인수된 후 알뜰폰 요금제 제휴로 고객을 끌어들인 점이 가장 큰 요인으로 보이고, 오리지널 지식재산권(IP)을 확보해 고객 충성도를 높인 영향이라고 하는데요.
밀리의 서재의 이용 연령대를 보면 20~30대가 가장 많고, 당연하겠지만 월평균 독서량도 평균보다 높은 7.5권이라고 합니다. 성인의 경우 연간 종합독서량은 3.9권, 월로 나누면 0.33권이니까 20배 이상이 이상이죠. 아무래도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구독하니까 평균보다 높을 수밖에 없겠지만, 어디서든 쉽게 다양한 책을 합리적인 가격으로 접할 수 있다는 점이 주효했다는 생각입니다.
그만큼 책을 읽을 수 있는 기회, 접근성의 확대가 독서율을 향상시키는 데 중요하다는 뜻이지요.
세계적인 SF소설가 코니 윌리스는 단편집인 ‘베스트 오브 코니 윌리스’ 서문에서 “공공 도서관에게 이 책을 바친다”라고 적었는데요. 그만큼 그는 자신의 상상력과 그 결과물(소설)을 공공도서관의 책들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누구나 쉽게 책을 접하고, 읽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다음에 ‘왜 책을 읽지 않나요?’라고 말할 수 있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그럼에도 책을 읽는 이유
책에 관해서 조금 개인적인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저는 책 읽는 걸 좋아합니다. 솔직히 말하면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많아야 한 달에 한 권, 일 년에 몇 권 정도. '평균 독서율' 간신히 걸치는 정도 였달까요. 연초마다 '책 읽기'를 하나의 목표로 세우고는 매번 목표로만 끝난 적이 많았습니다.
그러다가 2017년부터 본격적으로 책을 찾아 읽기 시작했고, 매년 꾸준히 보고 있습니다. 처음엔 소설만 읽다가, 점차 조금씩 영역을 확장해서 관심이 생기는 사회과학도서, 경제책은 놓지 않고 보려고 하고, 최근엔 도통 어렵긴 하지만 AI나 과학 관련 책들도 쫌쫌따리 도전하고 있습니다. 1권이 되고, 10권이 되고, 100권이 되다 보니 점차 읽는 것이 두렵지 않아 졌습니다.
특히, 지인들과 지속적인 독서모임을 하면서 서로를 독려하고, 개인적으로는 독서 기록앱을 쓰기 시작한 것이 책을 읽는 동인이 되었는데요. 그 중에서 기록앱인 ‘북적북적’을 즐겨 사용하고 있습니다. ‘북적북적’ 앱은 읽은 책을 등록하면, 하나하나 책이 쌓아지는 것처럼 구현이 되는데요. 이 단순하면서 직관적인 UI가 꽤 큰 동기부여가 됩니다. 쌓는 높이에 따라서 새로운 캐릭터를 얻을 수 있고요. 꼭 게임에서 레벨업을 하고 아이템을 획득하는 기분이 들어서 재밌습니다. 독서를 '게임화' 시켰달까요.
책은 혼자 읽는 것보다는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고, 인증하는 방식이 꽤나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제가 책을 좋아하는 이유는 나만의 속도로 호흡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건 종이책부터, 전자책(웹 소설 포함) 포함 마찬가지예요. 이미 정해진 틀 안에서 따라가야 하는 콘텐츠들은 창작자의 의도에 맞춰서 그 흐름에 맞춰 보아야만 하지만, 책은 다르죠. 작가와 내가 공유하는 공유하는 느낌이에요.
게다가 좋은 책은 작가의 피와 땀이 경험을 꾹꾹 눌러 담은 이야기와 지식이 담겨 있습니다. 작가가 만들어낸 세계를 통해 감흥을 느끼고, 지식을 깊이 있게 얻을 수 있는데요. 그저 방구석에서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그 문자들을 들여다보면 됩니다.
사실상 '개이득'인 셈!
좋은 책을 읽으면 충만감이 하늘에서 쏟아져 덮이는 기분이 듭니다. 때로는 이런 좋은 이야기들을 눈으로 쓱 하고, 순식간에 훑어가는 게 미안해질 때가 있습니다. 누군가는 이 한 장을 쓰기 위해 한 문장, 한 단어까지 고민하고 퇴고하고 또 퇴고하고를 반복했을 테니까요.
수많은 책을 깊이 있게 다루는 뉴스레터 인스피아를 연재하는 김지원 기자는 <지금도 책에서만 얻을 수 있는 것>이라는 책에서 "책은 자신이라는 비좁은 세계를 뚫고 나갈 수 있도록 해 주는 도구다. 책을 다양하게 함부로 읽을수록 나를 둘러싼 껍질은 더 자주 깨진다"라고 말했는데요. 무척 적확한 표현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텍스트는 힙하다?
독서는 너무 섹시하다
'텍스트 힙' 이 트렌드라고 합니다. 즉, 글로 된 콘텐츠가 힙한 것으로 각광을 받는다는 것이죠. 책을 읽는 것이 전 세계 Z세대 사이에서 '힙한' 문화가 되었다고 하는데요. 한국의 독서율을 생각하면…음? 하고 고개를 갸웃하게 됩니다.
1020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틱톡에선 책 관련 포스팅이 넘치고, 틱톡 자체가 책의 홍보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는 모양입니다. 지난해 해시태그 #booktok이 달린 틱톡 영상의 조회수는 총 910억 회를 상회해 전년도 조회수(600억 회)보다 51% 넘게 증가했다고 합니다. 영국출판협회(PA)가 10~20대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중 48%가 북톡에서 본 책을 구입하기 위해 서점을 방문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고 하죠. 심지어 틱톡이 출판사 상표를 출원한 후 일부 신인 작가들의 판권을 사들이기도 한 걸 보면 가능성을 본 것 같죠.
영국 가디언은 Z세대가 종이책을 사고, 도서관을 이용하는 비중이 증가했다면서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독서는 너무 섹시하다."
텍스트힙의 시대
최근 국내 인스타그램에서는 시를 다루는 '시스타그램' 이 화제라고 해요. 시집 판매량이 매년 꾸준히 늘고 있고, 젊은 세대의 유입이 눈에 띈다고도 하죠. 전문가들은 시 장르가 젊은 세대가 선호하는 짧은 글인 데다가 읽기 쉬운 서정시는 MZ세대의 감정을 위로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인기를 끄는 것으로 보고 있다고 합니다. 김수영 문학상 수상자로 화제를 모았던 박참새 시인이나 박준, 이제야 시인 등 시대를 반영한 언어로 시를 쓰는 젊은 시인들도 많고요. 게다가 노래 가사는 시의 다른 형태이기도 하니까요. 책은 읽지 않아도, 음악은 듣는 젊은 세대의 마음을 두드린 지점이 있을 겁니다.
'공항 책'을 들고 글을 쓰는 아이돌들이 사랑을 받는 것도 비슷한 맥락입니다. 아이돌이 읽는 책들, 팬들에게 남기는 글들은 화제가 되고 입덕 포인트가 되고 있습니다. 르세라핌의 허윤진, BTS의 RM은 책을 좋아하는 것으로 유명하고, 그들이 읽는 책은 팬이 아닌 사람들도 따라 읽게 만들죠.
아이돌이 직접 커뮤니케이션 하는 플랫폼(위버스, 버블 등)도 텍스트를 기반으로 하고 있는데요. 이미지가 아닌 텍스트 기반의 인스타 매거진도 인기를 끌고, 긴 글을 쓸 수 있는 블로그로 MZ세대들이 몰려오고 있습니다.
이런 Z세대의 텍스트를 추구하는 현상은 도파민, 숏폼 같은 주류에 반발하는 역트렌드 현상일까요? 인생샷의 반대기제로 일상을 날것으로 업로드하는 ‘포토덤프’가 유행이 되고, 소셜 미디어에 대한 피로감으로 아는 사람들끼리만 공유하는 폐쇄형 SNS ‘로켓 위젯’이 화제가 되는 것처럼 말이죠. 아니면 공식 조사에는 잡히지 않는 진짜 변화의 조짐일까요?
결론 : 책은 힙해질 수 있을까?
진짜든 아니든 Z세대가 책을 찾는 현상은 환영할만한 일입니다. 텍스트, 책을 읽는다는 것은 시끄럽고 자극적이고 일방적인 도파민 세계에서 벗어나 주체성을 회복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정부 데이터와 온라인에서 나타나는 반응의 차이를 보면서. ‘트렌드가 없는 것이 트렌드’인 세상, 사회가 점차 다양해진다면 이런 괴리가 더 커지지 않을까 생각을 했습니다. 숫자 뒤에 갖춰진 본질을 놓치지 않기 위해 작은 변화에도 주의를 기울어야겠지요.
TMI지만, 저의 집 근처에는 구립 도서관이 있습니다. 이사를 올 때 고려했던 것 중에 하나는 근처에 도서관이 있는지 여부였는데요. 그만큼 '책 접근성'이 무척 중요했습니다.
앞으로 AI가 쉽게 우리의 뇌를 대체하겠지만, AI가 만들어낸 정보 중에서 쓸모 있는 것을 선별하고 해석할 수 있는 능력. 그것은 독서에서 나온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