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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용준 Jul 30. 2024

여자는 야구의 미래다

20대 여성이 프로야구 사상 최초의 기록을 주도하고 있다.

지난 7월 6일 인천 SSG랜더스필드에서 2024 KBO리그 올스타전이 열렸다. 장맛비가 내릴지도 모른다는 예보가 있었음에도 입장권 2만 2500장이 모두 매진됐다. 올스타전은 3년째 매진을 이어가는 상황이라 새삼스럽지만 그 전날에 열린 2군 선수들의 퓨처스 올스타전에 역대 최다 유료 관중인 1만 1869명이 모였다는 건 분명 별 일이다. 올해 프로야구 인기가 심상치 않다.


올해 프로야구 누적관중은 전반기에만 600만 명을 돌파했다. 정확히 418 경기만의 기록으로 역대 시즌 중 가장 빠른 추세다. 지난해와 비교했을 때 동일 경기수 대비 관중은 32%가량 증가한 수치라고 한다. 지금까지 최다 관중 기록은 2017년에 기록한 840만 688명이었다. 올해에는 사상 최초로 천만 관중 돌파를 예견하고 있다. 가능성은 충분하다. 전반기 상황만 보면 한 경기 평균관중은 1만 4천 명이 넘기 때문에 후반기에 남은 302경기에서 이런 추세가 이어진다면 400만 관중은 너끈히 넘길 것이라는 전망이다. 


물론 어떤 변수가 생길지 모르고, 끝내 장담할 수 없는 일이다. 사실 시즌이 시작되기 전에는 비관적인 전망이 우세했다. 지난해 열린 WBC나 아시안게임 같은 국제대회에서 한국 야구 대표팀은 선수들의 이름값에 걸린 기대에 걸맞지 않은 졸전을 펼치며 비판을 받았고 관계자들은 야구를 ‘손절’할 팬들이 많을 것이라는 우려를 표했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올해의 야구장은 지난 여느 해보다 뜨겁다. 


올해 프로야구 대흥행의 이유로 꼽히는 건 치열한 순위 다툼과 전통 구단의 선전이다. 1위부터 10위까지 압도적인 강자가 없다. 1위와 10위의 게임차가 13게임에 불과하다. 많은 팬을 거느린 기아 타이거즈나 LG 트윈스, 삼성 라이온즈 같은 전통적인 명문구단이 선전하는 것도, 류현진의 복귀나 김도영이나 윤동희, 김영웅 등 젊은 신예 스타들의 등장도 하나의 이유로 꼽힌다. 하지만 이보다 중요한 이유가 있다. 예년보다 폭발적인 흥행세를 이끄는 건 새로운 팬덤의 출현이다. 


요즘 야구중계를 보면 관중석을 비추는 카메라에 젊은 여성 관객이 적잖게 보인다. 앵글을 넓게 잡아도 여성 관객으로 가득하다. 대체로 스케치북이나 화이트보드 같은 도구를 활용해 응원 문구를 적고 관람에 집중한다. 남녀끼리 함께하는 커플 관객도 있지만 둘셋 이상의 여성끼리 모여 앉은 것으로 추정되는 모습도 상당하다. 방송 카메라가 그런 자리만 선택해서 비추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숫자는 거짓말하지 않는다.


예매사이트에서 제공한 자료에 따르면 올해 프로야구 흥행을 견인한 주요 세대는 20대로 꼽힌다. 티켓링크와 인터파크의 통계에 따르면 20대 구매 비율은 각각 38.1%와 42.1%로 20%대 이하인 다른 세대보다 월등히 높다. 프로야구 입장권 구매자 중 20대 점유율이 4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성비로 보면 여성이 54.4%로 남성보다 많다. 그중 가장 높은 건 23.4%를 차지하는 20대 여성의 비율이다. 14.8%를 차지하는 20대 남성과도 현격한 격차를 보인다. 프로야구 40년 역사상 최초의 천만관중 돌파의 동력이 20대 여성이라는 것이 수치로 확연히 드러난다. 


20대 여성 관중의 유입은 프로야구 팬덤 문화에서도 새로운 물결을 일으키고 있다. 단순히 경기장을 찾는 20대 여성이 많아진 것을 넘어 자신이 응원하는 팀과 선수와 관련한 굿즈 소비에도 적극적이고, SNS를 통한 팬심 전파에도 열성이다. 프로야구에 관심을 갖는 것을 넘어 굿즈 소비에도 적극적인 팬을 의미하는 고관여팬 조사에서 구단을 막론하고 20대가 가장 높은 비율을 나타냈고, 역시 모든 구단의 고관여팬은 남성보다 여성 비율이 높았다. 응원팀 유니폼에 좋아하는 선수 이름과 백넘버를 마킹해서 입거나 관중석 앞에 걸어놓고 응원하는 여성이 카메라에도 적지 않게 걸린다.


요즘 인스타그램 프로필로 확인할 수 있는 Z세대 특징은 자신이 응원하는 스포츠를 정체성처럼 내건다는 것이다. 자신이 즐기거나 좋아하는 스포츠 종목이나 응원하는 팀과 선수에 관한 게시물을 하이라이트로 정리해 프로필에 전시한다는 것. 이처럼 스포츠에 대한 관심이 어느 때보다 지대한 젊은 여성들이 프로야구에도 새로운 활기를 일으키고 있다. 자신이 좋아하는 선수를 아이돌처럼 응원하는 여성 팬들은 유니폼은 물론 포토카드 구매에도 적극적이다. 한 편의점에서 출시된 KBO 프로야구 컬렉션 카드는 10개 구단의 140명 선수로 구성됐는데 첫 출시 물량이 사흘 만에 소진됐고 중고 거래 플랫폼에서 교환이나 거래 문의가 적지 않다. 


구단에서도 20대 여성 관중을 위한 팬서비스 기획에 열중이다. 프로야구 구단에서 운영하는 유튜브 공식 채널에서는 올해 ‘저녁 식사’ 콘텐츠가 눈에 띄게 증가했는데 선수들끼리 함께 식사를 하며 자신들의 지난 경기를 복기하거나 사적인 생각이나 마음을 허심탄회하게 털어놓는 대화를 나눈다. 일종의 비하인드 신 기획인 셈이다. 구단 역시 선수에 대한 애정이 충만한 팬의 심리를 프로 구단들이 적극적으로 이해하고 소통하며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는 세계적인 추세 안에서도 이색적인 변화다. 한국과 함께 야구의 인기가 높은 나라로 꼽히는 미국과 일본에서는 야구장을 찾는 관중의 연령대가 점점 높아지는 상황이다. 경기 시간이 길어서 지루하다고 여기는 젊은 세대는 야구를 볼 마음이 없다. 하지만 한국은 상황이 다르다. 입장권 구매 중위연령이 29세로 미국보다 16세나 어린 상황이다. 상당히 이례적이다. 덕분에 프로야구 경기가 펼쳐지는 야구장의 응원 문화도 달라지고 있다. 


팬 입장에서 응원팀의 승리는 당연히 중요하다. 하지만 팀의 순위가 낮아도 응원팀이라면 기꺼이 야구장을 찾아가 당일 경기의 선전을 응원한다. 승패와 순위에 연연하지 않고 그날의 응원을 즐기고 승리를 염원한다. 연고지에 따라 응원팀을 고르는 관성에서도 벗어나는 경우가 많다. 그만큼 지역 갈등의 요소도 사라지고 상대팀을 비방하는 행위에 집중하지 않는다. 상대와의 갈등보단 모두의 선전을 기원하는 경쟁을 응원한다. 덕분에 야구도, 응원도 한결 건강해졌다. 그렇게 천만 관중 돌파의 기운이 모이고 있다. 그러니까 여자는 야구의 미래다. 확실하다.


('VOGUE KOREA' 8월호에 쓴 칼럼을 재편집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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