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가을의 전설을 쓰다.
마라톤 입문하던 1999년 10월 24일 춘천공설운동에서 출발하여 의암호를 한 바퀴 돌고 오는 마라톤 풀코스를 처음으로 달린 대회가 춘천마라톤대회였다. 지금은 공지천 앞에서 출발했지만 그때는 공설운동장에서 출발하고 피니쉬도 같은 곳에서 했다.
마라톤 꾼들은 첫 풀코스 완주를 하면 머리를 올렸다 한다. 당시 기록이 3시간 37분 07초였고 하프지점까지는 잘 달렸으나 춘천댐을 지나고 30km 지점부터 인간 한계의 벽을 느꼈다.
마라톤에 입문을 하기 전에는 등산을 자주하여 10시간 산행도 거뜬히 해냈으니 그리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러나 마라톤은 달랐고 후반 바닥난 체력은 급기야 쥐가 올라오고 걷다 뛰다가를 반복하며 악전고투한 고행의 시간이었다.
처참하게 무너진 자신에 화가 나기도 하고 자존심을 크게 상하여 이를 앙다물고 중랑천에서 한강에서 남산에서 혹독한 1년간 훈련 끝에 2000년 10월 22일 대회는 2시간 47분 30초로 보기 좋게 서브 3으로 설욕했다.
코로나로 모든 게 멈추어진 3년을 쉬고 작년에는 3시간 15분 36초로 완주하였고 이번 대회가 풀코스 185회 도전이다. 한해 한해 차곡차곡 쌓이는 나이는 올해 또 한 살 늘었으니 목표를 어떻게 잡아야 할지 걱정스러웠다. 20일 전에 출전한 서울 강남 국제평화마라톤대회에서는 3:20:46으로 완주했으니 작년과 비슷한 기록도 괜찮겠단 생각하였다.
대회 출발시간은 아침 9시를 맞추려면 용산역에서 첫차인 6시 15분에 출발하는 ITX청춘을 타고 남춘천역에 내렸다. 앞서 가시는 분이 낯이 익은 운동생리학박사인 이*희 님을 만났다. 그분도 58 개띠로 대회장 가는 길에 60대 이후 페이스 조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박사 님은 몸의 에너지를 휘발유와 경유로 비교하면서 휘발유는 스피드, 경유는 지구력으로 그걸 2:8 혹은 3:7의 비율로 연료를 잘 사용해야 효율적인 달리기가 된다고 했다. 불을 지필 때는 잔가지로 불을 붙이고 장작을 넣어야 잘 타지 장작을 넣고 냅따 휘발유를 뿌리고 불을 붙이면 장작이 잘 타지 않는다는 예를 들면서 알아듣기 쉽게 설명해 줬다. 특강을 잘 듣고 내심 싱글로 목표를 잡았다.
복장을 챙겨 입을 때 띠동갑인 후배는 코로나 전에는 기록엔 라이벌이었는데 그간 3년의 공백기에 기록이 밀렸다고 엄살을 떤다. 방정맞게 잘 뛴다고 하면 혹여 마가 낄까 조심한다. 잘 뛰라고 응원해 주고공지천 뚝방에서 출발 전 몸풀기 달리기를 해보니 몸이 가볍다는 느낌이 좋다. 8도의 기온에 상큼한 공기 맛은 신선함이 느껴진다.
춘천마라톤 대회는 3시간 이전 기록보유자는 A그룹 3시간대 기록자는 모두 B그룹이다. 그룹의 20% 앞쪽에 자리 잡고 출발준비를 했다.
전국에서 모여든 달림이 들은 저마다 그간 훈련을 해온 성적표를 받는 날이라 상기되고 들뜬 기분이다.
잠시 눈을 감고 달려갈 길을 그려 본다. 출발부터 만나는 오르막, 반환코스, 다음 내리막, 의암댐.... '잘할 수 있어.' 마음을 다잡고 가벼운 제자리 발놀림으로 출발 신호를 기다렸다.
코로나 이전만 해도 지인이 많더니 이제 가뭄에 콩 나듯 하다. 그런 홀가분함도 나쁘진 않다. 어차피 105길은 내가 오롯이 짊어질 짐이다. 의정부에서 오신 조*현 님을 만났다.
띠 동갑 정도 젊은 분인데 페이스가 비슷하다. 오늘 레이스를 물으니 초반은 km당 440으로 시작하여 속도를 높여 간단다. 나랑 비슷한 작전이다.
9시 정각에 엘리트 선수와 A그룹 서브 3 주자들이 동시에 출발하고 3분 후에 B그룹 출발이다. 춘천코스는 출발부터 은근한 오르막으로 시작이 된다. 첫 1km가 4분 43초이고 다음 1km가 4분 32초가 찍힌다.
호흡도 거칠지 않고 다리에 부담도 없어 그대로 몸이 가는 데로 밀어 본다. 강원체고 앞 돌아 나오는 반환길을 달리는데 "반갑습니다.' 인사를 하신다. 누구가 하고 돌아보니 부산에서 오신 태권브이님이다.
주로에서 뵙지요 했는데 이 많은 사람 중에 용케도 알아보시고 인사해 주니 반갑고도 금방 헤어지니 미안하다.
이제 내리막길에 힘 빼고 빙상장 입구로 달리니 몸이 적응을 하기 시작한다. 첫 5km를 22분 56초로 무리 없이 달렸으니 이대로 페이스만 유지하면 된다. 예전에는 의암댐 터널을 지날 때 주자로 빼곡했지만 약간은 썰렁하다. 대구마라톤클럽에서 온 여성 주자가 거친 호흡으로 기를 쓰고 달리기에 파이팅을 외쳐주고 의암댐을 넘었다. 8km를 지났으니 몸이 잘 가동된다. 5km마다 22분대는 뛸 수 있을 것 같다.
의정부에서 온 그분과 동반 주로 달렸다. 초반에 오버페이스를 하지 않으려면 페이스가 비슷한 주자를 찾아 같이 달리면 페이스 조절이 한결 쉽다. 초반에는 쓩하고 달리는 분당검프의 유*대님을 여기서 만났다. 훈련량이 적어 천천히 간단다. 마라톤은 믿을게 자신뿐이다. 그건 본인이 제일 잘 알고 있으니 페이스는 본인의 영역이다. 삼악산 등산로 입구를 지나 한림대 연수원 입구까지 10km도 페이스 조절이 딱 좋다. 발걸음과 호흡 그리고 팔 치기 삼박자가 딱 맞아 떨어진다.
15km 박사마을로 가는 길은 비교적 평지라 부담이 없다. 아침부터 흐린 날씨에 강바람도 있어 땀을 식혀 주니 달리기 딱 좋은 날씨다. 오른쪽으로 의암호를 바라보기도 하며 오랜만에 마음의 평화를 찾는다. 5km 구간기록이 22분 05초로 점점 빨라진다. 20km 지점은 신매대교 입구에 있다.
강원에니고등학교 가는 길인 17km 지점에서 오르막길을 빠르게 치고 오르니 같이 달리던 분이 뒤로 쳐진다. 기다려 줄 수는 없고 페이스대로 달리니 따라와 붙는다.
신매대교는 각 마라톤 클럽에서 오신 분과 가족이 응원을 하는 곳이다. "당신은 멋쟁이!" "최고!" "힘내세요." 강렬한 응원소리에 다리에 힘이 절로 들어간다. 신매대교를 돌아 나오니 하프지점을 지난다. 1시간 34분 46초로 이대로만 달리면 싱글이 가능하겠단 생각이 든다.
하프지점을 지나니 걸음이 둔한 주자들이 보인다. 이제부터는 추월의 시작된다. 페이스를 늦추지 않고 달리니 계속 앞설 수 있다. 24km 지점에서 동반주하던 분이 도저히 못 참겠다고 화장실을 간단다. 헐? 이제 나 홀로 독주가 시작된다.
서상대교 전 25km 급수지점에 에너지 보충용으로 파워겔을 받아먹고 춘천댐까지 오름을 올라야 한다. 은근한 오름길에서 점점 걸음이 둔해지는 주자를 앞서 춘천댐에 올랐다. 첫 번째 고생 끝이고 내림이 많은 길을 달린다. 험한 춘천댐 오름길에도 그리 밀리지 않고 22분대를 유지했다.
30km로 가는 길에는 TV조선에서 촬영을 한다. 웬 어르신이 젊은이 보다 앞서 달려오는 게 신기했나 보다. 앞선 젊은 친구들이 서서히 지쳐가니 발걸음이 둔해진다. 32km 지점에서 여성부 입상권인 여성주자가 힘겹게 달리고 있다. 이름도 불러 주면서 힘내라고 '파이팅'을 외쳐주고 터널을 지나니 4차선 대로가 펼쳐진다. 아직 조련된 말처럼 속도도 잘 유지되고 있다. 이대로만 가면 '싱글이다.'를 나에게 알려주며 동기를 부여했다.
35km를 지나니 한때 마라톤 동지로 주로를 함께 달렸던 100회 마라톤 클럽 남궁*영 님이 시원한 콜라 한잔을 건네준다. 더위를 식혀 주려고 한잔 쭉 마셔주고 가속을 해본다. 나이 지긋한 어르신이 젊은이를 앞서 달리니 엄치를 치켜 세우며 큰 박수로 응원을 해준다. '고래도 칭찬을 하면 춤을 춘다.' 했다. 그 응원에 힘입어 페이스를 늦추지 않고 밀어 붙이니 제2소양교다. 역시나 38km부터는 마의 길이다. 지금까지는 몸이 달렸다면 이제부터는 정신력으로 달린다. 그래서 신이 달린다고 한다.
다리 입구에서 대구에서 오신 이*제님이 이름을 불러 주며 '파이팅' 하며 사진을 담아 준다. 이제 39km를 지났다. 이 길이 가장 지루한 길이다.
40km 급수대는 통과하고 싱글을 위해 집중해 본다. 길 오른쪽에 기다리는 그녀에게 눈길 한번 주기 힘든 몸이다. 해마가 가장 힘든 지점에서 기다려 주는 그녀는 소양강 처녀다.
41km를 지나니 남은 거리 1km란 표지가 있다. 시계로 확인하니 5분 이상이 남아 싱글이 가능하다. 그렇다고 천천히 갈 수는 없지 않은가.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 보자고 스피드를 올려 달리는데 한강 마라톤 클럽의 젊은 친구는 키가 185cm는 될 것 같고 몸매도 좋다.
서브 3 하려다가 포기했다며 동반주를 하잖다. 마다할 이유가 없어 그대로 결승선을 향해 달리니 얼굴이 일그러 진다. 안간힘을 쓰면서 피니쉬 라인을 통과하니 마지막에는매 km당구간기록이 4자에서 3자까지 봤다.
이번 춘마는 계획대로 제대로 맞아 떨어진 최상의 시나리오 대로 연출한 대회였다. 매 5km 기록이 22분대를 유지하여 작년 기록 3시간 15분 34초를 6분 38초를 앞 당겨 3시간 08분 56초로 완주하였고 풀코스 185회 완주를 하였다. 참 기분 좋은 날이었다. 마라톤은 진실하다. 땀 흘린 만큼 기록으로 보상받는 가장 단순하면서 우직한 내가 관객이 아닌 주인공이 되는 경기다. 그 6분 38초 숫자가 주는 의미는 내게 크게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