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군의 주둔지 레온Leon 지나 산 마르텐 델 카미노

카미노 길에서 달걀 삶는 법 배우기

by 산달림

아침 6시에 좀 여유 있게 아르카우메하를 출발하였다. 사립 알베르게라 이른 아침이지만 순례자를 위하여 식당 테이블에 빵과 우유 그리고 차를 준비해 두었다. 간단 하지만 아침 식사를 할 수 있었다. 토스트 3쪽과 홍차와 커피를 마시고 길을 나섰다. 빈속으로 걷는 것보다 한결 좋다.


La Torry 알베르게에서 차려 놓은 아침식사


서양 여성 두 분은 배낭만 챙겨 식사도 하지 않고 바로 출발한다. 우리는 4번째로 출발하였다. 도시락만 없어도 배낭이 가볍게 느껴지니 어깨가 무게에 예민한 것 같다. 하늘을 보니 오늘도 더운 하루를 예고한다. 언덕을 오르고 철 다리를 두 번 건너서 길은 이어진다. 레온으로 들어가는 카스트로 다리를 건너서 진입하는데 스페인의 다리는 대부분 로마시대 건설한 것이라 아치가 여러 개로 이어져 있는 게 특징이다.


포르티요 언덕을 넘으면 점점 밝아 오는 레온 시가지 오랜만에 만나는 큰 도시다.
레온 시내로 들어가는 로마시대에 건설한 카스트로 다리


이 다리를 건너면 레온 시내로 들어간다. 함께 걷는 일행은 뒤에서 지루함을 달래려는지 걸으면서 자꾸만 휴대폰을 만지작 거리고 있으니 거리가 자꾸만 멀어진다. 앞서가도 자꾸만 뒤가 신경이 쓰이는 건 도심에 접어들면 길을 잃기 쉽기 때문이다. 고성을 지나고 잠시 걸으면 레온 대성당이다. 너무 이른 시간이라 성당 문은 굳게 잠겨있고 출근시간이 일러 행인들도 그리 없는데 간혹 순례자만 서둘러 걷는다.


성벽을 따라가는 레온의 엣 성벽길


레온은 로마 군대의 주둔지였고 레온이란 이름은 군단 즉 레기온(Legion)에서 나왔다고 한다. 베르네수가 강가에 자리한 이 도시는 1세기 무렵 이 도시의 서쪽에 있던 금광을 보호하기 위해 로마인들이 설계한 도시다. 한때 이슬람의 침략으로 전 도시가 파괴되기도 했지만 지금은 정치, 종교의 중심지로 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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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온은 사자의 도시다. 사장상(좌) 레온의 기념품 가게의 인형들(우)


레온 대성당으로 가는 길에 스페인의 건축가 가우디의 작품으로 신 고딕 양식의 궁전을 레온에서 마주 했다. 기업가 시몬 페르난데스의 의뢰를 받고 지은 건물로 바르셀로나와 카탈루나 지방에서 벗어나 설계한 몇 안 되는 건물 중 하나로 지금은 카하 에스파니아 은행 본점으로 사용하고 있다.


가우디의 작품 '카사 디 보티에스' 지금은 은행 건물로 사용

레온 대성당 앞에는 " LEON"이란 글씨 황동 조각품이 레온을 알려준다. 스테인드 글라스가 아름답다는 레온 대성의 내부 모습은 이른 시간이라 볼 수 없음을 아쉬워하며 발길을 돌려야 했다.


레갈 광장의 동쪽 끝에 있는 레온 대성당 125객의 황홀한 스테인드글라스로 유명


파라도르 호텔 앞의 '피곤한 순례자상' 그를 바라보는 또 한 명의 여자 순례자


순례길은 산마르코스 광장을 지나 베르네수가 강을 건너 레온을 벗어난다. 오늘 점심을 생각하여 가게를 찾았다. 스페인에서는 주유소에서도 간단한 먹거리뿐만 아니라 술도 판매를 한다. 술 문화가 우리와 많이 다르다. 시에스타 시간에는 주유소만 영업하기에 순례자가 이용하기가 가장 편한 곳이다. 그리 크지 않은 가게에 들어가서 점심으로 먹을 맥주, 빵, 과일을 사서 각자 배낭에 챙겨 넣었다.

레온을 벗어나면 두 가지 길로 갈라진다. 오른쪽 길은 고속도로를 따라가는 옛 산티아고 길이고 왼쪽 길은 밀밭 길을 따라 진행하는 자동차의 소음은 잊고 지나는 길인데 일행이 좀 더 가까운 고속도로 차도를 따라가자고 하여 이 길을 선택했다. 절반을 지난 지금이 체력적으로 힘든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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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개의 길로 갈라지는 순레길 오른쪽은 국도를 따라가는 정통 순례길 왼쪽은 들판을 걷는 조용한 순례길(좌) 예전 순례자 상(우)


이 길의 초입은 도로 평삭 작업으로 길이 다져지지 않아 발이 빠져 조금은 더 힘이 든다. 한 무리의 자전거 순례자가 지나가는데 맨 뒤의 자전거가 고장으로 가지 못하자 앞서 가던 자전거가 되돌아와 잠시 수리하고 떠나니 한적해진다. 햇살을 온몸으로 받으며 걸어가니 앞서가던 코오롱 배낭의 엄마와 아들이 순례길을 걷고 있다. 이분들은 일주일 전에도 함께 걸은 적이 있다. 그때는 그냥 스쳐 지나갔는데 오늘 다시 만나니 구면이라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


모자가 이 길을 걷는 이유는 군대 다녀온 29세 아들을 위해 순례길에 섰다고 한다. 힘든 육체적 고통을 경험해 보고 성취감을 몸으로 느껴보라고 출발했는데 근 20여 일을 함께 생활하다 보니 작은 일로 다투기도 한단다. 가령 아침에 일찍 출발해야 더워지기 전에 그날 일정을 마치는데 밤에는 늦도록 SNS를 한다고 늦게 자고 늦게 자니 일찍 일어나지 못해 깨우고 깨워도 잘 일어나지 않아 오늘 아침에도 잔소리를 했단다. 집이나 순례길이나 아들은 엄마가 있으니 믿는 구석이 있어 게으름을 피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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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온은 벗어나 걷는 야생화가 많은 순례길을 배낭을 매지 않고 수례로 끌고 가는 순례자(좌) 야생화 들판(워)


출발 때는 아들이 엄마를 보살피기로 했는데 반대가 되었다며 아들을 위해 함께 걷는 경상도 말씨를 쓰는 모정이 대단함을 느꼈다. 그리고 또 한 팀을 만났는데 70대 중반의 노부부 2팀인데 남자분들은 서로 친구고 한 팀은 미국 교포로 함께 걷는 팀이다. 그간 시부모 모시느라고 시간이 없어 이 길을 걷지 못했는데 이제 자유인이 되어 이 길에 섰다고 하며 하루 15km 정도 짧게 오랜 기간을 걷는다고 하셨다. 대단한 노익장이다.


정오를 지나면서 날씨는 점점 더워 오는데 그늘이 없으니 몸이 늘어진다. 오늘 점심은 마땅히 쉴 곳도 없고 일행이 뒤에서 오질 않아 모자팀의 어머님을 보내드리고 풀숲 그늘에 들어가 쉬면서 혼자 빵과 맥주 그리고 오렌지를 다 먹어도 일행이 오질 않아 더 기다릴 수가 없어 천천히 출발했다.


카미노 길은 누구와도 전 구간을 같이 걷기가 힘들다. 때로는 홀로 걸어야 하고 또 같이 걸어야 하지 같이 보조를 맞추어 걷기는 힘든다. 800km의 거친 길은 때로는 체력적 한계를 넘여야 한다. 매일 서로를 배려할 수 없고 만났다 헤어지고 헤어졌다가 다시 만나는 것을 반복하는 길이 산티아고 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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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의 여름 더워는 유명하다. 갈증을 풀어주는 음수대(좌) 나무 기둥끝에 매달린 인형(우)


장대 끝에 인형에 매달려 있는 산마르텔 데 카미노에서 오늘 걷기를 멈췄다. 공립 알베르게 침대를 배정받는데 할아버지와 할마니가 다투셨다. 영어는 할아버지가 잘하시고 할머니는 영어를 잘 못하시는데 돈을 할머니가 쓴다. 할머니가 의사소통이 잘 되지 않는다고 할아버지에게 묻는데 잘 가르쳐 주시지 않는다고 섭섭해서 눈물을 보이셨다. 그 후 두 분은 냉냉히 말씀도 안 하셨다. 힘든 순례길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시다 보니 섭섭한 일이 있었는데 그게 오늘 폭발하신 거다. 섭섭함은 상대에 대한 기대가 높은데 거기에 미치 못하니 일어 나는 일이다. 나이가 들어도 그 기대치를 낮추기 힘든 게 우리네 마음이다. 알아서 잘해주길 바라는 마음을 다시 바라본다.


오늘의 숙소 산마르텐 델 카미노 공립 알베르게

알베르게에 배낭을 내려놓고 옆 마을로 장을 보러 갔다. 달걀도 사고 스테이크도 샀다. 한국에서 가져온 미소 된장이 오늘로 마지막 된장을 끓였다. 할머니에게 달걀 삶는 법을 배웠다. 달걀은 상온에서 삶고 냉장고에 보관한 달걀은 삶기 1시간 전에 꺼내 놓아야 한다. 찬물에 넣고 처음부터 끓이는 게 아니라 끓는 물에 넣고 끓여야 한다. 삶을 때 넣는 소금 한 스푼 식초 한 스푼을 넣는데 소금은 껍질이 잘 벗겨지도록 하고 식초는 깨질 경우 계란을 응고시키는 역할을 한단다. 끓는 도중 한쪽 방향으로 저어 주면 노른자가 가운데로 가게 해준다. 가장 중요한 게 끓이는 시간인데 노른자가 흘러내리는 반숙은 6분, 적당한 반숙은 8분, 완숙은 10분이란다. 마지막으로 바로 꺼네 찬물에 식혀 주는 게 중요하다. 이는 달걀 껍데기를 잘 까지게 한다. 얼음물이 라면 더 좋단다. 달걀 하나 삶는 게 이리도 절차가 복잡한 줄 몰랐다.


그 후 우리는 싸고 영양가 많은 스페인 유정란을 삶아 간식으로 순례길에 부족한 영양분을 보충하였다. 얼마나 달걀을 삶았던지 그 후 달걀 삶는 도사란 별명을 얻었다. 순례길에서 마음의 공부만 하는 게 아니라 요리법도 배우는 순례길이다. 새벽부터 부지런히 30.6km를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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