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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달림 Mar 09. 2021

최고의 에베레스트 뷰 포인트 칼라파타르

트레커가 오를 수 있는 최고점 5,545m

이번 트레킹의 최고의 날로 최고점을 오르는 날이다. 새벽 4시 반에 4,910m인 로부체 롯지를 출발 5,140m 고락셉에 도착하여 아침식사를 하고 최고 고도 칼라파트라(5,545m)를 오르고 다시 로부체로 돌아오는 일정이다. 고랍셉까지 대략 두 시간 반 정도 걸리고 마지막 칼라파타르까지 두 시간이 걸리니 중간 휴식을 포함하면 열 시간은 걸어야 한다. 평지에서 10시간 걷는 것도 쉽지 않은데 5천 미터 고산에서 온종일 걷는 고된 하루가 될 것 같다.

 

고소 예방을 위하여 수면 고도를 낮추고 교쿄리 일정을 맞추기 위해서 새벽녘에 출발했다. 새벽 4시 30분에 출발 시간을 맞추기 위해서는 4시에 일어나니 후배는 고소증으로 잠을 이루지 못하고 호흡곤란이 있어 이불을 뒤집어 쓰고 웅크리고 있다.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단다.


나는 그래도 고소 적응이 된 탓인지 디보체 이후 잠을 그런대로 잘 자고 있는 편이다. 고소는 극복하는 게 아닌 자연에 적응하는 것이다. 몸이 필요로 하는 산소량이 부족할 시는 호흡곤란이 일어난다. 그때는 심호흡으로 호흡하면 호흡곤란은 멎었다. 다행인 것은 머리가 아프거나 한기가 느껴지지 않으니 심한 고소증이 아닌 것에 안도하고  출발 준비를 하였다. 


새벽 5시 로부체 롯지를 나서니 사방은 잠들어 있고 칠흑 같은 어두움만 가득하다. 옷 속을 파고드는 에베레스트의 한기를 느끼며 헤드랜턴의 불빛만 보고 걷는다. 쿰부 에베레스트 하늘에도 달이 떠 있다. 달을 보니 불현듯 집 생각이 난다. 


사방이 점점 밝아 오더니 하루가 시작이 된다. 주변은 온통 돌길이고 돌 들 사이로 길이 있다. 그 길을 걷고 있다. 고락셉은 해발 5,170m로 에베레스트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롯지다. 여기를 깃점으로 칼라파타르와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EBC)를 다녀온다.

 

새벽에 길을 나서 고락셉 가는 길의 풍경들 


어둠 속에 말없이 걷는다. 아니 말이 필요가 없고 말을 하기도 힘들다. 움직임 자체도 굼벵이가 기어가듯 천천히 걸어도 연신 숨이 차서 입으로 거친 호흡을 하며 걸었다. 길은 비교적 완만하다. 불빛을 쫓아 걷다 보면 어디에 쿰부 빙하가 있는지 전혀 분간을 할 수 없다. 굳이 보이지 않는 것을 보려고 애를 쓸 필요도 없다.  들리는 건 내 발자국 소리와 호흡소리뿐이다.


설산에 들어선 고락셉 가는 길의 풍경


고도 200m를 높여 쿰부 지역에서는 가장 높은 롯지인 고락셉에 도착하였다.  고락셉은 고원 분지다. 수천 미터의 고봉이 삥 들러 선 곳으로 사막처럼 모래밭으로 된 분지에는 물이 고여 얼음이 얼어 있다.  밀크티와 토스트로 간단한 아침식사를 끝내고 칼라파타르로 향했다. 고도 5,000m를 넘으면 고산에서 몸이 쉽게 피로하고 입맛도 떨어지며 금방 몸이 지친다. 


트레커들이 오를 수 있는 최고의 높이에 자리한 고락셉 롯지 풍경들
고락셉 롯지 내부 풍경


호수가 얼음판 앞에서 길은 두 갈래로 갈라진다. 곧장 가면 5,364m에 있는 Ebc로 가는 길이고 왼쪽 길을 걸으면 5,545m의 칼라파타르로 올라간다. 점점 경사가 심한 산으로 오른다. 몸은 많이 지쳤지만  이런 고통도 극복하게 하는 마음은 그간 여기를 오려고 얼마나 기다려 왔던가.  5,000m 고산의 풍경은 지금과는 달라져 식물은 없으며 그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황폐하고 단순하고 더 강렬해진 그래서 더 거친 설산의 고산이다. 


고락셉 호수를 지나 칼라파타르로 가는 길과 뒤돌아 본 고락셉 롯지 풍경


칼라파타르는 고락셉에서 보면 푸모리(7,161m) 봉이 보이고 그 앞에 있는 삿갓모양의 검은색 언덕이다. 일명 "검은 바위"로 불리기도 하는데 그곳에 있는 바위가 모두 검기 때문이다. 보기에는 쉽게 오를 수 있는 곳으로 생각되지만 막상 올라 보면 고도 5,000m 이상에서 언덕을 올라가는 게 얼마나 힘든지 새삼 느껴진다. 숨이 턱턱 막히는 언덕길을 몇 걸음 걷지 못하고 스틱에 의지해 입을 최대한 벌리고 입과 코로 공기를 최대한 마시고 한걸음 한걸음 높이를 더해 간다. 그리고 더 숨이 차면 서서 스틱에 의지하여 허리를 굽히고 학! 학! 하면서 호흡이 조절될 때까지 기다렸다가 다시 걷는다. 


쿰부 빙하(좌) 삿갈 모양의 검은 바위라는 칼라파트르로 오르는 길(우)
세계 최고로 높은 산 에베레스트(좌) 쿰부빙하(우)
길게 흘러내리는 쿰부 빙하


비스타리! 비스타리!로 천천히 오르면서 뒤를 돌아보니 후배는 배낭도 포터에게 맡기고 많이 떨어져 올라오고  있다. 숨은 차지만 조금씩 조금씩 한 발짝 한 발짝 높여가니 고락셉 롯지가 아래로 멀어져 보인다. 그리고 만년빙하를 머리에 인 설봉들이 스카이 라인 너머로 짙은 청동빛 봉우리가 솟아 있다. 그게 바로 세계의 최고봉 8,848m 에베레스트다.

 

설산 뒤로 검게 보이는 산이 최고 높이를 자랑하는 에베레스트(8,848m)


오르면서 많은 생각을 했다. 이제 이보다 더 높은 곳을 오를 날이 올까? 어쩌면 마지막 최고봉은 되지 않을까?  높이 오르려면 천천히 올라야 한다. 정상에는 쵸르텐과 무수히 펄럭이는 타르쵸가 강한 바람에 펄럭인다. 뒤로는 푸모리(7,165m)가 있고 옆으로는 링트렌(8,749m) 그리고 연이어 쿰부체, 눕체,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는 워낙 높아 눈은 쌓여 있지 않고 눈보라로 인해 설연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트레커가 오를 수 있는 최고의 높이인 칼라파타르 5,545m에 섰다.


다행히 고소로 인한 두통을 걱정했지만 불편한 곳을 없었고 한 발짝 한 걸음씩 높이를 더해 칼라파타르 정상에 섰다. 가슴 뭉클한 감동이 밀려온다. 여기 오르려고 며칠을 걸었던가? 그 정점에 내가 섰다!  좋다. 그냥 좋다. 여기까지 온 길들이 주마등 처럼 스쳐 간다. 그리고 그간 살아온 시간도 그려진다. 오를 수 있는 최고봉이 주는 선물이다. 박범신 작가님은 칼라파타르에 올라 이렇게 썼다.




 " 악을 써가며 해발 5,545미터의 이곳에 올라와 쓰러져 앉아서, 내가 마지막 시선을 보내는 곳은 빙하층의 거친 굴곡이나, 닿으면 그래도 베이고 말 것 같은 빙벽들의 스카이 라인이 아니라, 그 너머 , 그 위의 투명한 허공입니다. 내가 카트만두에서 보았던 허공이고 서울에서 보았던 허공이고, 또 고향마을을 등지고 떠나면서 보았던 그 허공을 나는 겨우 보고 있습니다.


나는 비로소 눈물겹게 확인합니다. 


불멸의 주인은 에베레스트가 아니라는 것을. 오르고 또 올라도 허공을 넘어설 수 없다는 것을. 모든 길은 허공에서 시작되고 갈라지고 끝난다는 것을요. 그리고 존재하는 모두가 슬픈 것 역시 존재하는 것 스스로 허공이 될 수 없기 때문이라는 것을요."



칼라파타르 정상에서 만난 텃새와 타르쵸 그리고 칼라파타르 모습


바람이 거세게 불긴 했지만 추위를 생각해서 겨울 복장을 단단히 챙겨 입고 올라왔기에 견딜만하다. 바윗돌에 앉아 내려 다 본다. 쿰부 빙하 건너편에서 눈이 와르르 무너져 내리며 굉음을 낸다.  연신 무너져 내리는 설산을 보니 무서움이 느껴진다. 산은 늘 인자하고 자애로운 얼굴은 아니다.

 

고락셉 호수에 내려앉은 헬기는 응급 환자 수송 혹은 식료품 운반
수천미터 고봉으로 둘러싼 쿰부 에베레스트(좌) 고락셉의 두개  롯지(우)


30여분을 기다린 끝에 후배가 포터와 함께 힘겹게 올라왔다. 준비한 플래카드를 들고 함께 사진을 찍고 그간 함께 고생한 포터들과도 기념사진을 찍었다. 칼라파타르 정상은 매서운 바람으로 오래 머물지는 못했다. 언제나 오르면 내려와야 하고 그곳이 내 것일 수는 없는 것 아닌가. 준비해 간 플래카드는 칼라파트라 타르쵸와 함께 그곳에 묶어 두었다. 아쉬움에 에베레스트를 눈에 한번 더 담아두고 하산을 시작했다. 


하산길은 편했다. 고락셉 호수로 내려가는 길은 빠르게 내려올 수 있었다. 아쉬움에 잠시 뒤를 돌아보고 내려오면서 "여길 다시 올 수  있는 기회가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오르기는 힘들어도 내려오는 것은 쉽다. 고산에서 오름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몸으로 느꼈다.  


고락셉의 롯지 풍경
푸모리봉 아래 작은 검은 산이 칼라파타르(5,545m)

점심은 고락셉 롯지에서 카레로 먹고 새벽에 올랐던 길을 따라 내려왔다. 칼라파타르를 오른탓인지 로부체로 돌아오는 길은 편했다. 로부체에 도착하니 12:50. 로부체 ~ 고락셉 ~ 칼라파트라 ~ 고락셉 ~ 로부체를  2끼 식사시간을 포함해서 8시간 좀 더 걸렸다. 예상외로 빨리 다녀왔다.


이제 남은 길은 촐라패스와 교쿄리가 남았다. 일정상 부담 없는 남은 여정이다. 내일은 로부체에서 종라로 가는데 오히려 고도가 4,830m로 100m 고도가 낮아진다. 그리고 다음날 촐라패스는 5,360m로 고도 500m를 극복해야 한다. 오후 한가한 시간에 칼라파타르에서 찍은 사진을 보니 수염이 많이도 자랐다. 고소 예방을 위하여 면도뿐만 아니라 샤워도 하지 못했고 세수도 물티슈로 닦고 자외선 차단제를 바르는 게 고작이다. 길게 자란 수염이 자연인이 다 되었고 네팔리안이 되어 가는 게 가관이다. 


로부체로 돌아가는 길의 풍경


목표한 정상을 다녀와 긴장이 풀린 탓인가. 고산 생활이 조금은 지겹고 힘들다는 생각이 든다. 고산으로 오르면서 고도가 높을수록 음식은 점점 척박해지고 숙소 환경도 더 열악해지고 기후 또한 적응하기 힘들게 추우니 서서히 지쳐가는 것 같다. 무료하고 지루한 시간을 보내기가 힘든다. 된장찌개, 김치찌개가 먹고 싶고 갈치조림, 자장면도 그립다. 까칠해진 입맛에 맛있게 먹었던 음식이 자꾸만 생각난다.


로부체 롯지촌

4,910m 고산에서 있는 로부체 롯지는 황량하기 그지없다. 이제는 서울에 있는 따뜻한 집이 그립고 가족도 보고 싶다. 오늘 칼라파트라 오른 장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지만 로부체에서는 Wi-Fi가 되지 않는다. 이번 트레킹이 끝나고 집으로 고생한 만큼 에베레스트가 많이 그리워질 것 같다. 그때를 생각해서 좀 더 용감해져야겠고 지금을 즐겨야겠다. 


창밖에는 흰 눈만 날리고 쿰부 에베레스트의 한 겨울 같은 바람이 씽씽 부는데 롯지 안은 불기 하나 없는 냉골로 썰렁하기만 하다. 겨울 파카를 입고 장갑을 낀 채 시간을 보내기 위해 "창문 너머 도망친 100세 노인"을 두 번째 읽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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