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뮤어 트레일
2015년 겨울에 영화 "와일드(Wild)"를 감명 깊게 본 적이 있다. 이 영화는 실화를 배경으로 제작되었으며 가난한 삶, 폭력적인 아빠, 부모의 이혼으로 불우했던 유년 시절을 지나 엄마와 함께 행복한 인생을 맞이하려는 찰나 유일한 삶의 희망이자 온몸을 다해 의지했던 엄마가 갑작스럽게 암으로 세상을 떠난다.
엄마의 죽음 이후 인생을 포기한 주인공 '셰릴 스트레이드'는 남편과 이혼을 하고 마약 중독자가 되고 외도를 일삼으면서 스스로 자신의 삶을 파괴해가고 있는데 어느 날 엄마의 자랑스러워했던 딸로 돌아가기 위해 '악마의 코스'로 불리는 Pct 길을 걷기로 한다. 그 길은 눈 덮인 고산과 그늘 한점 없는 사막이 있으며 황야가 펼쳐지는 길로 거친 자연 속에 온갖 육체적 피로와 고통, 외로움, 두려움을 극복하고 그 길을 완주하고 새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얻게 되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너 자신의 최고의 모습을 찾고 그 모습을 찾으면 끝까지 지켜내라.'는 엄마의 말이 강한 동기부여가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주인공은 '인생이란 얼마나 예측 불허의 것인가? 그러니 흘러가는 데로 그대로 내버려 둘 수밖에.'란 대사가 지금도 생생하게 들려온다. 그 Pct(Pacific Crest Trail)의 길중에 존 뮤어트레일(Jmt) 길이 함께 있다.
존 뮤어 트레일은 세계 3대 트레일 코스 중 하나다. 첫 번째가 스페인의 카미노 길. 그 길은 2년 전에 걸은 적이 있다. 나의 위시리스트에는 존 뮤어 트레일이 있었다. 험한 길인 만큼 좀 더 젊을 때 걷고 싶었다. 그래서 위시리스트를 작성할 때 힘들고 험한 길은 우선순위에 두었다. 그 훈련의 일환으로 5월에 제주 올레길 전구간을 걸으며 걷기 근육을 단련해 두었다. 달리기는 늘상 하지만 달리는 근육과 걷는 근육은 사용 자체가 다르다. 맞춤훈련으로 제주 올레길과 한라산 성판악코스와 영실 남벽 코스는 존 뮤어 트레일에 큰 도움이 되었다.
그럼 존 뮤어는 누구일까? 그는 스코틀랜드 던바에서 태어나 아버지를 따라 1849년 미국으로 이주한 뒤 성인이 될 때까지 위스콘신 주의 킹스턴에서 살았다. 위스콘신 대학에서 공부하다가 인간이 만든 대학을 마치지 않고 29세에 ‘뒷마당의 울타리를 뛰어넘어 자연이라는 대학’에 들어갔다. 1868년 네바다, 유타, 오리건, 워싱턴, 알래스카 등을 탐사 여행하면서 빙하와 숲을 관찰한 뒤 요세미티 계곡에 살면서 고대의 빙하가 흘러내리며 절벽을 만들고 호수를 파내고 골짜기 지형을 만들었음을 알아냈다.
뮤어는 금광개발과 벌목으로 서부의 산림지대가 훼손되자 이를 지키기 위해 1992년 현재 60만 회원을 가진 환경보호단체 ‘시에라 클럽’을 만들어 초대 회장으로 취임한다. 이 단체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환경보호운동단체의 하나로 전 세계 65만 명이 넘는 회원수를 가지고 있다. 산악인들이 필수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손잡이 달린 다용도 컵인 '시에라 컵'은 이 단체에서 기금을 마련하기 위해서 판매한 데서 비롯된 것이다.
말년에 그는 서부 산림지대에서 루스벨트 대통령을 요세미티로 초청하는 등 자연보호에 힘을 솟았고 시에라 클럽 회원들과 함께 국립공원 지정을 위해 대통령을 설득하고 의회에 탄원을 해서 '국립공원 제정법'을 통과시켰으며 요세미티, 그랜드 캐니언 등 많은 곳이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지금까지 잘 보전되고 있다.
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시에라 클럽' 회원들이 1938년 요세미티에서 시에라 네바다 산맥을 거쳐 휘트니 산(4,418m)에 이르는 358km의 산길을 만들었는데 그게 바로 '존 뮤어 트레일(John Muir Trail)'이다.
2018년 7월 25일 이른 시간인 07:10 인천공항을 출발해 중간 경유지인 타이베이 타오 위엔 공항을 경유해 LA에는 같은 날 아침 8시에 Lax공항에 도착했다. 14시간이 지났음에도 같은 날 비슷한 시간이다. 시공을 초월한 것도 아니고 결국 시간이란 인간이 만든 평범한 규칙의 틀일 뿐이고 그걸 서로 약속하고 사용하는 것일 뿐이다. 밤이 분명 지나갔고 어둠도 있었고 하늘엔 달고 별도 있었다. 새로운 날이 밝았는데 아직도 같은 날 아침이란다.
비교적 입국심사가 까다롭다는 미국의 입국절차는 'EAST' 받고 와야 한다. 자동 기계 앞에 서서 좌우 엄지의 지문을 스켄하고 그다음은 전자여권을 스켄하고 나면 자동화기기에서 신상명세가 적힌 출력물이 나온다. 이것을 가지고 입국심사관 앞으로 가는 줄을 따라가면 된다. 그런데 그 출력물에 크게 흐릿하게 '×'자 표시가 선명하다. 걱정이 되어 길을 안내하는 분에게 '×'표시가 있는데 괜찮야 고 물으니 '노 프러븜'이라 한다. 미국 땅도 밟아 보지 못하나 하고 괜히 걱정했다.
심사는 더디게 진행이 되었다. 그래도 마음이 좋아 보이는 여자 심사관 앞에 여권을 내미니 쭉 훑어보고는 "How long stay?"
"One month", 그리고 지문 찍고 얼굴 사진 찍고, 왜 왔느냐고 묻기에 '휘트니에서 요세미티 해피 아일까지 걷는 길인 Jmt를 걸으러 왔다'라고 하니 'Whitney? Amazing.' 하면서 스탬프를 '꽝' 찍어 준다.
입국심사장을 빠져나오니 금세 수화물이 나온다. 세관을 나올 때 처음 자동화 기기에서 출력한 인쇄물을 제출하고 나오면 된다. 공항 밖은 훅 하는 느낌이 들 정도로 여름의 열기가 대단한다. LA도 올여름은 더워 100℉라 하니 42℃의 기온으로 다행한 건 습도가 낮아 그래도 그늘은 시원하다.
미국의 첫인상은 美國은 아름다운 나라인데 아름다운 나라는 아닌 것 같다. 나라는 세계 최대 강국임을 자처 하지만 국민은 세계 최강에 걸맞게 살아가고 있지는 않은 것 같다. 우리네 서울과 같이 현실은 생존경쟁이 치열한 지구촌의 그 하나의 도시에 지나지 않는 것 같다. 한국에서 만났던 폼나고 멋진 신사, 숙녀가 아닌 하나의 생활인일 뿐이었다.
사막의 끝자락에 위치한 La 시내도 녹음도 숲도 그리 많지 않은 그냥 평범한 도시 그 자체였지만 서울만 해도 작은 자투리 땅도 그냥 두지 않고 나무를 심고 꽃을 가꾸어 푸른 도시를 만드는 곳에 비하면 방치된 공간이 너무나 많다. 땅이 크고 넓어서 일까? La공항 앞 길바닥에서 Jmt를 걸을 때는 늘 휴대해야 하는 식량을 담을 곰 통을 받았다. 나머지 식품인 반찬을 분배받아 정리하고 11시나 되었어야 Lax공항을 출발할 수 있었다. 제일 먼저 들리 곳은 REI 등산장비점.
JMT를 종주하면서 시에라 컵을 사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 같아 이곳 장비점에서 구입하려고 했는데 시에라 컵 자체가 없다. 할 수없이 스노피크에서 만든 밥그릇과 트레일중에 사용할 천연비누와 Tom Harrison에서 나온 John Muir Trail 지도 15장짜리를 $21.95에 구입했다.
인근에 있는 한인식당에서 도가니탕을 주문했는데 옆에는 1978년 이곳으로 이민을 오신 한인 노부부를 만났다. 그분들은 냉면을 주문했는데 곁들여 나온 갈비는 치아가 좋지 않아 질겨서 씹을 수가 없어 먹질 못하신다고 먹으라고 밀어 주신다. 나이가 주는 의미 탓인지 쓸쓸해 보였고 차라리 수구초심이라고 이제 고향으로 돌아와 사는 게 더 아름답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곳의 생수병인 스마트 1L 물병을 챙겼는데 이게 JMT 걷는 동안 사용할 물병이다. 날씬하게 생겨 배낭 옆에 꽂기도 좋고 사용하기 딱 좋은 물병이다. 트레일의 들머리인 론파인으로 가는 길은 차창밖으로 사막이 연이어 이어진다. 모하비 사막(Mojave Desert)으로 평균 고도 600m의 분지이다. 예전부터 모하비 인디언이 이 지역에 살고 있는 데 인디 언어로 모하비는 '세 개의 산'이라는 뜻이다. 우물을 파서 농작물을 재배하며 목축을 하는 데스벨리(Death Valley)가 이곳에 있다.
사막의 열기가 뜨겁게 느껴지는 차창 밖은 이런 곳에 살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마저 든다. 저녁식사는 미국 본토에서 제대로 된 정통 스테이크 집에서 맥주와 와인을 함께 했다. 확실히 스테이크의 본고장답게 두툼한 게 육즙이 가득하고 질기지 않은 게 엄지 척이다. 모든 것을 말려 버릴 듯이 따가운 밖의 기온이지만 이곳은 실내 냉방이 잘되어 시원하다. 여기서 살려면 에어컨은 필수품 중에도 필수다.
저녁식사 중에 출정식으로 각자 출정 소감을 말하는 기회가 있었는데 "한 달 정도의 트레킹을 하려면 여행의 3대 조건인 체력, 시간, 그리고 경제적 여유가 있는 우리는 행복한 트레커다. 힘든 트레일 속에서 몸이 피곤해지면 마음도 여유가 없어 사소한 말한 미디가 상대로 하여금 상처를 줄 수 있으니 말 한 미디에도 신중하게 상대에게 상처를 주는 말을 삼가였으면 좋겠다."라고 그리고 "여행은 자유를 찾아 일상 탈출한 것인데 지나친 통제보다는 보다 많은 개인의 자유를 줬으면 좋겠다." 란 말을 했다.
트레일이란 하나의 공통분모가 있기에 긴 시간과 큰 비용을 지불하고 이곳까지 오지 않았는가. 함께하는 시간에 서로 웃는 얼굴로 끝까지 함께 하길 소망해 본다. 여행은 자유를 찾는 행위다. 미국의 첫밤이 저문다. 켈 포니아 남부 Ridgecrest란 곳의 America Inn인데 숙소의 기본은 2인 1실인데 3인 1실도 있다. 그런데 여기 숙소는 엑스트라 배드가 없다. 2인 1실을 배정받았는데 그렇지 못한 일행에 괜히 미안해 질일이 아닌데 미안해진다. 미국의 첫날이 저문다. 미국의 땅은 모두에게 아름다운 축복의 땅은 아닌 것 같다.
내일은 이곳에서 더 북쪽으로 달려 휘트니 포탈(Whitney Portal)에서 존 뮤어 퍼밋을 받고 론파인(Lon Fine)에서 점심을 먹고 트레일의 들머리인 호슈수 메도우(Horseshoe Meadows) 캠핑장까지 이동이다. 본격적인 트레킹에 앞서 기대감으로 약간의 떨림이 있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