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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용준 Oct 07. 2024

가을이 오면 떨어질 말들

행복도 불행도 아닌 다행이 이긴다.

전례 없이 더운 추석 연휴를 보내며 지난여름을 떠올렸습니다. 여름 복판에서 가을에 관한 책을 쓰며 다가올 가을을 떠올리던 나날이 9월 중순에도 식을 줄 모르는 열기 덕분에 더욱 생생했습니다. 어느 해보다도 가을의 선선함을 바라는 마음이 간절했습니다. 덕분에 한편으로는 계절도 이 책을 기다리며 가을을 유예하고 있는 게 아닐까 엉뚱한 생각을 품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이 책이 세상에 떨어질 즈음에는 가을도 한껏 다가오길 바라는 마음이 가득했는데 그새 밤에는 선선하다 못해 제법 쌀쌀하게 실감나는 가을 공기가 성큼 다가왔습니다. 그리고 <가을이 오면 떨어질 말들>이라는 제목이 무색하지 않게, 저의 단일한 에세이집도 나왔습니다. 마침내.


<가을이 오면 떨어질 말들>이라는 제목은 이 책을 쓸 결심을 하게 된 지난 6월에 떠올렸습니다. 책의 서문에도 쓴 말이기에 동어반복의 피로감을 더할 필요는 없겠습니다만, 가을에 관한 책이 아니라 가을을 닮은 이야기를 하나씩 떨어뜨려 보자는 심산으로 쓰다 보니 자연스럽게 떠오른 제목이었습니다. 지극히 사적인 사연과 단상과 관점과 상념을 하나하나 끌어와 벌리고 떨어뜨리는 와중에 지나치게 사사로운 책이 되는 건 아닐지 혼자 무색한 기분을 느끼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이것이 계절이라는 보편적인 인식을 사적으로 인식하고 사유하는 방식을 권하는 일이 될 수도 있으리라는 자유를 느끼기도 했습니다. 이 역시 지극히 개인적인 결론에 불과할지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이 책을 통해 저만의 완전한 가을을 소유하게 됐습니다. 그것이 이 한 권의 가을이 떨어져도 마땅한 합리라 여기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토록 사적인 가을을 타인에게 권할 이유도 필요하겠지요. 책은 쓸 결심만큼 팔 결심도 중요한 법이고요. 사람들은 행복하길 바랍니다. 불행보다 행복을 바라는 건 당연한 일이겠지만 가끔씩 우리는 지나치게 행복에 몰두하는 건 아닐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물론 그런 매일매일을 ‘퍼펙트 데이즈’처럼 여기며 달관하듯 행복하게 살아가는 이들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대체로 많은 이들은 무덤덤하게 반복되는 일상을 묵묵하게 살아가는 게 아닐까 종종 생각합니다. 그렇게 언젠가 다가올 한 점의 행복을 기다리며 일상의 너른 여백을 손쉽게 불행이라 규정하며 견디는 것에 익숙해진 이들이 얼마나 될까 궁금했습니다. 잠시나마 스마트폰 액정이 뿜어내는 도파민에 기대어 망각해 보는 분초가 그토록 길어지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겁니다. 


멀리 떨어진 행복을 바랄수록 도처에 널린 불행과 마주할 가능성이 보다 높아지는 역설은 저의 것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행복도 불행도 아닌 ‘다행’이 이기는 가을을 떠올렸습니다. 어쩌다 여기까지 살아온 인생이 마냥 무난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살아가고 있고, 살아갈 수 있다는 건 참 다행이지 않은가. 그렇게 별것 없는 삶에도 깃들고, 깃든 숱한 다행을 떠올리며 위안과 위로를 얻고, 나눌 자신과 용기를 품었습니다. <가을이 오면 떨어질 말들>은 그렇게 떨어뜨려 만난 저의 가을입니다. 이렇게 떨어뜨린 가을이 여러분에게도 위안과 위로와 자신과 용기로 고일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로소 선선하게 돌아온 이 가을에 다시 떠올려봅니다. 당신이 떨어뜨릴 당신의 가을을, 마침내.


가을은 다행히. 

가을엔 안녕히. 

당신의 가을도. 

민용준 떨어뜨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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